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마늘, 알, 해모수, 고주몽, 동명왕=동명성왕에 대한 종합지적에 대하여.
2017.02.20
황효상
사람은 태어나면 무슨 직업이든 그 직업에 따라 먹고 살아가야 한다. 먼저 먹고살기가 바뿐 중생들은 역사가 어떻게 기록을 해놓았든지 그것에는 관심없이 내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것 때문에 역사가 황당무계(荒唐無稽)하게 기록을 해놓아도 그것에는 관심없이 살아가고 있는 실정들이다.
그러나 역사는 나라 전체를 보면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곧 역사란 내 직업과 내 인생과 내 사업에 모든 것이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역사는 나라에서 아주 중요한 학문의 과목으로 하여야 만이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가 있다.
역사가 왜곡된체 나라를 올바로 이끌고 갈 수가 없다. 역사가 왜곡되면 온 백성의 얼이 즉 바른정신이 흐트러져 밝은 지혜를 발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곧 내 몸의 오장육부가 꼬이면 결국에는 병이 발생하여 단명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제는 밝은 얼을 즉 밝은 슬기를 우리가 발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로 슬기를 모아봅시다.
곧 실현불가능한 역사를 황당무계하게 기록한 부분을 바르게 밝혀서 바로 세워봅시다.
우리는 슬기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하니 현재까지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왜곡된 역사와 왜놈들의 역사말살에 말린 식민사관들의 왜곡된 역사를 뛰어넘어서 우리의 슬기로 다시 재정립을 하는데 서로 슬기를 모아봅시다.
역사란 사실인 실록의 역사를 기록할 때는 그 역사서는 진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 반면에 사실이 아닌 것을 기록할 때는 그 역사서는 값어치가 없다.
어느나라 역사서나 다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주요한 역사서를 저술한 연대적으로 순서를 보면
신라시대의 삼성기(三聖記) 대진국=발해시대에 단기고사(檀奇古史) 고려시대에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제왕운기(帝王韻紀) 고려말에 단군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夫餘紀) 조선시대에 동국통감(東國通鑑) 태백일사(太白逸史) 발해고(渤海考) 규원사화(揆園史話) 등으로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그 외 많은 역사서가 있지만 이곳에서는 제목과 같이 쑥, 마늘, 알, 해모수, 고주몽, 동명왕=동명성왕에 대하여 황당무계하게 기록을 해놓았으므로 이 역사서에서 잘못된 부분을 종합적으로 지적을 하면서 바로 재정립을 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서만 잘못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세계역사서나 성경에서도 다 황당무계한 것들을 기록 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역사에서도 이 쑥, 마늘 사건보다도 더 괴상한 이야기들을 무수히 많이 기록을 해놓았다.
성경에서 천지창조의 아담과 이브에서 여자인 이브를 만들 때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었다는 등은 현재 실현불가능한 일들이다. 다시 말하여 남자의 갈비뼈를 과연 마취도 않놓고 칼로 배를 갈랐는지 또 어떻게 꿰매었는지 도대체 어떻게 갈비뼈를 꺼냈는지 이해할 수가 도저히 없다. 이러한 것은 실현불가능하다. 곧 이러한 것은 역사를 모독(冒瀆)하는 것이며 역사를 농락(籠絡)하는 처사로 역사의 큰죄를 지었다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곧 역사란 실록의 역사를 기록할 때 인정하는 것이다.
자우간에 역사가 다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상기 제목과 같이 쑥,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기록한 이 부분에 대한 잘못된 역사서는 다음과 같다. 이외는 아주 훌륭한 문화업적을 남겼다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곧 우리나라의 역사서 중에서 신라시대에 저술한 삼성기(三聖記)의 역사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책속에는 한인국(桓因國=桓仁國)의 7대 역사가 있으며 한웅국(桓雄國)=환웅국의 18대 역사가 있으며 이 한웅국=배달국(倍達國)시대에서는 천부경과 그리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그대로 모든 행사와 경전을 단군왕검에게 전하였으며 그리고 단군의 47대의 총재위기간인 2096년간을 지나서 BC 239년에 북부여를 해모수가 일으키고 BC 108년에 고두막한=동명왕=동명단제가 한나라를 물리치고 BC 86년에 북부여의 5대를 이어가고 BC 86년 이때에 신라의 옛땅 이라고 하였으며 그리고 고주몽이 BC 58년에 북부여를 이어서 고구려를 일으켰다는 아주 중요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위대하며 고귀한 역사서다. 곧 고려말에 지은 북부여기에서 고두막=동명왕=동명단제와 고주몽이 고구려를 이어가는 역사의 내용과 상통하게 기록하고 있다.
