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어지러운 것도 역사를 올바르게 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란 한마디로 진정한 지혜가 들어있는 최고의 지침서다.
역사는 거짓말을 못한다. 그 져 그 당시 그 일자에 사실의 역사를 기록하는데 있다.
그러하면 세계역사에서 이집트역사와 중국역사가 있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도대체 어느시대의 역사인지 밝혀보아서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을 해보기로 합시다.
고구려의 고주몽의 역사가 탄생하는 과정을 알아야 우리나라의 역사가 정립이 되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곧 세계역사를 알아야만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정립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역사를 통하여 고구려가 탄생하는 과정을 알아봅시다.
최고의 지침서인 역사는 마지막 단군조선과 이를 이은 북부여와 고구려의 역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BC 256년은 단군조선 마지막 47대 고열가단군 재위 40년이다. ≪ 곧 BC 250년은 단군조선 마지막 47대 고열가(高列加)단군 재위 46년이다. 이집트역사로는 알렉산드리아 항을 여러 차례 보수하기도 했던 알렉산더대왕의 뒤를 이은 이집트를 지배한 프톨레미 2세는 고대 인류문명의 7대 불가사의로 간주되는 알렉산드리아 항구의 북쪽 약 1km에 있는 파로스 섬에 세계7대불가사의한 파로스 등대를 BC 250년에 새운 주인공이다. 등대의 빛은 50km까지 비추었다. ≫
사마천이 말하기를 중국역사로는 BC 256년 이때에 주(周)나라의 마지막 왕 35대 난왕(赧王) 59년이며 이때 진(秦: 순임금의 후손의 나라)나라 28대 소양왕(昭襄王)은 즉 소왕(昭王)은 서주(西周)를 공격하여 이에 서주의 읍 36과 백성 3만명을 모두 진(秦)나라에 바쳤다.
이때는 BC 256년(주나라 35대 난왕 59년이며 진나라 소왕=소양왕 51년)이다.
그리고 서주가 멸망한 7년 후 역사는 주나라 이후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에 진(秦)나라 30대 장양왕(莊襄王)이 진(秦)나라 재상 여불위(呂不韋)를 시켜 동주(東周)를 멸했다.
이때는 BC 249년(진나라 장양왕 1년)이다. 진(秦)은 주나라를 멸망시켰다.
즉 주(周)나라는 서주(西周)와 동주(東周)가 망하였다. 즉 제사를 지낼 수 없었다.
≪ 멸망한 이때 BC 249년은 단군조선 마지막 고열가단군 재위 47년이다. ≫
곧 주나라는 진시황제 아버지한테 BC 249년에 멸망하고 2년 후 진시황제는 BC 247년에 즉위하고 단군조선의 마지막 47대 고열가단군은 주나라가 멸망하고 난 후 10년 후에 진시황제 재위 8년이며 고열가 재위 57년인 BC 239년에 장당경에서 망하고 백악산 아사달로 망명했다.
그리고 고열가단군은 백악산의 아사달의 진한조선에 망명하였지만 그 진한(辰韓: 진한조선을 말함) 뒤를 이어 북부여(北夫餘)의 시조 해모수(解慕漱)가 그 뒤를 이어갔다.
고열가단군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짐의 덕은 나약하여 능히 다스리지 못하니 제후들을 조용하게 만들 방책이 없다.
마지막 재위 58년에 단군(임금)께서 승하하시고 대를 이을 후사가 없으므로 종친(宗親) 해모수(解慕嗽)가 옛 도읍지 부여(扶餘=夫餘)에서 반기를 들어 나라를 세우니 북부여(北扶餘=北夫餘)라 하였다.
이후의 역사는 해모수의 북부여의 역사가 6대를 지나서 고주몽이 태어났다.
즉 해모수의 둘째아들이 고진(高辰)이며 이 고진의 손자인 불리지가 하백의 딸 유화 사이에서 고주몽이 태어났다.
고주몽의 역사는 북부여의 총 6대를 지나서 고구려를 일으킨 고주몽의 역사가 일어났다.
고주몽은 해모수의 후손으로 그 가계도를 보면
해모수(북부여 시조 BC 239년에 즉위) → 모수리(해모수 첫째아들 북부여 2대) ➝ 고진(북부여 2대 모수리 단제의 동생) → 불리지(고진의 손자)는 하백(河伯: 압록강 서쪽)의 딸 유화(柳花)를 만나 장가를 감 → 고주몽 탄생 함. 곧 BC 79년 5월 5일이다. ≪ 졸본(압록강 서쪽)에서 고주몽 탄생함. 때는 한(漢)나라 8대 효소제인 유불릉(劉弗陵)의 원봉(元鳳) 2년이다. ≫
고구려 건국임금인 고주몽을 해모수의 아들로 기록한 잘못된 역사서는 다음과 같다.
고려시대에 왕명으로 만든 삼국사기는 해모수가 북부여를 BC 239년에 일으켰는데도 불구하고 즉 북부여의 6대까지의 역사도 기록을 못하면서 또 단군조선의 47대까지의 역사도 기록을 못하면서 실지로 BC 58년에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을 재위기간만 따져도 해모수와 고주몽과의 181년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해모수의 아들이 고주몽 이라고 하였는지 이는 도저히 해모수의 아들이 될 수가 없다.
