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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MBN 집중분석’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아래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MBN <집중분석>
매주 월~금 오후 5시
재방 익일 새벽 1시, 새벽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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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신영희
(VCR)
판소리 인생 61년 만에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로 인정받은 명창, 신영희. 그녀는 쓰리랑 부부에 국악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하기도 했는데. 아직도 국악에 대한 한결같은 열정을 보이고 있는 그녀의 소리인생 61년을 조명해 본다.
▶MBN 고승덕의 집중분석, 오늘 첫 번째 손님은 우리 시대의 명창, 국악인 신영희 선생님 모셨습니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더 좋아지신 것 같아요.
▶제가 뵌 지가 옛날에 김미화 씨랑..
-한 20년..
▶20년 가까이 된거죠. 옛날에 쓰리랑 부부 한창 하실 때.
-네, 그때 같이 뵈었죠.
▶신 선생님은 지금도 처녀처럼 곱고 젊으세요.
-속이 없어서 그래요.
▶참 반갑고요. 얼마 전에 좋은 소식 있으셨잖아요.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보유자로 지정되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덤덤해요. 오히려 더 무겁죠. 짐을 짊어진 것 같아요. 첫째는 우리 선생님한테 좀..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어서..
▶김소희 선생님?
-춘향가를 하게 돼서 문화재로 지정받았으니까 열심히 제자들 가르치고 후학들에게 좋은 소리를 가르치는것이 저의 의무고. 또 하나는 학생들이.. 32년 된 학생들도 있어요. 저한테 온 제자들이 아무데도 안 가고 그저 저만 바라보고 32년, 30년, 25년, 제일 적은 사람이 10년이에요. 그동안 이 제자들한테도 면목이 없었어요.
▶왜요?
-이수를 시켜야 되는데 이수를 못시키니까. 사실 실력을 냅두고라도 어찌됐던 이수를 시켜야 되는데 그것이 안 되서 사실 가슴이 아팠어요.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안 되니까..
-중요문화재 조교로 있으니까 그랬는데..짐이 무거워졌고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제자들한테 소리도 잘 가르쳐야 되지만 인성, 인격공부도 잘 가르쳐야 되는데 걱정입니다.
▶소리인생 60년이라고 합니다.
-올해 61년째 됐습니다.
▶무형문화재 지정받을 때 60년 이상 해야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조금 더 빨리 받으신 분도 있어요. 저는 실력이 없어서 못하니까 그랬겠죠. 그렇게 저는 생각해요.
▶저희 같은 사람들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받는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요.
-기준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면 거의 큰 제자가 하게 되어있죠. 실력을 갖추고 자기의 모든 사생활이 건전해야죠.
▶사생활까지도 다 검증하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일단 교육자이잖아요.
▶문화재청에서?
-그렇죠. 교육자 입장에서 사생활이 그러면 안 좋죠. 지금 생각해보면 방송을 너무 많이 탄 것도 있었고. 쓰리랑 부부라는 타이틀 때문에 조금 그런 것도 있었죠. 저를 아끼는 분들이 안했으면 했는데..저 같은 경우는 고집부리면서 그 역할을 했어요. 거기서 오는 영향도 있었고..
▶질문에는 원래 없는 부분이지만 사생활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문화재청에서 조사하나요?
-다합니다. 다 알죠.
▶평판 조사도 하고?
-그렇죠.
▶나쁜 소문이 있어서도 안 되고?
-그렇죠. 그래서 예고기간을 한 달간 두죠.
▶한 달간 예고기간도 두고?
-네. 그리고 저는 한 달이 넘고 두 달 넘고 어떻게 하다보니까 새 정부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조금 그랬잖아요. 그래서 멈칫 하다가 3월 14일 날 확정이 된거죠. 그동안에는 꼼짝 안하고. 조금이라도 잡음이 있으면 안 되니까. 평소 생활을 건전하게 해야 되겠죠.
▶사생활 문제로 탈락한 국악인도 그동안 계셨어요?
-그동안은 없었지만 앞으로도 그렇고 그래서는 안 되겠죠. 교육하는 입장이니까요.