쑥, 마늘에 대하여 제일먼저 잘못을 기록한 역사서는 신라시대에 저술한 삼성기(三聖記)의 역사서다. 그다음은 삼국유사(三國遺事)다. 그다음은 태백일사(太白逸史)에서도 곰이 쑥, 마늘을 먹고 곰과 호랑이가 21일 동안은 잘 참고 견뎠지만 호랑이는 못 참고 곰은 그 후 100일 동안 참아서 신령스런 여자로 변했다는 황당무계한 것을 기록을 하였다.
차라리 참고문헌이 없다든가 모르면 기록을 하지 말아야지 실현불가능 한 것을 제일먼저 삼성기 이곳에서 기록을 하여 현재까지 해독을 끼치고 있다.
이 당시에는 만주 백악산 아래 도읍을 신시(神市)에 나라를 개천한 한웅시대=배달시대=신시시대의 역사다. 이집트역사에서 파라오 즉 왕의 무덤을 만든 피라미드를 건설한 시대는 BC 2650년이다. 이러한 시대가 바로 한웅국시대인 14대 치우천왕시대이다. 곧 치우천왕이 먼저 나라를 이어가고 있을 때 중국에서 말하고 있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말하기를 중국의 역사가 제일먼저 시작하는 역사가 바로 황제헌원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 황제헌원 다음에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임금, 순(舜)임금 시대의 역사가 이어가고 있다고 사마천의 사기 중 오제본기에서 기록하고 있다.
곧 이집트가 만든 세계불가사의(世界不可思議) 한 피라미드를 만든 기간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가 책을 9권 중 2권에서 말하기를 10만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이 걸렸다고 말하고 있다. 곧 큰 피라미드를 만드는 데 약 40년 정도의 기간이 걸렸다고 말하고 있다. 이 헤로도토스의 책은 사마천 사기보다 300년 전에 저술했다. 그리고 이집트의 역사책 30권을 BC 246년에 편찬한 사제 마네톤도 사마천 사기보다도 155년 전에 편찬했다.
헤로도토스는 사후에 유명해진 인물로서 BC 480년경~BC 425년경이며 그리스의 역사가이다. 그는 그리스, 이집트, 시리아, 소아시아 등을 여행하고 책 9권을 저작하였다. 그의 업적은 서양의 역사를 최초로 기록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인간이 인생 삶에 있어서 개인의 분노와 복수가 역사를 남기게 되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의 위대한 작품인 라는 책의 주 내용은 BC 492년경~BC 448년경까지의 페르시아가 제국이 된 것과 그리고 그리스와 페르시아와의 2차례의 전쟁의 원인과 과정과 그리고 그리스의 어려운 역경에서도 내나라는 내가 지켜야 한다고 하여 합심하고 단결하여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 사실의 실록의 역사를 적어 그 당시의 과거의 기억을 잊지 않게 하여 그리스가 전쟁에 승리한 역사를 기억하도록 하였다.
곧 BC 2650년에 만든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만드는데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로 피라미드를 만들 때에 우리나라의 역사로는 한웅국(桓雄國)=한웅시대=배달시대=신시시대인 14대 치우천왕의 한웅시대이므로 이미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며 이를 이은 단군왕검의 시대에도 이미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므로 곰이 쑥, 마늘을 먹고 웅녀(熊女)인 여자가 되었다고 기록한 것은 잘못되었다. 라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 헤로도토스가 서양의 역사책을 지은 것은 BC 425년 전이며 그 시대는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면 제43대 물리(勿理)단군시대이다. 재위기간은 BC 461년~BC 425년이며 재위는 36년간이다.
