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오기 전에
경기도 남양주시, 중증 시각장애인 형과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동생이 있습니다. 망막색소상피증을 앓는 동생의 눈도 점점 나빠지고 있는데요. 그나마 앞이 뿌옇게 보이는 동생은 한시라도 가족의 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어두운 세상 속 가족의 유일한 눈이 되어주는 이진우 씨의 이야기입니다.
”형은 아예 안 보이니까 어디에 물건이 있는지 못 찾아요.
물건이 없으면 찾아줘야 하고, 형 옆에 서 있어야 하고...“
형 한용 씨(55)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온 집안의 불을 더듬더듬 켭니다. 희미한 불빛을 따라 화장실로 향한 한용 씨. 씻으려다 말고 동생 진우 씨(44)를 부릅니다. 매일 쓰던 세면도구도 위치가 바뀌면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생은 줄곧 화장실 앞을 떠나지 못합니다. 형에게 더 챙겨줄 것은 없는지 살피기 위함인데요. 중학교 때부터 야맹증을 앓았던 형 한용 씨는 서른 살쯤엔 앞을 거의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형이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동생은 바로 달려와 형의 눈과 손이 되어줍니다. 진우 씨가 챙겨야 할 또 한 사람, 바로 어머니 강경자 씨(84)입니다. 진우 씨의 어머니는 당뇨합병증으로 망막 전체에 기스가 나 시력을 거의 잃었습니다. 게다가 최근엔 치매와 요실금 증세도 보이기 시작했는데요. 7년 전 교통사고로 척추와 골반에 인공 뼈 수술까지 해서 거동마저 불편합니다. 형과 어머니를 대신해 진우 씨는 삼시 세끼 정성스레 식탁을 차립니다. 냄새로 반찬을 구분하여 형에게 설명해주고, 치아가 성치 않은 어머니를 위해 반찬을 일일이 잘라드립니다.
”시력이 점점점 안 좋아져서 검사를 받으니까 망막색소상피증이라고 하더라고요.
뿌여면서 까매요. 줄기세포 치료 방법도 안 된다고 하니까 막막함이 제일 크죠.“
이렇게 집안의 해결사 역할을 하는 동생 진우 씨의 눈도 사실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10여 년 전, 갑자기 시력에 이상이 생겨 검사를 해보니 망막색소상피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사물의 형체만 희미하게 보이는데요. 앞은 뿌옇게 보이고 시야가 좁아져서 옆에 사람이 지나가도 모를 정도입니다. 더구나 요즘 들어 형과 어머니의 건강상태도 나빠지고 있습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부쩍 화장에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쁘게 꾸미고 마음껏 외출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경자 씨. 밖에 나갈 수 없는 몸 상태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형 한용 씨는 최근 알 수 없는 이유로 허리디스크가 파열됐습니다. 오래 걸으면 다리가 마비돼 1분도 채 걷기 힘들 정도인데요. 병원에선 조금이라도 걷기 연습을 해야 다리가 굳지 않는다곤 하지만, 조금만 걸어도 통증이 올라와 자주 쉬어야 합니다. 아픔을 참고 집안을 걷다가 종종 다치기도 하는데요. 군데군데 홈이 패인 바닥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진우 씨는 임시방편으로 박스를 덧대 패인 바닥을 메워봅니다. 혹시나 형과 어머니가 다치지 않도록 늘 집 구석구석 신경을 쓰는 진우 씨입니다.
”어머니도 형도 안 보이니까 저도 그렇게 돼버리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
그래서 걱정이 많죠. 더 이상 시력이 나빠지지 않는 게 최고의 바람이에요.“
파스로 허리 통증을 버텨오던 형 한용 씨. 힘겹게 걸음을 옮겨 병원에 찾았습니다. 의사의 진단은 척추관협착증. 요추 디스크가 너무 많이 튀어나오면서 척추관도 같이 좁아져 있는 상황입니다. 오른쪽 다리에 쭉 통증이 내려와 발가락 올리는 힘이 떨어져 버렸는데요. 지금은 통증이 주된 증상이지만, 나중에는 걷다가 넘어지는 보행 장애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좋지 않은 결과를 들은 한용 씨는 치료비 걱정에 선뜻 치료를 받기가 망설여집니다. 한편, 동생 진우 씨는 오랜만에 용기를 내어 안과에 찾았습니다. 9년 만에 제대로 받아보는 검사에 잔뜩 긴장했는데요. 진우 씨의 병명은 망막색소상피증. 중심 시야만 조금 남아 있고 주변 전체가 어두워진 중증 시각장애 상태입니다. 현재로선 마땅한 치료 방법이 개발되지 않아서 진우 씨는 막막해집니다. 약으로 시력을 겨우 유지하는 방법밖엔 없지만, 걱정하는 가족들을 위해 애써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진우 씨의 소망은 지금보다 눈이 더 나빠지지 않는 것인데요. 자신마저 앞이 보이지 않게 되면 가족을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사랑이라는 빛을 잃지 않는 이 가족에게도 희망이 찾아올까요?
빛보다 환한 사랑을 보여주는 세 가족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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