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나랑 오래오래 살아요
아침밥 굶지 말라며 학교 가는 손자 현수 (15) 의 손에 옥순 (83) 할머니가 꼭 쥐여 준 우유 한 팩. 현수는 자신을 살뜰히 챙기려는 할머니의 예쁜 마음을 조용히 가방에 챙겨 넣고 집을 나섭니다. 어린 손자를 오랜 세월 홀로 돌봐온 옥순 씨는 고령에 접어들면서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잃어가고 있는데요. 점점 악화하는 치매 증세에도 또렷한 건 부모의 외면으로 자신의 품에서 자란 손자 현수에 대한 애틋한 마음입니다.
“다만 몇 푼이라도 벌어서 우리 현수 좋은 옷 입히고 싶어요”
8년 전 어느 날, 결혼해서 잘 사는 줄만 알았던 둘째 아들이 아내와 이혼 후 옥순 씨를 찾아왔습니다. 오랜만에 본 아들의 얼굴이 반가워 손을 덥석 잡았던 옥순 씨. 그런 아들의 옆에는 손자 현수가 함께 있었습니다. 당시 여덟 살이던 현수를 초등학교에 입학 시켰다던 아들은 6일 후에 데리러 올 테니 잠시만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오겠다던 아들은 이내 자취를 감췄는데요. 그날 이후로 옥순 할머니는 현수를 키우게 됐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어린 손자를 키우기 위해 호떡 장사도 해보고 공병을 주워다 팔며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던 옥순 씨. 고령에 접어들면서 무릎과 허리의 극심한 통증으로 점점 기력을 잃어 갑니다. 손자는 아직 너무 어린데, 자신에게 병이 너무 빨리 찾아온 것 같아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할머니랑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어요”
엄마를 부른 기억보다는 할머니를 부른 기억이 더 많은 현수. 다양한 노인성 질환으로 하루에 복용하는 약만 수십 알인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섭니다. 지팡이를 짚고 부축을 받아 겨우 화장실에 다녀오시는 할머니가 아픈 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죄송하기만 한데요. 하루빨리 돈을 벌어서 호강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할머니가 곁에 계셔주실 수 있을지 애가 탑니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할머니가 저금통에 고이 모아둔 동전들을 매번 갖고 나가기가 미안해 가끔은 걸어서 등교하는 현수. 30분을 걸어야 하는 거리지만 돈을 아껴 할머니가 좋아하는 떡 하나를 사드릴 생각에 뿌듯합니다. 하교 후에는 지역아동센터에 다녔지만 자신이 없는 사이에 음식을 먹고 체해 고통스러워했던 할머니의 표정을 잊을 수 없어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오는 현수. 변변한 책상 하나 없어 바닥에 엎드려 공부해야 하지만, 늘 할머니 곁에 있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현수가 있어서 제 마음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요”
치아가 없어 김치조차 씹기 힘든 옥순 씨는 누룽지에 밥을 말아 먹으며 통증을 견디는데요. 가끔은 현수가 해주는 특식을 먹기도 합니다. 주워온 그릇들에 가스레인지조차 켜지지 않아 휴대용 버너에 밥을 끓이는데요. 2년 전부터 기운이 없는 자신을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손자를 보면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자신의 곁을 떠난 부모님에 대한 원망보다는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이 큰 현수는 옥순 씨의 눈물을 닦아줄 만큼 훌쩍 커버렸는데요. 할머니 옥순 씨는 또래 아이들처럼 흔한 반찬 투정 한번 없이 늘 씩씩하게 자라준 손자가 기특하기만 합니다. 손자 현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난다는 옥순 씨! 손자를 키우기 위해 갖은 고생 다 했지만 2년째 골다공증과 심근경색으로 주저앉고 말았는데요. 기초수급비 외에 수입이 없어 넉 달 치 월세가 밀린 이들에게 희망의 온기가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고령에 접어들면서
기력을 잃어가는 할머니 옥순 씨,
그런 할머니 곁을 지켜야
마음이 놓인다는 손자!
시린 날들을 오롯이 둘이서 견디며 살아온
조손가정의 가슴 아픈 사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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