사제 마네톤이 이집트사를 편찬한 BC 246년은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면 마지막 제47대 고열가(高列加)단군시대이며 재위는 BC 295년~BC 238년이며 재위는 58년간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지은 BC 91년은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면 북부여의 제4대 고우루(高于婁)단제=단군=임금시대이며 BC 120년~BC 87년까지로 34년간 재위하였다. ≫
우리나라는 고대사를 헤로도토스, 사제 마네톤, 사마천의 사기의 역사 보다 그 전에 편찬했다. 곧 3대 가륵(嘉勒)단군께서 신축년(辛丑年)이며 재위 3년에 즉 BC 2180년에 배달유기(倍達留記)를 편수하도록 하였다. 즉 사마천의 사기가 BC 91년에 완성된 것으로부터 따져도 무려 2089년이나 앞서서 만들었다.
그러므로 배달유기(倍達留記)는 우리나라의 근본의 비장서이며 세계역사와 고대의 역사를 연구 하는데 있어서 아주 고귀한 역사서 라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그러나 나라를 잃고 역사서가 빼앗기고 불태우는 바람에 지금은 전하지 않지만 황제헌원 이전의 역사인 한웅시대에 복희씨와 염제신농씨 등의 인물이 나오는 것은 이집트 역사를 통하여 보면 반드시 한웅시대에 존재하여 활약하였다고 증명이 되고 있다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이러한 배달유기의 역사서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에도 삼성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역경(易經)의 계사전하(繫辭傳下) 2장, 북송 때 소강절 선생이 지은 황극경세서, 태백일사에서 복희씨와 염제신농씨 등의 인물을 기록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우간에 단군의 역사와 북부여의 역사는 세계역사에서 아주 주요한 기점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상기 제목과 같이 우리나라의 위대한 건국임금을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 이 부분에 대한 잘못된 역사서는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는 왕의 명령으로 만든 아주 주요한 역사서다. 그런데 고구려와 신라의 건국 임금을 알에서 태어났다고 황당무계(荒唐無稽)하게 기록을 하였다. 곧 삼국사기는 왕명으로 편찬한 역사로 그 전에 잘못된 역사를 이때에 올바르게 밝혀서 알 등은 빼고 실록의 역사만 기록을 하여야 마땅한데 그대로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기록한 것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잘못을 저질렀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삼국사기 원본은 없다. 다만 삼국사기 2차본이 일본 국내성(國內城)에 소장되어있다. 그러하므로 삼국사기가 알에서 태어났다고 왜곡을 하였는지 아니면 왜놈들이 역사를 왜곡을 하였는지 국가기관에서 밝혀주시기를 바라옵니다.
곧 우리나라의 고구려와 신라가 건국하는 시대는 전한나라 7대 한무제가 BC 87년에 별세한 후며 또 사마천이 사기를 BC 91년에 지은 후 BC 86년에 운명한 후의 역사의 이야기이다. 고로 우리나라의 위대한 임금을 알에서 태어났다는 역사는 위대한 임금을 모독(冒瀆)하는 짓이며 나아가 역사를 농락(籠絡)하는 처사들이다. 삼국사기를 왜곡한 그 부분에 대한 역사의 큰범죄를 물어야 한다 라고 봅니다.
그다음에는 삼국유사도 잘못된 삼국사기의 잘못을 그대로 기록을 하게 만들었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는 그래도 자랑스러운 것은 한인=환인, 한웅=환웅, 복희씨, 염제신농씨, 단군왕검, 번한조선 즉 위만이 번한조선을 찬탈한 위만조선, 북부여 등의 문구를 기록한 것에 대하여는 자랑스럽다고 봅니다.
그리고 상기 제목과 같이 고구려 건국임금인 고주몽을 해모수의 아들로 기록한 잘못된 역사서는 다음과 같다.