▶60년 동안의 사생활 검증까지 거친다고 하면 청문회 보다 더 힘든건데요.
-청문회는 공부를 잘해서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지만.. 이것은 선천적으로 안 타고나면 안 되고 노력안하면 안되고 후천적으로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본격적으로 선생님의 인생 스토리를 제가 묻고 싶습니다. 원래 아버님이 판소리 명창이시잖아요?
-소리하셨습니다. 소리꾼이셨어요.
▶신 치자 선자. 유명하신 소리꾼이신데 아버님의 자제분이 선생님까지 몇 분이시죠?
-2남2녀. 저는 셋째예요.
▶그 중에서 선생님처럼 판소리를 하시는 다른 형제가 있으신가요?
-오빠는 교육계로 가셨다가 퇴직하시고 지금 아산에서 국악을 하고 계세요. 오빠는 소리만 잘 하는 것이 아니고 가야금, 거문고, 사물놀이 하고 계시고. 저희 언니는 일찍 시집을 가셨고. 전혀 국악과는 멀고. 저희 동생이 어렸을때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북을 잘 쳤어요. 3살, 4살 때 잘 쳤어요. 학교 다니면서 그만 두었다가 삼십 몇 년 전에 저하고 같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판소리를 하셨는데 제가 듣기로는 10살 때부터..
-11살 가을부터..
▶그때 아버님이 다른 형제는 안 가르쳐주시고 신 선생님만 판소리를 가르쳐주셨습니까?
-제자들을 가르쳐 주시는데 제가 뛰어 들어갔죠. 학교 갔다 와서.. 그때는 보자기에 싸서 여자들은 허리에 매고 다녔거든요. 부성애라고 할까요. 너무 애를 녹이니까 밖에서 듣다가 그것도 못하냐고 해서 뛰어 들어갔죠. 뛰어 들어가서 한번 해봐라 해서 한번 해봤더니 아버지는 고개를 떨구셔요.
▶왜요?
-하면 안 되잖아요. 이 생활이 너무 힘들고.. 여자가 할 소리는 아니에요. 원래 남자들이 판소리를 했죠.
▶그 당시에는 남자들이 주로 했었잖아요.
-옛날 일제 강점기 때도 그랬지만 협률사라는 단체에서도 남자들이 다 소리를 하고 여자들은 민요..
▶선생님이 시작하셨을 때 판소리로 유명했던 여자 분은 없으셨겠네요?
-계시긴 계셨죠. 그렇게 두각을 못 나타내셨죠. 박초월 선생님이라던지, 저희 김소희 선생님, 박녹주 선생님 등이 계셨어요. 계셨어도 두각을 못 나타내고 63년도에 문화재로 지정을 받은거죠. 지금 대통령 아버님 되시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문화재로 해야 된다 그래서 63년도에..
▶박 대통령 시절에 최초로? 50년 전이네요.
-그때 문화재로 지정한거예요.
▶부성애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소리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기에 딸에게 안 시키려고 하셨을까요. 그 당시에 뭐 때문에 힘들었던건가요?
-힘이 너무 들잖아요. 긴 터널이예요. 소리 공부하면서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그 당시 소리하신 분들은 먹고 사는 건 지장 없으셨나요?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었어요. 어머님이 진도 홍주 내리는 기술자예요. 진도 홍주를 불 때워서 삼 일 사흘 하면 옹기그릇에 하나 나와요. 이것을 아버지 친구들, 그 당시 면장 분들한테 팔아서 생계유지는 했어요. 사남매를 키우시면서 어머니 아버지가 고생을 많이 하셨죠.
▶제가 듣기로는 아파서 약 대신에 전라도 말로 거시기 한 걸 드셨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그것은 목포 나와서..사실이죠. 목이 열네 살 때 쉬어서 안 나와요. 소리를 어렸을 때부터..제 별명이 유달산 다람쥐였어요. 새벽에 막 뛰어올라가 유성각 밑에 굴 하나 있는데서 소리를 두 시간 하고 내려와서 밥 먹고 또 하고. 점심 먹고 하고. 학교는 앞으로 갔다 뒤로 나와 버리고. 그때는 퇴학도 없었어요. 6.25가 나고 얼마 안됐기 때문에 학생 수가 적으니까 퇴학을 안 시켰어요. 그러면 뒷문으로 나오고. 그래서 소리만 하는데 너무 어린 여린 몸에..지금은 좀 좋아졌는데 옛날에 제가 48키로 나갔어요. 그랬을 때 이런 데가 아파요. 어혈 때문에 인분을 많이 먹었습니다.
