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탈 블루스
자연인 이창근
모든 동식물이 살아가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해발 700m. 하지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물도 식량도 구하기 어렵다면, 문명의 이기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그곳은 과연 낙원이라 할 수 있을까.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살고 싶다는 로망이 어쩌면 환상일 뿐인 이유다. 하지만 여기, 환상을 일상으로 만든 남자가 있다. 아무도 없는 건 물론이고, 전기도 없고 가끔은 물도 없어지는 이곳에서 6년째 씩씩하게 살아가는 남자. 자연인 이창근(63) 씨다.
그는 30년 차 베테랑 택시 기사였다. 택시 기사들의 애환 1순위라 해도 과언이 아닌, 소위 ‘진상 손님’도 그에겐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음가짐은 대범하게, 대처는 슬기롭게. 그렇게 긍정의 기운을 가득 실은 그의 택시엔 늘 새로운 세상이 들어와 앉았다. 젊은이들에게선 발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 이야기를, 노인들에게선 삶의 지혜를 배웠다는 이창근 씨. 귀동냥일 뿐일지라도 그로 인해 그의 세계는 넓어지고 풍족해졌고, 그것은 아무도 없는 산골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이, 기술이 되었다.
치매를 앓던 어머니와, 병환으로 누워지내시던 아버지. 아직 어리기만 한 두 아들.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장남으로서 짊어진 책임감의 무게는 상당했지만 결국 제 몫을 다 해냈던 자연인. 시간이 흘러 그의 어깨도 조금 가벼워졌을 때, 평소 막연히 꿈꿨던 산골의 삶을 구체화 시키기 시작한다. 하루에 2시간씩 연장 근무를 하며 차곡차곡 성실히 ‘산골 자립 자금’을 모았고, 마침내 계획대로 산골 입성에 성공한 자연인.
하지만 첩첩산중에 사람이 지낼 공간을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산골은 생각보다 더 척박했고, 넉넉하다고 생각했던 예산은 금세 동이 났다. 덜컥 겁이 난 그는 마을로 내려가 밭일이나 공사 일을 도우며 일당을 모았고,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해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 살겠노라 시작했던 삶인데, 이럴 거면 뭐 하러 산에 왔을까.
그때부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그의 행보가 시작된다. 그의 손끝에선 온갖 물건들이 새 생명을 얻는다. 버려진 목욕탕 캐비닛은 신발장이, 버려진 톱날은 작두가, 에어컨 가스통은 화목난로가 되고, 압력밥솥은 꽁꽁 언 호스를 녹일 비장의 무기가 된다. 가끔은 꽁꽁 언 물웅덩이에서 얼음을 깨 물지게를 날라야 하고, 엄동설한에 발이 묶일 때를 대비해 돼지 뒷다리를 신줏단지 모시듯 해야 하지만 그는 이 생활이 아직 즐겁기만 하다. 이 ‘아무것도 없는’ 산골이 그에겐 눈앞에 놓인 로망이고 낙원이니까.
자연인 이창근(63) 씨의 오랜 로망을 담은 이야기는 2025년 1월 15일 수요일 밤 9시 10분 MBN<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