고려시대에 왕명으로 만든 삼국사기는 해모수가 북부여를 BC 239년에 일으켰는데도 불구하고 즉 북부여의 6대까지의 역사도 기록을 못하면서 또 단군조선의 47대까지의 역사도 기록을 못하면서 어떻게 BC 58년에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을 재위기간만 따져도 해모수와 고주몽과의 181년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해모수의 아들이 고주몽 이라고 하였는지 이는 도저히 해모수의 아들이 될 수가 없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잘못이 결국에는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와 동국통감까지도 모두가 삼국사기의 잘못된 그대로 황당무계하게 고주몽을 해모수의 아들로 기록을 하게 만들었다.
고려 17대 인종의 명으로 편찬한 삼국사기에서 더 황당무계한 것은 삼국사기 총 50권 중 본기가 28권이다. 신라본기 12권 고구려본기 10권 백제본기 6권이다.
고구려본기 제1권에서 고주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죽은 해모수가 어떻게 유화와 정을 통해 알에서 고주몽이 태어났다는 것은 너무나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역사를 기록했다. 또 북부여의 역사도 기록이 없으면서 해모수와 고주몽과의 나이차이가 181년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것을 고주몽을 해모수의 아들로 기록하였다. 즉 해모수는 북부여의 시조이며 고주몽은 북부여의 마지막 6대가 아들없이 별세하자 그 뒤를 이어서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게 된 역사를 무려 181년간 이상의 차이가 나는 사람을 해모수의 아들이 고주몽 이라고 황당무계하게 삼국사기는 기록을 하였다. 이 해독은 결국에는 현재까지 온 백성을 얼간이로 만들게 하였다. 이 역사의 큰죄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왜놈이 이러한 황당무계한 짓을 하였다면 왜놈에게 영구히 그 역사의 대범죄를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 삼국사기에서 더욱 더 기가 찬 것은 역사로는 북부여의 5대 해부루가 잠시 이어가다가 임금자리를 동명왕=고두막=동명단제에게 물려주고 가섭원(분릉)으로 가서 이루어지는 시대에 BC 79년에 고주몽이 태어났고 2년 후인 BC 77년에 해부루 왕이 늙도록 아들이 없어서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빌어서 낳은 자식이 바로 금와 라는 괴상한 자식을 얻어서 태자로 삼았다. 곧 고주몽과 괴상한 금와는 나이가 2살 차이다. 그 후 해부루가 별세하고 난 뒤 괴상한 돌에서 얻은 금와(金蛙)라는 태자가 자리를 이어가는 시대에 어떻게 북부여의 시조이신 죽은 해모수가 등장하고 유화와 정을 통해 알에서 태어난 자식이 고주몽 이라고 황당무계하게 기록을 해놓았다. 아아 역사의 대범죄를 저질렀다. 아아 이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
삼국사기의 이러한 잘못은 결국에는 삼국유사, 제왕운기, 또 조선시대의 9대 성종 때 완성한 동국통감에도 삼국사기와 똑같이 황당무계하게 기록하게 만들었으며 즉 죽은 해모수와 유화를 등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상기 제목과 같이 고주몽을 동명왕=동명성왕으로 기록한 잘못된 역사서는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에서 더 황당무계한 것은 북부여의 역사도 기록을 하지 않고서 어떻게 북부여의 5대 단제=단군=임금인 동명왕=동명단제=고두막한=고두막단제를 고주몽으로 기록을 해놓았다. 이는 위대한 우리 북부여의 역사를 모독하는 처사며 역사를 농락하는 처사다. 즉 세계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북부여의 역사가 삼국사기에서는 완전히 말살되었다.
북부여의 역사가 왜 중요하냐 하면
역사는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세운 후 주나라가 진시황제의 아버지인 진(秦)나라 장양왕에게 서주가 BC 256년에 멸하고 난 후 동주가 BC 249년에 멸하고 난 10년 후 단군조선 마지막 47대는 진시황제에게 BC 239년에 일부가 멸하고 백악산의 아사달로 돌아갔다. 그러나 같은 해 BC 239년에 북부여를 일으킨 해모수에게 넘어갔다. 그 다음해인 BC 238년에 단군의 47대 마지막 고열가단군은 백악산에 신선이 되었다. 즉 별세하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북부여(北夫餘)가 일어나는 역사의 흐름이다.
