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청색에, 봉황이 딱 그려져 있죠. 그러니 대통령 전용기차 아니냐는 질문이 가장 많죠."
황송하다. '대통령 전용기차'에 오른 것도 감개무량한데 길 사장이 직접 안내까지 해 준다. 특급호텔에나 어울릴 법한 문패 '모란실(스위트룸)'. 해랑에도 딱 3개만 있는 스위트룸이다. 방문이 열리자 별천지가 펼쳐진다. 3명이 뒹굴어도 될 것 같은 큼지막한 더블베드.
한 쪽 벽면 전체를 가득 채운 통유리엔 창밖 풍경이 몽환적으로 스쳐간다. 미니바와 LCD TV. 그 옆엔 샤워부스도 있다. 120㎞로 질주하는 철길 위에서의 샤워라.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아내와 함께 벌써 몇 번을 탔죠. 샤워하는 맛이 가장 환상적이에요. 여기, 이 드라이기로 머리도 말리시고요."
해랑은 모두 8량이다. 앞뒤로는 발전차와 기관차가 달린다. 가운데 6량이 방이다. 6량 중 2량은 카페(레스토랑)와 이벤트칸. 나머지는 전부 방이다. 카페칸에 들어서자 갓 내린 원두커피가 코끝을 간질인다. 이 열차 내에선 모든 게 공짜다. 버터향 가득한 크로와상과 다과, 커피도 무제한이다. 창가를 스쳐가는 알록달록한 봄꽃. 마치 유유자적 유럽 한복판을 미끄러져 가는 느낌이다.
"제가 취임한 게 2009년 말이었거든요. 해랑부터 살렸죠. 하루 100만원이 넘는 고가 명품 열차인데, 지금은 3개월치씩 예약이 밀려 있어요. 탑승객의 30% 이상이 중국과 일본 승객이고요."
애물단지가 한순간에 철도청 자랑거리로 돌변한 것이다. 길 사장은 아이디어 뱅크다. 정치권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사실 여행사 사장으로 잔뼈가 굵은 이다. 해외 허니문 시장을 처음 열어젖힌 주인공도 길 사장이다. 신혼여행지로 제주도와 설악을 떠올릴 때 그는 가고시마 규슈에 이어 하와이를 발굴해 대박을 터뜨린다.
100대1 경쟁률을 뚫고 아주관광에 입사해 초고속 승진을 하고, 외국계 PIC코리아에 당시 연봉의 5배를 받고 옮기기도 했다.
이런 전력을 가지고 있으니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 여행은 어쩐지 좁아보인다. 그가 만든 대박 상품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작년 말엔 절대 도망 못 가는 '송년회 열차'로 연말 대박을 터뜨렸고, 아로마 열차, MTB열차, 페리와 열차를 연계한 '정동진ㆍ바다열차ㆍ일본 요나고' 패키지도 줄줄이 성공작으로 평가받는다.
부임 1년 성적표도 놀랍다. 작년 처음으로 적자 행진에서 벗어나 흑자로 돌아섰다. 월간 관광 부문 매출도 같은 기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10년 한 해 동안 매출은 708억원. 순익 역시 21억원대에 달한다. 코레일관광개발을 통해 열차로 여행을 다니는 인구만 100만명에 육박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이제 철길을 벗어나고 있다. 먼저 도시락 사업. 최근 KTX에 등장한 아시안, 웨스턴 도시락은 그의 작품이다. 코레일관광개발이 직접 관리에 나서면서 월 7억원 정도 수익이 난다.
"KTX 속도는 300㎞인데, 도시락은 완행 수준이더라고요. 지금은 명품 도시락도 준비 중이에요. 철원 오대 명품 쌀로 만든 명품 도시락이 곧 나옵니다."
열차와 연계한 렌트카 사업과 역사에 들어선 커피 체인점 '펌프킨 트레인'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작품이다. 그의 다음 그림은 '숙박'이다. 열차를 쌓아 만들, 세계 하나뿐인 열차 호텔 '레일파크'도 구상 중이다.
"버려지는 폐열차를 활용하자는 거죠. 생각해 보세요. 열차 공간을 활용하면서, 그것 쌓아올리면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트레인 호텔이 탄생하는 거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대전역. 또 다른 일정 때문에 바로 또 서울 열차로 갈아타고 돌아가야 한단다. 해랑, 아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른 KTX보다 더 빠른 삶을 사는 남자, 그가 길기연이다.
※ 매경 - 코레일관광개발 공동기획
[신익수 여행·레저 전문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