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그날 나는 전남대학생이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 저러쿵하는게 거슬려서
부랴부랴 회원가입을 하고 한자 올린다
1980년 5월 14일부터 횃불을 들고 전남 도청 앞 분수대로 나갔다.
이날은 전남대생만 나갔고
다음날인 5월 15일 16일은 광주의 모든 대학생이 도청으로 나왔는데
5월 16일은 5,16 화형식을 치렀다
민주열망으로 가득한 혈기에 가득한 대학생을 보고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김옥길 장관의 한 말씀이 있었는데
“학생들의 시위는 신군부가 도발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으니 자제해달라”
내 기억에 그때 5월 16일은 금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동안 계속되는 학내 시위와 거리투쟁에 지친 우리도 쉴 겸,
신군부에게 어떤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는 판단으로
잠시 시위는 쉬기로 했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생각지 못한 사태가 일어나면 전남대 도서관 앞으로 모이기로 했었다
5월18일
신군부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 게엄령 확대 선포를 했고
생각지 못했던 사태를 겪게된 우리는 학교 중앙도서관 앞으로 가려했는데
이미 학교는 뒤통수에 해골마크가 새겨진 헬멧을 쓴 공수부대가 정문과 후문을 봉쇄하고
있었다
이미 이때 총에는 대검이 꽂혀져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자욱한 최루탄 연기
자비심없이 휘둘러대는 공수부대원의 칼이 꽂혀있는 M16
그 기세에 밀려 도망쳤다가 다시 도청 일대에 모인 대학생들의 항의시위가 있었지만
그곳에는 어김없이 공수부대가 투입됐고
공수부대원이 활보하는 그곳은 아비규환이었다.
피에 굶주린 아귀의 칼춤은 광주 비극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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