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과 바늘처럼! 무섬의 두 여자
내성천 물길에 둘러싸인 육지 속 섬마을. 예스런 고가와 초가와 어우러진 경북 영주 무섬마을에는 특별한 관계의 두 여자가 산다. ‘어머니’ 대신 ‘엄마’라는 호칭이 더 편하다는 며느리 송을선 씨(58세)와 그런 며느리와 한집살이 중인 시어머니 이복순 씨(83세)다. 을선 씨는 2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무섬의 엄마 곁으로 내려왔다. 매일 아침, 무섬의 단 하나뿐인 고택 식당으로 향하는 을선 씨. 시동생 내외가 하는 식당을 돕고 있는데, 식당 오픈부터 모든 음식 준비를 그녀가 담당하고 있다. 힘들 법도 한데, 늘 씩씩하고 명랑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녀다. 주 메뉴인 배추전, 무전, 청국장, 고등어구이 등 시골스런 음식 준비를 하다보면 슬그머니 복순 씨가 나타난다. 을선 씨를 돕기 위해서란다. 흔히들 세상 불편한 관계라는 ‘고부’ 관계의 두 여자. 그러나 이들은 집에서도 식당에서도 실과 바늘처럼, 빛과 그림자처럼 늘 한 쌍이다. 복순 씨는 딸 같은 을선 씨에게 잔소리라곤 일절 없고, 반대로 을선 씨는 바쁜 와중에도 엄마 같은 복순 씨의 손발이 되어준다. 누구라도 보면, 모녀로 착각한다는 두 여자, 고부의 한집살이는 어떻게 시작된 걸까.
# 세상에 서로뿐인 그녀들, 똑같이 가슴에 묻은 상처
색색이 아름다운 단풍과 물길, 게다가 운치 있는 외나무다리까지 놓인 무섬의 가을은 사람들로 붐빈다. 씩씩한 을선 씨지만, 밀려드는 손님에 어느새 녹초가 됐다. 잠시 숨 돌릴 시간이 찾아오자, 외나무다리 건너 야트막한 산으로 발길을 옮기는 을선 씨. 그곳엔 그녀가 손수 벌초하고 있다는 두 개의 봉분이 있다. 하나는 다정했던 시아버지 묘소이고, 다른 하나는 4년 전 떠난, 그녀의 남편이다. 남편의 봉분을 아무 말 없이 토닥이다 이내 얼굴을 묻고 한참을 멈춰선 그녀. 평생 부지런히 일만 하다, 이제 살만하다 싶어 두 달 후 귀향할 계획이었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것이다. 황망했고, 남편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릴 만큼 쓸쓸했다. 하지만, 을선 씨는 큰아들을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긴 시어머니가 더 염려돼 무섬으로 내려왔다. 7남매 중 막내이자, 마흔을 넘긴 부모의 늦둥이로 태어나 부모와도 일찍 이별한 을선 씨. 시집오던 날 저를 환한 미소로 반겨주던 시어머니가 참 좋았다. 을선 씨에게 복순 씨는 따뜻한 집이자 진짜 엄마 같은 존재였다. 을선 씨의 ‘엄마’ 복순 씨. 엄마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이 가슴에 사무쳐 지금도 아들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아예 아들의 묘소로 향하는 외나무다리도 건너려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제 곁으로 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외로움을 다독여준 며느리가 특히 더 고맙고, 또 사랑스럽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슬픔을 나누고, 고단한 무섬 살이 중에도 서로 기쁨을 나누는 사이. 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는 두 여자는 서로의 위안이 되며 진짜 가족이 되었다.
# 두 여자는 아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알고 보면, 을선 씨도 얼마 전 손주를 얻은 할머니다. 하지만, 엄마 복순 씨를 챙기느라 지금도 날마다 종종걸음치고 있다. 바쁜 며느리를 돕겠다며 주방을 서성이고, 민박 청소를 도맡아 하는 복순 씨를 보고 있자면, 안 도와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일이 더 많아졌다. 세탁기 세제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물어오면, 빨래를 안 도와드릴 수 없고, 대봉감이 실하게 익으면 감 좋아하는 어머니가 생각나 일하다가도 말고 감나무 밑으로 가 장대를 든다. 복순 씨 역시, 없는 동네 무섬에서 먹고 살 방편이 되어준 장으로, 며느리에게 도움이 되려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궁이에 불을 넣어 청국장 콩을 삶고, 찬 바람 불 때마다 메주를 띄우는 것이다. 손님이 뜸한 어느 날, 눈 내려앉은 듯 허연 백발이 된 시어머니에게 염색을 해 주는 며느리. 시어머니는 그런 며느리의 손길이 가을 햇살보다 더 따듯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남은 유일한 의지처다. 이제, 무섬의 이 두 여자도 지난 상처와 아픔을 딛고, 웃는 낯으로 매일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