곧 북부여의 6대까지의 역사가 북부여의 건국은 BC 239년이며 북부여의 마지막 6대는 BC 58년으로 182년간의 북부여의 역사시대에 세계역사에서 주요한 역사를 보면 진시황제가 천하통일을 BC 221년에 이루어지기 전의 역사며 한고조 유방의 역사가 있으며 전한 한무제가 조선 즉 번한조선(番韓朝鮮)을 말하며 즉 위만(衛滿)이 번한조선을 찬탈하여 위만조선(衛滿朝鮮) 즉 위씨조선(衛氏朝鮮)을 말하며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에서는 진번조선(眞番朝鮮)을 말하며 이러한 BC 108년에 침략한 역사가 있으며 또 전한 7대 한무제 때 사마천이 사기를 쓰게된 원인의 역사가 있으며 소하, 장량=장자방, 한신, 등의 역사가 있으며 즉 사마천 사기 중 유후세가(留侯世家)에서 장량은 한(韓)나라가 진(秦)나라에 멸하자 시황제(始皇帝)를 암살(暗殺)하기 위해 창해군(滄海君) 즉 창해역사(滄海力士: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시대 사람)를 만나 박랑사(博浪沙)에서 철퇴를 던졌으나 실패하여 도망 다녔다. 그 후 하비(下邳)의 다리 위에서 황석공(黃石公)으로부터 태공병법(太公兵法: 강태공의 병법)을 배워 유방(劉邦)을 도와 소하(蕭何)와 한신(韓信)과 더불어 한(漢)나라를 세웠다. BC 183년 이때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이 운명한 역사가 있으며 한무제 사망, 사마천 사망의 역사 있으며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역사가 있으며 BC 59년에 로마의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의 전성시대이며 BC 44년에 카이사르는 피살되는 역사 등이 있었다.
곧 북부여의 6대 기간 동안의 역사는 세계역사에서 아주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북부여의 시조이신 해모수를 지나서 북부여의 4대 단제=단군=임금시대에
즉 북부여의 4대 단제는 고우루=해우루단제는 3대 고해사단제의 아들이다.
고우루의 재위기간은 BC 120년~BC 87년까지로 34년간 재위하였다.
북부여의 4대 고우루단제=단군=임금시대에는 번한조선 즉 위만이 번한조선을 찬탈하여 위만조선 이라고 하며 그의 손자 우거왕(右渠王)이 BC 108년에 멸하는 역사가 바로 사마천의 사기 중 조선열전(朝鮮列傳)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때는 전한 한무제 시대이다. 즉 BC 108년은 바로 북부여의 4대 재위 13년이다.
북부여의 제4대 재위 13년인 이러한 이때에 졸본에서 북부여의 쇠약함을 구하기 위해 BC 108년에 나라를 동명(東明)이라 하고 스스로 동명왕(東明王)에 재위하여 한나라를 물리친 임금이 자로 동명왕이다.
곧 고두막=동명왕=동명단제의 재위기간은 BC 108년~BC 60년까지로 총재위는 49년간 하였다. 즉 동명왕으로 22년간 북부여 5대로 27년간 총 49년간 재위하였다.
동명왕=고두막단제의 이러한 시대에 중국의 역사는 한고조인 유방이 노관을 연왕으로 봉(임명)하고 그 당시 연나라 사람 위만이 번한조선을 찬탈하고 위만조선 즉 위씨조선의 시대를 지나서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에서 위만의 손자 우거왕(右渠王)을 전한 7대 한무제가 BC 108년에 멸망시키는 시대이다.
이때에 졸본에서 북부여의 쇠약함을 구하기 위해 BC 108년에 나라를 동명(東明)이라 하고 스스로 동명왕(東明王)에 재위하여 한나라를 물리친 임금이다.
이러한 한무제의 군사를 물리친 위대한 동명왕=동명단제=고두막단제를 삼국사기에서는 북부여의 역사도 기록이 없으면서 어떻게 북부여의 5대 단제로 이어가는 동명왕을 농락하는가.