▶정말 많이 드셨어요?
-많이 먹었어요. 한 1년.
▶효과가 있던가요?
-그걸 먹으면 효과가 나요. 물을 마시는 거죠.
▶다른 판소리 하시는 분들도.. 일종의 민간요법인데.
-민간요법이죠. 옛날 분들은 잡수시는 분들 많았어요.
▶효과는 보신건가요?
-열이 올라오면서 어혈이 없어지는 것 같아서..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집안 생계도 많이 책임지시고. 오빠 대학까지 보내드리고.
-그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가족 중에 능력 있는 사람이 벌어서 식구를 먹여 살리고 학교를 가르치고. 저는 교육열이 굉장했어요. 나는 학교 못 다녀도 오빠는 다녀야 된다. 당시엔 아들들이 서 넛이 됐으니까. 여자는 안 배워도 남자는 배워야 된다는 마음이었어요. 저는 소리를 하니까 오빠가 배워야 된다 그랬죠.
▶우리 신영희 선생님은 국악사에도 기록이 되겠지만 굉장히 큰 업적 중에 하나가 국악의 대중화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하신 분이 아닌가 싶어요.
-처음 섭외가 들어왔을 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 김미화씨가 출연하신 쓰리랑 부부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 전에는 KBS 지정석이라고 해서 창극을 많이 했어요. 따분하다고 잘 안 봐요. 섭외가 들어왔는데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고루한 성격을 갖지 말래요. 앉아서 좋다, 좋다 하면 누가 알아주냐는 거예요. 상품화시키고 들려주고 보여주고 국민들한테. 그래서 좋은 것인줄 알게끔 해야 된다. 그래서 87년부터 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아리랑 남매였어요. 아리랑 남매가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쓰리랑 부부로 하자. 그래서 시작한 것이 굉장한 인기프로그램이 됐죠.
▶아마 선생님이 뒤에서 판소리로 맛깔스럽게 해주시니까.
-둘이만 한 게 아니고 우리나라 전통 문화를 같이 하니까 88올림픽 때 사진 찍으러 오고 난리 났었어요. 가장 인기있는 대한민국 프로그램이 어떤 것이냐. 쇼비디오자키에 쓰리랑 부부다. 남자들도 좋아하고 남녀노소할 것 없이 남자가 잘못하면 남자한테 뭐라 하고 여자가 잘못하면 여자한테 뭐라 하고 감초역할을 했던거죠. 그래서 더불어 저도 부각이 되어 스타 아닌 스타가 된거죠.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셨을 것 같아요. 저만 해도 95년도에 변호사로써 최초로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제 친구들이 전부 미쳤냐고 말렸거든요. 돈이 아쉬워, 명예가 아쉬워 왜 나가서 망가지려고 하느냐. 저 때문에 창피하다고 친구들이 그랬는데 세월이 지나니까 그 친구들이 방송 못나가서 나중에 섭섭해하더라고요. 지금은 후회 안하시죠?
-지금은 시켜도 못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젊었으니까 뭣도 모르고 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도 아무렇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김미화씨도 그때 처음 알게 되신건가요?
-그렇죠. 그래서 집에 와서 소리도 배우고.
▶소리도 배웠어요?
-네 그럼요. 집에도 오고. 송파에 살 때 집에도 오고 그랬어요.
▶신영희선생님 인맥도 많으시겠지만 네 분이 친하다고 하셔서 저희가 네 분을..첫번째가 김미화씨인데요. 김미화씨 하고 궁합이 잘 맞으셨나요?
-딸하고 동갑이에요. 딸하고도 친구고. 엄마하고 저하고도 동갑이고. 인연이 이상하게 돼서..
▶그럼 미화씨가 엄마라고 부르셨겠네요.