더 기가차는 것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1권에서 고주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죽은 해모수가 어떻게 유화와 정을 통해 알에서 고주몽이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역사를 기록했다.
즉 해모수는 북부여의 시조이며 고주몽은 북부여의 마지막 6대 고무서(高無胥)가 아들없이 별세하자 그 뒤를 이어서 고주몽이 고구려를 BC 58년 10월에 건국하게 된 역사를 무려 181년간 이상의 차이가 나는 사람을 해모수의 아들이 고주몽 이라고 황당무계하게 삼국사기는 기록을 하였다. 반드시 밝혀야 한다.
➜ 세계역사는 단군조선 말기와 북부여시대에 서양의 역사에서는 포에니전쟁이 3차례에 걸쳐서 일어났다.
이 포에니전쟁은 카르타고(튀니지)와 로마가 BC 264년에 지중해의 지배권을 놓고 싸움을 시작한 것이 바로 포에니전쟁이다.
이 포에니전쟁은 총전쟁 기간이 119년간이나 일어났으며 이 전쟁은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이 전쟁에 패하여 BC 183년에 자결한 후 BC 146년에 로마가 승리하여 끝났다.
- 1차 포에니전쟁은 BC 264년은 ≪ 단군조선 마지막 47대 고열가단군 재위 32년이다. ≫
- 2차 포에니전쟁은 BC 218년은 ≪ 단군조선을 이은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재위 22년이다. ≫
- 3차 포에니전쟁은 BC 149년은 ≪ 북부여 3대 고해사단제(단군) 재위 21년이다. ≫
➜ 위만조선이 곧 우리나라의 번한조선을 찬탈한 것이다.
이러한 북부여의 시조이신 해모수를 지나서 북부여의 4대 단제=단군=임금시대에
즉 북부여의 4대 단제는 고우루=해우루단제는 3대 고해사단제의 아들이다.
고우루의 재위기간은 BC 120년~BC 87년까지로 34년간 재위하였다.
북부여의 4대 고우루단제=단군=임금시대에는 번한조선 즉 위만이 번한조선을 찬탈하여 위만조선 이라고 하며 그의 손자 우거왕(右渠王)이 BC 108년에 멸하는 역사가 바로 사마천의 사기 중 조선열전(朝鮮列傳)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때는 전한 7대 한무제 시대이다. 즉 BC 108년은 바로 북부여의 4대 재위 13년이다.
북부여의 제4대 재위 13년인 이러한 이때에 졸본에서 북부여의 쇠약함을 구하기 위해 BC 108년에 나라를 동명(東明)이라 하고 스스로 동명왕(東明王)에 재위하여 한나라를 물리친 임금이 자로 동명왕이다. 이 위대한 동명왕이라는 분이 북부여 5대단제(임금)으로 이어감.
➜ 동명왕의 아들이 북부여 마지막 6대 고무서단제(임금)이며 이후 고주몽이 고구려 이어감.
북부여의 마지막 6대 고무서단제(임금)가 아들 없이 BC 58년에 별세하자 고주몽은 그해 BC 58년에 고구려 나라를 시작하는 것이 바로 고구려의 나라를 세우는 역사다.
곧 고주몽은 단군의 옛 법을 되찾고 해모수(解慕潄)를 제사하여 태조로 삼고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다물(多勿)이라하니 바로 고구려(高句麗)의 시조이다.
역사는 고주몽은 BC 58년 10월에 시작하여 BC 19년에 붕어하여 고주몽의 첫 부인의 아들이 고구려 2대 유리왕(瑠璃王)으로 이어갔다.
이러한 역사가 바로 고구려 역사이다.
어찌하여 고주몽을 단군의 자식이니 아니면 해모수의 자식이니 하는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어리석은 역사를 기록하였다. 이를 벗어나 올바른 고구려 역사를 세워야 한다.
왜냐 이 고구려의 역사가 나올려면은 반드시 그 과정들이 세계역사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곧 고구려가 탄생하는 역사의 과정에 세계역사에서 큰 전쟁과 불가사의한 역사를 세계사는 증명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즉 포에니전쟁이나 진시황제 등의 역사가 흐르는 시대이므로 이러한 세계역사시대에 우리의 위대한 단군조선과 북부여의 역사를 반드시 거쳐야만이 고구려의 역사가 나오기 때문에 고구려의 역사가 나올려면은 세계역사가 흘러가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바로세워야 나라가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알 때 세계무대에서 우리의 주장을 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올바른 역사를 과연 국가관이 없는 현재 문재인정부가 해낼 수가 있을까?
여러분의 슬기를 기대합니다.
한기(桓紀) 9216년 신시개천=웅기(神市開天=雄紀) 5917년 기해년(己亥年)
단기(檀紀) 4352년 서기(西紀) 2019년 7월 13일 토요일.
홍익방건축(弘益房建築) 특허사업 대표이며 천지인방연구소(天地人龐硏究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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