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오남매, 서로의 기둥이 되어
시곗바늘이 밤 아홉 시를 향하고 다섯 아이들 소리로 시끌벅적했던 집이 마법을 부린 듯 조용해졌습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좁은 방 한 쪽에 앉은 아빠 김길주(45) 씨는 귀하게 찾아온 자유 시간을 여느 아빠들처럼 즐길 법도 한데, 종이 뭉치를 들고선 어두운 표정만 하고 있습니다. 길주 씨를 걱정에 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공과금 고지서와 건강검진 결과지였는데요 얼마 전, 길주 씨는 간과 췌장의 암표지자 수치가 매우 높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습니다. 충격적인 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보물처럼 소중한 다섯 아이의 얼굴이었습니다. 부족한 아빠지만, 세상을 먼저 떠난 아내 몫까지 해내겠다는 다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어려울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길주 씨는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눈앞이 아찔합니다.
“아내는 제 손을 잡은 채 하늘나라로 갔어요”
길주 씨에게 아내는 그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젊은 시절에 방황하던 길주 씨를 따뜻한 손으로 잡아주고, 귀한 다섯 아이를 선물해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동안 속이 좋지 않다던 아내는 얼마 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적 없는 희소 암을 판정받았습니다. 길주 씨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기도 하고, 신약에 대한 희망을 품으며 한 방송에도 출연했지만, 이미 몸에 퍼진 암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환자들보다 암의 진행속도가 40배 정도 빨랐던 아내는 결국 7개월 만에 길주 씨의 손을 잡은 채 눈을 감았습니다. 치료에만 전념해야 할 아내에게 짐을 지워주고 싶지 않았던 길주 씨는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아내와 얘기조차 나눠본 적이 없는데, 아내는 어떠한 말도 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배달이라도 해서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해요“
길주 씨는 또 다른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는데요. 아내를 치료하면서 생긴 빚이 문제였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됐지만, 다섯 아이를 키워야 하는 길주 씨는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퀵서비스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마저도 여의치는 않습니다. 다섯 아이에게 아빠가 필요할 때 당장 달려가야 하는 길주 씨인데요. 이제는 아픈 어머니 이정열(69) 씨까지 돌봐야 합니다. 길주 씨의 윗집에 살며 다섯 아이를 돌봐주던 정열 씨는 재작년 갑자기 쓰러지면서 뇌농양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로 농양은 사라졌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1년 전부터 두피에 고름이 계속 생기고 있는데요. 정열 씨는 매일 병원에 다니며 고름을 째고 소독하는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옆에서 보필해야 하는 길주 씨는 집과 가까운 곳에서만 일하며 근근이 돈을 벌고 있는데 두 집의 월세까지 책임지고 있어 어깨가 무겁습니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없는 게 많아서 정말 미안해요”
퀵서비스 주문을 기다리는 길주 씨는 아무런 소득 없이 길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허다합니다. 그럴 때마다 밝게 웃고 있는 아이들 사진을 꺼내 보며 힘을 얻는데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착하게 자라준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어서인지 아빠와 할머니가 해야 할 집안일도 분담하며 각자의 몫을 해내고 있습니다. 첫째 민성(17) 군, 둘째 민재(16) 군, 셋째 민지(14) 양이 모이면 일곱 식구의 식사 준비도, 거대한 빨래 더미도 거뜬히 해결할 수 있고, 아직 어린 넷째 민우(11) 군, 막내 민원(9) 군의 애교 한 번이면 집안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집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아빠와 다섯 남매는 서로의 기둥이 되어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의지하고 있었는데요. 길주 씨는 자신을 지탱해주는 다섯 아이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함을 느낍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좋은 옷과 신발도 사줄 수 없고, 흔한 학원조차 보낼 수 없는 길주 씨는 하루빨리 상황이 나아져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일곱 식구를 위해 매일 오토바이를 타는 아빠 길주 씨와
아픈 몸으로도 다섯 아이들의 삼시세끼를 책임지는 할머니 정열 씨,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일찍 철든 다섯 아이들의
소중한 일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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