-그러진 않아도 어쩔 때는 엄마라고 할 때도 있고, 선생님이라 부르고.
▶김미화씨를 그 당시와 지금의 인상을 비교하면 어때요?
-많이 성숙해졌죠.
▶김미화씨도 그 프로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많이 달라졌죠.
▶그 다음은 이상벽 선생님인데요. 동생이라고 부를 만큼 가깝습니까?
-KBS에 있을 때 저하고 친분이 있었고 그 후로 웰컴 투 코리아 시민협의회 하면서 같이 지방을 다녔어요. 축제 때 같이 다니면서 저녁이면 내가 그랬어요. 어이, 말 올리지 말고 동생 할란가 하니까 누님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당장 그렇게 부르소 해서..
▶몇 살 차이신가요?
-저하고 6,7년.
▶지금도 교류가 있으시고?
-그럼요. 생일 때도 꽃 보내고 저도 보내고 그래요.
▶김미화씨가 저한테 안부 전해달라고 해서 제가 신영희 선생님한테 꼭 물어보고 싶은 건 뭐냐 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씀하더라고요. 김미화씨한테는 코미디가 인생의 전부라고 합니다. 신영희 선생님한테는 국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제 삶이죠.
▶삶 그 자체?
-죽었다 살아나도 다시 소리할 것이고. 소원이 있다면 제자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도 소원이지만 죽을 때 무대에서 소리하다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진짜 국악인이세요. 김미화씨도 웃기다가 무대에서 쓰러지고 싶다고 까지 하셨는데.. 세 번 째 분은 상당히 의외예요. 김태촌씨잖아요.
-아내분하고 제가 친해요.
▶언제부터 친하신거예요?
-오래됐죠. 벌써 거의 30년. 언니 동생하고. 아들 낳을 때도 제가..
▶저는 사실 김태촌씨라고 하면 떨려요, 7,80년대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범서방파였고 좋은 말로는 조직보스라고 하고 나쁜 말로는 주먹인데. 얼마 전에 타계하셨지만.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에요.
▶원래 부인하고 친하셨군요?
-네 부인하고 친해요.
▶우리 신 선생님이 바라본 김태촌씨는 어떤 분이셨어요?
-그렇게 많이 보지는 못했는데 수용소에 있었을 때 아들 결혼식에 제가 갔었어요. 그런데 편지를 보냈더라고요.
▶뭐라고요?
-이렇게 오셔서 감사하다고. 저희 아들 결혼에 와서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편지를 보냈더라고요. 인상이 사실은 저도 무서웠는데 그 편지를 보면서 굉장히 좋은 이미지를..
▶평소에도 엄숙한 분위기예요?
-그러진 않아요.
▶몸집도 별로 크지 않으신 걸로 기억하는데.
-아주 왜소하죠.
▶얼마 전에 타계하실 때도 조화를 보내셨던데요.
-제가 조화를 보냈습니다.
▶마지막은 아까 반가워하신 사미자 선생님이신데. 어떤 인연으로 만나셨어요?
-이 형님하고도 10년 넘게 같이 지방 축제 때 다녔어요.
▶지금도?
-지금도 한 달에 두 세 번은 만나죠.
▶정말 친하시네요, 서로 뭐라고 부르세요?
-제가 형님이라고 하죠. 그런데 생전 말을 안 내려요. 자기야, 당신.
▶선생님은 아랫말 하시고?
-제가 더 어리니까 형님이라고 하는데 말을 안 내려요. 형님 말씀 내리세요 해도 아니야 하시면서. 제자들이 많다고 부러워해요. 집에 오시면 제자들이 설거지하고 왔다 갔다 하고 반찬 하고 밥 차려 주니까 너무너무 즐거워해요. 부러워하고.
▶탤런트는 후배 양성이 직접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부러워하시죠.
▶제가 듣기로는 사미자 선생님이 남도 음식을 선생님께 많이 배웠다고 하시던데
-제가 음식을 하면 드려요. 된장도 드리고요. 짱아찌도 드리고 밑반찬도 드리고. 된장 담아서 맛있으면 드리고.
