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높은 곳에서!
자연인 함을영
하늘로 높이 솟아 있는 나무 꼭대기엔 자유로운 표정의 한 남자가 있다. 나무를 이리저리 흔들자, 굵은 호두가 비 오듯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나무에 달린 탐스러운 열매를 보며 그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세상은 어느덧 그의 발밑에 있다.
함을영(68) 씨는 사방이 꽉 막힌 치악산 아래에서 태어났다. 일찍 아내를 만나 아들과 딸을 낳고, 곧바로 화물차 운전을 시작했는데.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미안했던 그는 가족들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3살, 4살이 된 자식들을 태우고 2.5t 트럭에 군납용 배추를 한가득 실은 채 속초로 향하던 중, 자욱한 안개 탓에 올라오는 차가 중앙선을 넘어 버렸고, 이를 피하려다 그만 한계령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온 가족이 동행한 트럭은 바퀴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물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그때부터였을까? 함을영 씨는 더 이상 위험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작은 치킨 가게를 열었지만, 10여 년을 운영하다 IMF 외환 위기로 결국 정리하게 되는데. 곧이어 재개했던 오리 전골 식당 또한 조류 인플루엔자로 문을 닫게 되고, 그 당시 유행했던 노래방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점점 발길이 끊기는 손님으로 인하여 마찬가지로 운영을 중단하게 된다. 무수한 불운을 겪으면서도 그는 쉽게 무너질 수 없었다.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는 굳은 다짐은 함을영 씨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결국 자식들을 대학까지 모두 보내고 난 후, 함을영 씨는 꽉 막혀 있던 고향과는 달리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트여 있는, 가장 높은 곳을 찾아 마침내 이곳 자연에 도착했다. 붉은 흙을 파내면 모습을 드러내는 크고 탐스러운 고구마와 유독 싱그러운 초록빛을 내는 배추, 쭉 뻗은 나무에 달린 밤은 함을영 씨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엄청나게 즐겁다.
“내려다볼 수 있는 그런 데에서 내가 살고 싶어서.”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던 그의 과거는 도시의 네온사인과 함께 영원히 빛나고 있다. 이제는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그 어떤 과거보다 행복한 현재를 잔뜩 누린 채 자연을 벗 삼아 찬란한 내일을 바라본다.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자연인 함을영 씨의 이야기는 2024년 10월 30일 MBN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