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정국의 결과로 대통령이 된 문재인이 집권한지 어느덧 5개월. 그 기세가 만만치 않다. 특히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동안 있었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전부 갈아엎기라도 할 기세다. 무엇보다 근래 들어서는 이명박 정권시절 국정원 정치공작이니 뭐니 하면서 이미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칼을 겨누는 모양새다.
개중에 근래 들어서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국정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취소 청원운동을 벌이려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해서 파문이 일었다. 헌데 한가지 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 국정원의 정치공작,정치사찰은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경우 남북분단의 현실과 북한의 대남공작을 우려해서라도 정보기관의 위상과 의미는 분명 지켜져야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라도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은 가급적 삼가고 지양해야 할 문제다.
헌데 이 와중에 불거져 나온 국정원의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상 취소 청원운동 공작의혹은 좀 묘하다. 일단 이게 애초에 한 민주당 관계자(굳이 누구라고 언급 않겠다)에 의해 언론에 흘러나왔다. 허나 아직까지 분명한 실체가 밝혀진것도 없는 일종의 ‘카더라’ 수준이다. 그리고 이 전 대통령 시절 관련 불거져나오는 의혹 기사들을 쭉 살펴보면 아무래도 과거 정권시절 기밀문서들을 이미 현 국정원과 검찰은 물론 민주당 주요 관계자들도 이미 공유,열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긴다. 이미 이 전 대통령의 한두 측근도 밝힌바와 같이 만약 사실이면 엄연한 불법행위다.
가만보면 노벨상에 대한 우리 언론과 사회에 기묘한 환상같은게 있는 모양인데, 노벨상은 올림픽이나 UN과는 달리 우리 근현대사와 별다른 인연도 없는 부문임을 감안하면 이건 그저 막연한 부러움이나 시샘같다. 유럽에서는 그 나라에 대한 판단기준이 월드컵을 어디까지 올라가봤나 또는 노벨상을 몇 개 타봤나 하는것이란 말도 있는데, 노벨상 한번 지금껏 제대로 타보지 않은 나라에선 심지어 이웃 중국,일본에서조차도 노벨상 수상자가 종종 나오는데 우린 그런 수상자조차 여태 없는것에 대한 선진국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과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대략 그런 감정인 것 같다.
헌데 알고보면 노벨평화상은 노벨상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많은 수상부문이라고 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그러면 대다수 한국인들 머릿속에 가령 평생을 희생과 헌신으로 살다간 종교인 ‘마더 테레사’ 같은 이라던가 하는 사람을 떠올리곤 하기 때문에 노벨평화상이 대단한 성인군자나 도덕군자가 받게되는 상인줄 아는 모양인데 알고보면 노벨평화상은 그런 희생,헌신의 의미보다는 정치적 의미에서 상을 받게된 경우가 더 많았다.
가령 9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고르바초프의 경우 냉전종식에 기여한 점 때문에 상을 받았지만 정작 그 수상 얼마지나지 않아 발트3국 독립요구를 강경하게 진압 해당지역 주민들로부터 ‘이럴거면 노벨평화상을 차라리 후세인에게 주라’는 식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 몇 년전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아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나라에서 조차도 ‘오바마가 대체 뭘 한게 있다고 평화상을 받느냐 ?’며 어리둥절해하는 여론이 꽤 있었다. 심지어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카터도 알고보면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이렇게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보면 대개 국가지도자,정치지도자인 경우가 적지 않아 비록 평화상 수상 자체는 개인에게 영광일지언정 그 인물 자체의 정치행보,인생행로엔 논란이 있는 사람이 꽤 있다. 또 간혹 국제적인 봉사활동 같은 것을 벌이는 단체가 상을 받기도 했지만 이런 단체들도 사실 내부적으로는 크고작은 문제들이 없지는 않다. 이렇게 사람이 완전무결한 절대선의 도덕군자가 있을수 없는것처럼 노벨평화상 수상자들도 대개 정치적으로나 개개인의 인생사에는 다 명암(明暗)이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펴고 분단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이루어 냉전시대 이후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한반도에 새로운 남북교류의 장을 연 인물로 평가받고 있긴 하지만, 사실 햇볕정책은 오히려 다 죽어가는 북한정권을 되살리고 오히려 북한인권과 탈북자를 외면했다는 비판도 함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이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 김대중의 명(明)이라면 그로인해 오히려 북한인권과 탈북자를 외면하게되는 결과를 만든 것은 그의 암(暗)이다.
또 하나 따지고보면 오늘날 남남갈등의 근본원인이자 출발지점도 햇볕정책 때문이었다 할 수 있다. 물론 우리사회 좌우갈등,이념갈등의 근본원인을 따지고보면 결국 40년대 후반 해방정국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겠지만, 적어도 정치갈등의 부분에 있어서 ‘남남갈등’이니 ‘이념갈등’이니 하는말은 햇볕정책 이전까진 없었다. 그전까진 많은 정치학자,언론인,지식인들이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비판하면서 지역감정,보스정치,계파정치,정경유착 이런것들은 비판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념갈등’이나 ‘남남갈등’이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90년대 후반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정치를 비판하면서 많은 정치학자,언론인,지식인들이 한 말은 우리나라 정당들은 서구 선진국처럼 이념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지않고 인물중심인 것이 문제라는게 햇볕정책 이전까지 한국정치를 비판할 때 늘상 나오던 이야기였다.
그러던 것이 햇볕정책이 오히려 북한인권과 탈북자를 외면하는 결과를 만들면서 이를 불신하는 세력이 만들어졌고 그 흐름이 결국 보수우파 운동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오늘날의 ‘남남갈등’, ‘좌우갈등’ 구도를 만든 핵심 원인이었던 셈이다. 따지고보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정치구도도 이념적으로 분화하는 과정을 거친 셈이지만 여하튼 우리사회 지난 20년 극심해졌던 남남갈등,이념갈등도 따지고보면 그 근본원인이 햇볕정책 때문이다. - 어찌보면 그전까진 주로 우리나라 정치의 주요문제가 지역감정,보스정치,계파정치였지만 햇볕정책 이후의 갈등을 거치면서 이념갈등이란 새로운 갈등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거쳤으니 그 점 또한 김대중씨가 우리 한국 정치사에 기여한면으로 볼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국립묘지에 잠들어계신지 8년이 지난 그분은 그곳에서도 자신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평생 제일가는 영광이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계실련지 모른다. 하지만 노벨평화상과 남북정상회담 추진이 그분의 가장 큰 공로라면 햇볕정책으로 인해 북한인권과 탈북자를 외면하게 되고 바로 그점에 대한 불신의 출발에서 결국 오늘날 남남갈등이란 새로운 정치갈등,이념갈등이 시작되었다는 점 역시 그분이 앞으로 영원히 함께 이고 가야할 역사적 멍에임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란다. - 박정희 대통령 역시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다는 공과 함께 장기집권과 유신독재 그리고 인권탄압의 과오를 함께 떠안고 가야하는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국정원의 정치사찰,정치공작은 분명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와 별개로 노벨평화상 수상이 그 수상한 당사자와 수상 이유에 대해 아무도 비판해서도 안되고 비난해서도 안 되는 완전무결한 무오류,절대선의 존재나 가치인 것으로 인식되어서는 곤란하겠기에 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