▶국악 하시면서 음식 공부도 하신 건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만드는 묵은 반찬이라고 할까요. 김치 담그는 법을 다 배웠어요. 세련된 궁중 음식은 아니지만 토속적인 것, 집에서 만드는.. 500그램, 50그램이 아니라 대충 딱 넣어도 간이 맞아요.
▶저도 언제 한번 음식 맛을 보고 싶은데요.
-옛날에 연극배우들도 오셔서 저희 집에서 식사하고. 가수들도 그렇고 많이 잡수셨어요.
▶칠순을 넘으신걸로 아는데.
-넘었죠. 42년생이니까 지금 둘이죠.
▶지금도 너무 곱고 건강하세요.
-지금도 속이 없다니까요. 속이 없고..내가 나이 먹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나이 먹어서 늙으면 늙는 것이고. 제가 수술을 안 하지 않습니까.
▶정말요?
-하나도 한 거 없어요.
▶그런데 주름이 이렇게 없을수가.
-주름 있죠. 자글자글하죠. 요즘 눈이 안 좋아서 안경을 썼지 수술을 안 해요 저는. 그냥 늙은 대로 나이 먹은 대로 살아야죠.
▶나이 먹으셔도 이렇게 고우시면 정말 복 받으신거예요.
-감사합니다.
▶이번에 MBN프로를 처음 맡았어요. 방송한지 5년 만에 복귀를 했는데. 방송도 체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 프로그램 때문에 운동도 하는데. 신 선생님한테 건강 비결을 여쭙고 싶어요.
-저는 어렸을 때 언니가 일찍 시집가고 오빠, 동생 사이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어렸을때부터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어떤 운동을 주로 하셨어요?
-이런 말 하면 정말 창피한 얘긴데..권투도 하고 역기, 아령, 줄넘기.
▶혼자 하신거예요, 오빠랑 같이 하신 거예요?
- 오빠와 같이.
▶오빠도 유단자이신가요?
-그렇죠.
▶어떤?
-권투. 동생은 공수도.
▶선생님은 어떤 도장을 다니신거예요?
-목표에 가시면 목표에 별명이 딱도라고 키가 작으시고 커버링을 굉장히 잘하시는 분한테 배웠는데 1년 동안 배우다가 링 위에서 한 대 맞고 쓰러져서 그 이후로는 안 해요.
▶1년 하시다가. 그럼 만약 권투가 잘됐으면 권투선수가 되셨겠네요?
-아니요.
▶그것은 아니시고?
-소리를 내야 하니까.
▶제가 듣기로는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만 빼고는 소리만 했던 기간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하루에 몇 시간씩 하셨어요?
-새벽 2시간. 밥 먹고 열두시까지. 한 시 두시까지 점심 먹고 다시 소리 시작하고 저녁 먹고 다시 시작하고.
▶하루 평균으로는 몇 시간이예요?
-평균 8시간 9시간 하는 거죠.
▶목에서 피가 나올 것 같은데.
-피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목에서 방울 같은 것이 생겨서 터져요. 상처가 나요. 피를 쏟으면 그건 결핵병 환자죠.
▶목소리가 워낙 허스키하셔서 원래 그러셨어요 아니면 소리 때문에?
-어렸을 때는 미성이었어요. 굉장히 고왔어요. 그런데 남자선생님들한테 소리를 많이 배웠어요. 소리는 통성으로 해라, 꾀를 부리지 마라. 그래서 저는 지금도 야외에서 하는 것이 더 편해요. 실내에서 하는 것 보다 더 편해요.
▶16살 때부터 소리판이라던가 여러 가지 실전경험을 많이 하셨잖아요. 그렇게까지 많이 하신 분은 없으실 것 같은데. 생계하고도 연관이 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신거죠.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 생계가 어머님도 병환에 계시고. 오빠도 고등학교 다니고 동생도 중학교 다니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60년 소리인생에서 공연도 정말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횟수로 따진다면?
-따질 수가 없죠.
▶어떤 공연이 특별히 기억에 남으세요?
-수교되기 전에 러시아 가서 했었고, 독일..
▶언제부터 러시아에 가셨던 거예요?
-러시아는 89년 수교되기 전..
