1885년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이라는 제목의 그림 한 점이 세상에 공개됐다. 그림은 황제 이반 4세가 황태자를 죽인 후 슬픔에 빠진 장면을 묘사해 놓은 것으로, 러시아의 유명 화가 일리야 레핀의 작품이다. 이 그림에 얽힌 슬픈 역사 속 이야기가 러시아 전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러시아 최초 차르(제정 러시아 때 황제의 칭호)에 오른 이반4세는 1547년 17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왕관을 쓴 신성한 황제로 등극한다. 이후 적극적인 개혁정치와 공포정치를 실시하던 그는 귀족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고, 황제의 친위부대를 만들어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하는 잔혹한 황제 ‘이반 뇌제로 불리게 된다.
이반4세의 장자인 황태자 이반은 적통 후계자의 면모를 다해 아버지를 보필한다. 그러나 역사 속 여러 왕들처럼 이반4세도 왕위찬탈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하루는 아들의 부인이자 자신의 며느리인 예리나가 얇은 치마를 입고 궁전을 거니는 모습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해 심한 매질을 한다. 그 당시 러시아 여성들은 치마를 입을 때 세 겹 이상 입어야 하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 당시 임신 중이던 예리나는 급기야 유산을 한다.
이 사실을 접한 아들 이반은 아버지를 증오하기 시작하고, 그런 아들이 못마땅했던 이반4세는 쇠막대로 이반을 내리쳐 치명상을 입힌다. 이 사고로 생명이 위독했던 이반은 결국 사흘 뒤 숨을 거두었다.
일리야 레핀의 그림은 바로 이반 뇌제가 아들을 죽인 직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뒤늦게 이성을 찾고 싸늘하게 죽어가는 아들의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는 아버지의 눈빛이 표현돼 있다. 아들을 죽인 황제에게 근엄함과 위엄은 간데없고 작고 초라한 늙은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버지의 공포에 질린 눈과 아들의 공허한 눈빛의 대립은 생생한 현장감으로 섬뜩함을 더한다. 오전11시 방송.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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