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민아, 네가 그토록 꿈꾸던 ‘사람을 살리는 진정한 의사’로서 누구보다 큰일을 했구나. 이제 아무 걱정 없이 하늘에서 편히 쉬어라.”
이득희 씨는 장기기증의 날을 며칠 앞두고 매일 사무치게 그리운 아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6년 전, 2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이득희 씨의 아들 故 이용민 씨.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해 ‘사람을 살리던 진정한 의사’를 꿈꾸던 그는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뇌사 상태에 빠졌다. 수일 안에 심장이 멎을 것이라는 의료진의 소견에 이용민 씨의 부모는 고심 끝에 장기기증을 결정했고, 인술을 통해 생명을 살리겠다는 이용민 씨의 꿈은 2017년 1월 3일, 장기기증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마지막 순간 심장, 간, 췌장, 신장 및 인체조직을 기증하며 수많은 환자의 생명을 구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생명을 이어받은 이도 있다. 2000년, 20대의 한 뇌사자로부터 신장과 췌장을 이식받고 당뇨와 신부전이라는 고통스러운 질병의 굴레에서 벗어난 송범식 씨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오랜 건강 비결에 대해 “기증인의 유가족이 어떤 심정으로 장기기증을 결정했는지 생각하면 단 하루도 허투루 살 수 없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오는 9월 9일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보라매공원에서는 장기기증의 날 기념 행사가 진행된다. 특별히 보라매공원에는 지난 4월 국내 최초로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 공간이 건립되어 의미를 더한다. 이날 행사에는 이득희 씨와 같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과 송범식 씨와 같은 장기이식인을 비롯해 생존 시 신장기증인과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등 500여 명이 함께한다.
9일 오후 1시에 진행되는 기념식에서는 뇌사 장기기증이 유가족에게 기증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크리스털 패인 ‘생명의 별’이 전달된다. ‘생명의 별’에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하늘에서 가장 빛난 별이 된 기증인을 기리겠다는 뜻이 담겼다. 이어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신장 하나를 기증한 생존 시 신장기증인에게도 ‘신장기증 30주년 기념패’가 전해진다. 올해 신장기증 30주년을 맞아 이날 기념패를 전달받게 된 변길자 씨는 1993년 9월 28일, 생면부지의 한 10대 소녀에게 자신의 신장 하나를 기증했다. 그리고 10년 뒤인 2003년에는 간의 일부까지 타인을 위해 기증하며 국내 몇 안 되는 신장‧간 기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여전히 이식을 받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변 씨는 “제게 신장을 받은 아이는 당시 14살이었는데, 지금쯤 40대 중년의 여성이 되어 있겠다.”라며 “이식인들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든 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빈다.”라는 소회를 전했다.
기념식이 끝난 1시 40분부터는 참가자 전원이 장기기증의 의미를 담은 피켓을 들고 보라매공원 일대 3km 가량 퍼레이드를 펼친다. 피켓 행진 이후에는 다양한 체험 부스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체험 부스에는 국내 생존 시 신장기증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리빙도너 부스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및 이식인의 사진을 만나 볼 수 있는 도너패밀리 부스를 비롯해 세계 장기기증 현황과 생명나눔 퀴즈, 시각장애 체험과 심폐소생술 교육 및 캐리커처, 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장기기증의 정확한 정보와 가치를 알린다.
매년 9월 9일은 ‘뇌사 시 장기기증으로 최대 9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장기기증의 날’이다. 1997년 본부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장기기증의 날은 매년 기념식과 걷기대회, 일일추모공원, 장기기증인과 이식인과의 만남 등 다양한 홍보 활동이 전개되어 왔으며, 이를 통해 장기기증에 대한 범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있다.
한편, 지난해 뇌사 장기기증인은 405명으로, 2012년 이후 가장 저조한 수준이다. 2016년 573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2년에는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에 반해 2022년 말 기준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4만 9,765명으로, 매년 가파르게 증가해 매일 7.9명의 환자가 장기이식만을 애타게 기다리다 목숨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장기기증 희망등록률 역시 3.4%로 전 국민의 62% 가량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한 미국 및 대다수의 국민이 장기기증 희망 의사가 있다고 간주하는 유럽 등에 비해 저조한 수준이다. 이처럼 장기기증 활성화가 시급한 시점에 서울을 비롯한 대전, 광주, 부산, 제주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진행되는 9월 9일 장기기증의 날 기념 행사를 통해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 개선과 시민들의 참여 확대를 도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