다시 말한다면 북부여 역사에서 동명왕=동명단제=고두막단제가 분릉에서 북부여 5대단제로 재위할 때 고주몽이 분릉에서 태어났다. 즉 북부여에서 말하는 동명왕은 BC 108년에 나라를 스스로 동명(東明)이라고 했으며 고주몽은 BC 58년에 고구려 나라를 시작하는데 이 재위한 것을 따져도 북부여에서 말하는 동명왕과 고구려의 고주몽과의 차이는 50년 이상이나 차이가 난다.
역사는 삼국사기에서 북부여의 5대로 이어가는 동명왕=동명성왕을 황당무계하게 고주몽으로 기록한 것이 결국에는 삼국유사에서는 고주몽을 동명왕으로 기록하게 했고 또 고주몽을 단군의 아들로 기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제왕운기에서는 고주몽을 아버지는 해모수요 어머니는 유화 라고 기록하고 고주몽을 휘(諱)는 동명(東明)이라고 기록하게 만들었다. 또 조선시대의 9대 성종 때 완성한 동국통감까지도 삼국사기와 똑같이 황당무계하게 기록하게 만들었으며 즉 죽은 해모수와 유화를 등장하게 만들어 고주몽을 알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아아 삼국사기의 잘못은 크고 크도다. 이 당시에는 세계역사에서 괴상하게 알에서 태어났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또 있을 수도 없었는데 괴상하게 기록하게 만들었다. 아아 이 왜곡한 역사의 죄를 어떻게 물으면 좋겠습니까? 아아 왜곡의 역사를 과연 우리의 지혜로 뛰어넘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려분의 지혜를 기다립니다.
이러한 쑥, 마늘, 알, 고주몽이 해모수의 아들이니 동명왕이니 하는 잘못된 황당무계한 기록들을 먹고살기에 바빴던 저도 그 당시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넘어갔지만 제가 퇴직을 하고 역사에 관심을 가져 총 10권을 전자책을 발간을 하고 현재는 를 발간을 앞두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곧 올바른 얼인 잔잔한 마음속의 이성으로 역사를 대하다보니 너무나 황당무계하고 너무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는 젊은 화랑도(花郞道)와 여랑도(女娘道)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제시할 수가 없어서 제가 밝혀서 곧 발간을 하는데 힘을 쏟아보겠습니다.
진정 이제는 왜곡의 역사를 뛰어넘어야 하며 곧 나라를 잃은 슬픔으로 왜놈의 간특한 역사 말살과 왜곡의 역사를 저지른 식민사관들의 왜곡역사를 뛰어넘어야 만이 미래를 힘차게 밀고 갈 수가 있다고 봅니다.
저의 좌우명(座右銘) 중에 하나가 원망보다는 돌파구(突破口)를 찾아라 입니다.
우리나라는 설과 추석만 해도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가장 좋은 풍속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 외 효자가 충신보다 더 앞서는 효심과 단결의 얼을 가지고 있으며 서민들의 애한을 해결해 주기위해 만든 독창적인 한글이 있으며 또 남을 도와주는 풍속과 천지와 동락하는 신명나는 풍속들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의 참얼을 빛내봅시다.
여러분의 슬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농사 우리가 지어보세. 우리의 위대한 역사 우리가 찾아서 우리서로 한(桓)얼을 한(韓)얼을 즉 참얼을 가지고 만나보세.
상기의 글은 에서 나오는 일부의 글입니다. 곧 발간을 하는데 마무리에 온힘을 쏟아보겠습니다.
桓紀 9214년 神市開天=雄紀 5915년 檀紀 4350년 丁酉年(정유년) 西紀 2017년
2월 20일 월요일 (음력 1월 24일)
천지인방연구소(天地人龐硏究所) 삼라만상을 좋아하는 心操彿山(심조불산) 庸史(용사)
* 나머지 자료와 참고문헌은 제 블로그(자료실 또는 홍보실) 첫 글인
천지인(天地人)방으로 http://blog.naver.com/hhs0203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