▶수교되기 전부터? 어떤 계기가 있으셨어요?
-헝가리도 수교되기 전에.
▶그때는 외교차원이셨습니까?
-외교차원이죠.
▶러시아 수교의 주인공이신데.
-그럼요, 가서 빗자루로 다 닦아놓아서 대통령하고 수교가 된거예요.
▶아직 한류 열풍이 불기 전이었잖아요.
-그때는 우리가 한류죠.
▶반응이 어땠습니까?
-너무 좋아요. 그분들은 소리를 들으면서..음악이라는 것이 고금을 헤아릴 수 없이 똑같은 것 같아요. 들으면서 자기들이 느껴요. 슬플 때는 저기는 슬픈 데구나, 저기는 재밌는 데구나 그런 걸 다 알아요.
▶지금 공연 장면도 나오고 있는데요. 외국도 많이 다니시고 계시는데. 이 장면이 어디였던 걸로 기억하세요?
-모르겠어요. 너무 많아서 어디였는지 모르겠는데요.
▶저희는 미국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말로 치면 열변을 토하시는 건데. 그때 뭐라고 그러나요? 강의를 잘하면 열강이라고 그러는데 판소리는 열창이라고 그러나요?
-지금은 앵콜이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제창이라고 그랬어요.
▶춘향가를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네 춘향가를 많이 합니다.
▶제가 춘향가를 들으면서 이도령이 춘향을 만나서 가장 애틋해하는 한 두곡을 맛만 보여주신다면.
-장단도 없이요.
▶잠깐만요.
-그럴까요. 이도령이 춘향이를 보고서 하는..
▶아마 우리 시청자분들도 듣고서 많이 박수를 쳐주실 것 같은데요.
-감사합니다.
▶갑자기 주문 드려서 죄송합니다. 누가 그러시더라고. 개그맨한테는 너 웃겨봐 보라고 하는 것이 제일 큰 실례고 소리하시는 분들 한테는 갑자기 준비도 안 되셨는데 부탁드리는 게 가장 큰 실례라고 하시던데.
-오랜만에 뵈니까 좋아서.
▶감사합니다. 요즘 한류 열풍이 불었는데 요즘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뜨고 K팝이라고 해서 아이돌 전 세계 열풍이 불고 있는데 국악은 아직 열풍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열풍이 불겠습니까?
-다시 가라앉았는데. 그러나 우리의 뿌리를 없앨 순 없죠. 뿌리는 그냥 가는거예요. 어느 날 기폭이 심해질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고 걱정 안 해요. 요즘 젊은 후학들은 소리를 너무 잘해요. 소리뿐만 아니라 악기도 잘하고 무용도 잘해서 앞일은 밝고 걱정 안 해요. 젊은 사람들이 잘해서.
▶태권도는 도장들이 전 세계에 생겨서 올림픽 종목이 되기도 했는데 판소리 같은 경우도 학원이나 배움터가 많이 생기고 있나요?
-한국에도 많지만 LA에도 있고 뉴욕에도 있습니다.
▶그런 곳에 지부를 낼 생각은 없으시고요?
-지부가 있습니다.
▶어디에?
-국악협회에 지부가 있습니다. 올해도 일요일날 LA에서 특강을 해달라고 했는데 제가 몸이 안 좋아서 못 갔어요.
▶외국인 제자도 양성하고 계세요?
-있죠.
▶어느 나라 사람이 판소리를 배우러 많이 옵니까?
-일본 사람도 있고, 미국도 사람도 있고.
▶그 분들은 인생을 걸겠다는 분들도 많이 계시나요?
-그런 분들은 안계시죠. 안되죠.
▶취미로?
-말을 더듬는 분들이 말을 하면 더듬는데 소리는 안 더듬어요.
▶지금 후배도 많이 기르고 계시고 배출하고 계시는데. 지금까지 배우고 있는 분들까지 해서 후배 중에 몇 분이나 배출이 되었나요?
-헤아릴 수 없죠. 그러나 거기서 빼어난 인재들, 소리꾼들이 대통령상 받은 제자들이 8명 됩니다. 최고로 많지 않을까. 한번 오면 어디로 안 나가요. 저한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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