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녁에 긴 시간 동안, 그리고 장 기간에 이르러 추론하는 유병언에 대한 진행을 계속해서 시청하고 있습니다. 저녁식사 시간이 6시에 고정을 해 놓았기에 처음에는 못 듣다가도 매일 마칠 때까지 시청을 하고 있지요. 이 글을 남기기 위하여 일부러 엠비엔에 회원가입을 하였습니다. 어느 방송에 연락을 해 볼까 하다가, 매일 일정한 시간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방송국에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서 전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가방이 추가로 김모 여인의 친척집에서 발견이 되고부터 시청을 하는 본인은 어떤 실마리가 보인다고 여기는데, 아무도 이를 표시하는 사람이 없어서 의견을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1980년대에 현대 그룹의 설계실에서 근무를 하였고, 독일의 분단시절에 서 베를린에 있는 Siemens(지멘스) 공장의 생산 설비를 연수 목적으로 2개월 지낸 경력이 있습니다. 독일의 공장의 현장과 사무실에서 느낀 인상 중에 하나는 숫자를 표기하는 일이 통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의 한국의 설계실에서 설계서류들에 표기하는 숫자들은 프라스틱으로 된 '숫자 TooL'를 사용합니다. 그리하여 설계서에 표시하는 숫자의 오류에서 생기는 사고들을 미연에 방지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설계자들이 개인적으로 연필로 표시하는 숫자들은 제각각 다릅니다. 아라비아 숫자가 불과 10개였지만 제각각 필체가 달랐어요. 그러한 한국의 설계실에 근무를 한 본인에게는 독일의 공장의 현장과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숫자 기록하는 개인적인 필체가 동일한 것에 놀랐습니다. 심지어 공장의 현장에는 주변의 나라에서 넘어온 수많은 '이주 근로자'들이 이었는데, 그들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내용 중에 표시하는 숫자들이 마치 '숫자 TooL'를 사용하는 것과 거의가 동일하였던 것에 놀랐던 인상이 있어요.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을 3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공개적으로 밝히게 된 것은 유병언의 도주용으로 남겨진 가방들에 남아 있는 가방 구분용 숫자들을 보면서 입니다. 방송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숫자를 언급하는 내용은 있었어요. 즉, 6자 밑에 그어진 '-'였습니다. 그런데 더 진행을 하지 않았어요. 6자 밑에 그어진 '-'가 있으니 9자 밑에도 '-'가 있을 것이므로 가방이 9개가 될 것이다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보는 것은 유럽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나타내는 습관이므로 추론으로서의 공감은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설계실에서 근무를 하다가 유럽의 독일의 공장에서 숫자 기록의 공통적인 내용에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본인이 보는 가방의 숫자들을 통해서 보는 견해는 전혀 달라요.
가방과 함께 방송에서 나타난 숫자들은 2,3,4,5,6,7,8 입니다. 그러한 필체는 컴퓨터의 출력으로 한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매직 글씨로 보이는데 숫자를 기록하는 일에 오래된 습관에 배였고, 매직을 통하여 숫자를 많이 기록하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의 필체입니다. 숫자 2 이하의 7까지의 모든 숫자는 한국 사회에서는 잘 표시를 하지 않는 필체입니다. 9번 가방이 없드라도 숫자 6를 나타낼 경우에는 '-'를 사용할 정도로 브리핑용의 독립된 '6-'자를 나타낼 사람입니다.
관찰한 것을 표시를 하면 1) 이 숫자를 기록한 사람은 유럽지역에서 사용하는 공식적인 숫자 기록에 몸에 익혀진 사람입니다. 2) 차분하면서도 마치 인쇄를 하여 출력을 한 분명한 필체입니다. 3) 가방을 챙기는 과정의 모든 일에 관여한 사람입니다. 4) 해외 여행 경험이 많은 사람이므로 가방에 일련번호를 손잡이 부분에 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5) 글씨체를 보아서 남자입니다. 6) 이런 일에 관계된 사람을 유병언의 주위에서 찾아 추정해 보아야 합니다.. 유병언의 매제되는 체코 대사를 역임한 오갑렬씨가 주목이 됩니다.
이 글을 기록하는 본인은 구미시에 거주하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지난 6월11일 안성 금수원에 차량을 몰고 가서 당시에 금수원에서 주장한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대한 논쟁을 하여 상금 5억원을 받아 오려고 준비를 다 해 놓았고 아침을 먹고 출발을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을 먹다가 뉴스를 보니 이미 이날 새벽에 금수원에 검찰이 진입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금수원에 갈 계획은 하나님께서 막으셨구나 하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본인의 정체를 들어낼 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즉, 본인에 대한 내용은 철저하게 익명으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날 6월11일에 순천의 별장으로 가야할 '개인적인 징후'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익명으로 전달이 되기를 거듭 부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병언이 시신으로 나타난 것이 국가 위기에서 건져졌다고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이지요. 유병언이 죽어서 시신이 되어 나타났으므로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국가의 바른 체제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온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통하여 국가의 거듭남의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나라를 복되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할 수 있는 언어들이 많이 나오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4년8월14일의 교황 프랜치스코의 방문은 박근혜 정권이 끌어들인 화근이 될 것이며 세월호 참사와 연장된 일련의 과정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8월15일의 한국의 광복절의 의미가 방문한 교황으로 인하여 뭍혀버리게 한 것은 우연한 일로서 지나는 것이 아닙니다. 담당 기자들을 TFT(Task Force Team)로 구성하여 운영하여 보세요. 박창신 신부의 쇼와 같은 언동들의 주변들을 연결하여두면 2015년 3-4월 경에는 결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