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씨가 사랑이 되어
부산의 섬마을 영도. 덕자 씨(67)는 허리가 아파 주저앉으면서도 불을 때야 한다며 열심히 나뭇가지들을 줍는데요. 자루 가득 주워 온 잔가지들로 아궁이의 불을 지핍니다. 도심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에 아직도 아궁이로 불을 때는 곳은 덕자 씨의 집을 포함해 두 집뿐입니다. 연기가 가득해 눈이 매울 법도 한데 이젠 익숙해져 괜찮다는 덕자 씨. 한참 불을 지피던 그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립니다. 급히 자리를 뜨는 덕자 씨를 따라 가보니 환자용 침대에 앉아있는 남편 인철 씨(78)가 보입니다. 인철 씨가 추위에 떨자 덕자 씨는 난로에 불을 켜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인철 씨의 몸을 닦아줍니다. 이 부부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폐암 3기 판정... 항암치료가 시급해요”
인철 씨는 정신과, 순환기 내과, 신경외과 등 하루에만 십여 개의 약을 먹고 있습니다. 지난해 집 앞에서 넘어진 후로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가 심해져 하반신이 마비되기 시작했는데요. 만성 통증 때문에 먹고 있던 마약성 진통제가 디스크의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뒤늦게 디스크가 발견되었습니다. 손가락을 구부리는 것이 불편해진 인철 씨는 편히 식사를 하기도 어려운데요. 거동을 하지 못하자 생긴 욕창은 덕자 씨가 직접 약을 바르고 거즈를 덧대어 지극정성으로 치료한 덕인지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지만, 언제 재발이 될지 몰라 덕자 씨는 매일 인철 씨의 상처를 꼼꼼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인철 씨는 올해 7월에 폐암 3기 판정을 받기도 했는데요. 암의 크기가 커서 항암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항암 치료를 받고 몸이 더욱 힘들어질까 걱정입니다.
“비탈길이라 휠체어를 끌고 내려갈 수 없어요”
외출을 할 때면 덕자 씨는 가장 먼저 이웃집에 찾아갑니다. 이웃을 불러온 덕자 씨는 인철 씨를 업어 휠체어에 태우는데요. 허리가 좋지 않은 덕자 씨는 복대를 차고 온 힘을 다해야만 인철 씨를 업을 수 있습니다. 마을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는 부부의 집은 제대로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야만 나옵니다. 그냥 걸어 올라가기에도 숨이 차는 가파른 언덕길은 이웃의 도움이 없으면 이동하기 쉽지 않은데요. 비탈길을 내려가려면 휠체어의 양쪽에 막대기를 고정해 가마를 들듯이 들어야 합니다. 덕자 씨는 혼자 휠체어를 끌고 내려가 보려고도 했지만 심한 경사가 위험해 포기했다고 말하는데요. 이웃들도 연세가 있기에 인철 씨가 타고 있는 휠체어를 들고 비탈길을 내려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중간에 쉬었다 이동했다를 반복하며 한참 만에 도착한 평지에서 부부는 이웃들에게 연신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합니다.
“아내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밖에 할 게 없어요”
인철 씨가 지은 오래된 집은 이곳저곳 수리할 곳이 많습니다. 인철 씨가 도맡아서 했던 집수리는 이제 덕자 씨가 해야만 하는데요. 덕자 씨는 찬 바람을 막아보려 어설프게 못질을 해봅니다. 덕자 씨가 힘들까 봐 혼자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해보려고 한다는 인철 씨. 손과 숟가락을 고정해 스스로 밥을 먹어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반찬도 없이 국에 밥을 말아 먹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인철 씨는 먹고 싶은 건 많지만 혹여나 넉넉하지 않은 형편 때문에 해주지 못하면 아내가 속상할까 걱정되어 말을 하지 못합니다. 덕자 씨는 그런 남편의 말을 듣고는 몰래 눈물을 훔치곤 하는데요. 아내에게 부담이 될까 봐 속마음을 말하지 못했던 남편과 아파하는 남편을 보며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이 아픈 아내. 오랜만에 따뜻한 햇볕을 쐬러 마당에 나와 서로를 위한 마음을 털어놓는 부부에게 희망이 찾아오길 바랍니다.
폐암과 하반신 마비가 있는 남편 인철 씨와
그런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아내 덕자 씨의
아궁이 불씨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사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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