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제목: 사업과 직장을 위한 교양과 역사
■ 60번째 주 내용: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란? 설명
■ 일자: 신축년(辛丑年) 단기 4354년 서기 2021.4.8.목요일.(음력 2.27.)
■ 장소=등재한 곳: 천지인(天地人)방 http://blog.naver.com/hhs0203 에 올려놓았음.
■ 강의자(講義者): 황효상(黃孝相)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여러분께서 사업과 직장에 초석이 되고 밑바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무료강의는 1마당에서 13마당으로 되어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무료강의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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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하루 보내세요.
제11마당 설명 중 60번째 무료강의 시작
◐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란?
▣ 란중일기(亂中日記)=난중일기에서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란?
이때에 원균이 이순신을 밀어내고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그 후에 원균의 패보가 조정에 이르자 조야가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에 선조는 비국대신(備局大臣)들을 불러 의논하였으나 당황하여 바로 대답도 못하였다.
오직 병조판서 권율장군의 사위이며 호가 백사(白沙)이며 이름과 호보다는 오성(鰲城)으로 더 알려진 이항복(李恒福) 만이 이순신을 다시 불러 통제사로 기용할 것을 주장하였을 뿐이었다. ≪ 오성(鰲城)은 영의정 권철(權轍)의 아들 권율(權慄)의 사위이며 한음(漢陰)은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의 사위이다. 오성 이항복은 1600년(선조 33년)에 영의정에 올랐다. 한음 이덕형은 1602년(선조 35년)에 영의정에 올랐다. ≫
이리하여 이순신의 죄가 조정을 기만하고 임금을 무시한 죄. 적을 토벌하지 않고 나라를 저버린 죄. 다른 사람의 공을 빼앗고 모함한 죄. 방자하여 꺼려함이 없는 죄 등의 많은 죄명을 뒤집어씌워 죽이려고까지 하였던 이순신을 통제사로 기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 등용은 선조 30년 1597.8.3.이었다.
그러나 화약과 쌀 군사는 없고 맨주먹만 남았으나 충무공 이순신의 지략을 발휘하여 승리한 명량해전(鳴梁海戰)=명량대첩(鳴梁大捷)에 나가기 전날인 정유년(丁酉年) 1597년 9월 15일에 다음과 같이 장병들에게 훈교를 하고 있다.
➜ 란중일기(亂中日記)=난중일기 정유년 9월 15일 계묘 맑음. 이때에 필사즉생(必死則生)과 필생즉사(必生則死)의 말을 했다.
조수(潮水: 밀물과 썰물)를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진을 우수영 앞바다로 옮겼다. 그것은 벽파정 뒤에 명량(鳴梁: 목포와 진도 사이에 위치하며 곧 세월호사건이 터진 곳)이 있는데 수가 적은 수군으로써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데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라고 하였다.
즉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라고 훈시했다.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일망정 용서치 않겠다. 라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곧 이순신은 재 등용된 한달 후 12척으로 왜선 31/133척을 격파하였던 것이 바로 이를 명량해전(鳴梁海戰: 2014.4.16. 세월호가 침몰한 병풍도 남쪽에 있다)이라고 한다. 즉 명량대첩(鳴梁大捷)이라고 한다. 때는 1597.9.16.이다.
즉 명량해전 나가기 하루 전날인 이때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라는 유명한 말이다.
이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란 말을 하고난 하루 뒤가 1597년 9월 16일이다.
이로서 사기를 받아 조선수군의 전열을 가다듬을 수가 있었으며 나아가 임진전쟁(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이순신의 최후 해전으로 노량해전이다.
즉 2012년에 여주엑스포가 열린 2012.5.12.~8.12일 까지 열렸으며 이곳이 바로 노량해전이 일어난 곳이다.
아아 위대한 영웅이여. 아아 위급한 나라를 구한 대영웅이여 대대인이여 대보살이여
아아 이순신장군과 아아 안중근의사 등의 위대한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현재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라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아아 이러한 위대한 역사의 얼을 화랑도(花郞道)와 여랑도(女娘道)들에게 나라에서 가르쳐주어야 하는데 하루빨리 역사의 중요함을 알고 곧 역사란 교훈과 판단력과 결단력과 방책을 세우는데 있다.
이러한 위대한 역사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기관을 만들어 나라를 영구히 이어가도록 하여야 한다. 즉 진정한 지혜는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다.
역사연구의 위대함이란 다시 말하여 임진전쟁(임진왜란) 때 일본의 전략은 남해를 통하여 서해로 군수물자와 병력을 움직여 조선을 빠른 시일 내에 완전장악을 할러고 했으나 이순신장군이 바다를 지키고 있는 이상은 일본의 전략은 다 무너지게 되어 도망가기 위하여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으며 또 이순신이 바다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은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郭再祐)가 전라도를 지나가는 통로를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연구기관에서 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한 이유와 또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패한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연구하여 화랑도 등에게 가르친다면 나라는 영구히 힘차게 이어갈 것이다.
▣ 청나라가 청일전쟁에 패한 이유.
청(淸)나라는 서태후의 사치의 극치며 인공으로 만든 이화원(頤和園)은 청나라 11대 광서제(光緖帝) 때 청일전쟁(1894년 광서제 20년)에 써야할 자금을 빼돌려 거대한 인공호수 이화원을 만들었다. 지금은 문화유산 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청일전쟁에 써야할 자금을 빼돌려 이화원을 만들었으므로 청나라는 청일전쟁에서 패하였으며 결국 서태후가 운명하자 청나라는 결국 멸망하였다.
▣ 군사력과 경제력으로는 러시아가 유리했으나 러시아가 러일전쟁에 패한 이유.
1. 시베리아를 넘어 만주에 군대를 투입해야 하는데 시베리아 단선철도에 의존해야 하며 그것도 중도에 바이칼호에서 중단되기 때문에 병력 및 물자수송이 너무나 더디고 어려웠다.
2. 러시아의 니콜라스 2세 정권의 부정, 부패, 무능 등으로 말미암아 러시아정권은 매우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역사의 위대함이여 비록 과거의 주요한 사건 등을 기록해 놓았지만 여기서 전쟁이나 큰 사건 등에 대하여 승패의 원인, 과정, 결과 등을 알아내면 더 좋은 방책을 세울 수가 있기 때문에 역사는 위대함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60번째 무료강의 종(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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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인은 나라가 위험하면 자기 몸을 희생하여서라도 나라를 구할려고 하지만 소인은 나라가 위험하면 간특한 꾀를 내어 나라보다도 재물을 더 귀하게 여긴다.
역사는 영원하다. 곧 소인은 잠깐은 재물에 부귀를 누릴지는 몰라도 그 얼은 오래 누리지를 못한다. 그러나 대인은 그 몸은 희생하지만 그 얼은 영원히 누리게 된다. ♬
신축년(辛丑年) 단기(檀紀) 4354년 서기(西紀) 2021년 4월 8일 목요일.
홍익방건축(弘益房建築) 특허사업 대표이며 천지인방연구소(天地人龐硏究所) 소장
황효상(黃孝相)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용사(庸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