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한다 주식회사’
자연인 김연호
태양의 맹렬한 기세도 서서히 가라앉고 더위도 한층 누그러졌다. 해발 500m에 자리한 황토벽돌집에도 한층 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계절의 나들목. 자연인 김연호(59) 씨는 또다시 바빠진다. 맨몸으로 지붕에 올라가 연통 청소도 해야 하고, 황토찜질방을 데울 땔감도 틈틈이 준비해야 한다. 함께 사는 동물식구들, 환절기에 기력 보충하라고 보양식도 준비해야 하는데, 입맛이 제각각이라 손도 많이 간다. 강아지 순심이는 과일을 좋아해 그나마 수월하지만, 고양이들은 메뚜기를 잘 먹어서 잠자리채를 들고 온 풀숲을 헤매야 한다. 혼자서 뭐든 다 해결하는 그는 ‘다 한다 주식회사’의 대표이사 겸 유일한 직원이다.
지금은 늘 웃는 얼굴이지만, 한때 그는 참 우울한 아이였다.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읜 그는 세상의 전부였던 어머니의 부재와 지독한 가난 속에 자랐다. 웃을 일이 없으니 웃을 수 없었고, 그래서 우울감이 성격으로 굳어져 가던 학창 시절. 그는 스스로 성격을 고쳐보기로 마음먹는다. 수업 시간에 장난을 치거나 웃긴 말을 던져 남들을 웃기는 게 그의 해결책이었다. 그 웃음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방법이었다.
억지로라도 웃다 보니, 어느 순간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있더라는 김연호 씨.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간다. 먼저 서울에 자리 잡고 있었던 누나의 소개로 치과기공소 일을 배우게 된 연호 씨. 적응력이 뛰어나 일도 손에 빠르게 익혔고 5년 동안 기술을 배우며 어린 나이에 가정을 꾸린 어엿한 가장이 되었다. 치과기공사로 일하며 괜찮은 수입을 얻었지만, 가만히 앉아 작업하는 과정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기술직을 그만두고 여러 직군을 전전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관광버스 운행. 봄엔 꽃피는 곳으로, 여름엔 물가로, 가을엔 단풍이, 겨울엔 눈꽃이 가득한 곳으로 떠나는 일이니, 사람 좋아하고 흥 많은 그에겐 맞춤복처럼 딱 맞는 일터였다. 그때 자연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그는, 이후 택시 운전으로 전향하고 나서도 수시로 산을 찾아가, 손님 대신 약초를 찾아보곤 했다.
남들보다 한 박자 빨랐던 인생. 취업도, 결혼도, 아버지가 되는 일도, 전부 남들보다 조금씩 빨랐으니, 은퇴 역시 조금 빨리 해도 괜찮지 않을까. 두려움 반, 설렘 반의 각오로 50이 되는 해에 산에 들어왔다는 연호 씨. 황토벽돌집을 짓는 4개월 동안, 단열도 되지 않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지냈던 날들이 그에겐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았다는 그는, 오늘도 재미있는 일을 찾아 산을 오른다. 그러다 보면 잎이 일곱 개 붙은 산삼이나, 새파란 산초 열매를 마주하기도 한다. 들기름에 산초 열매를 넣고 산초 두부를 만들어 먹고, 쳇다리를 깎다 남은 나무로 새총을 만들어 하루 종일 깡통 맞히기에 몰두한다. 누군가는 아직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 아니냐고, 허송세월 보낸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인생에 정답은 없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적어도 자연인 김연호 씨는 그중 한 명이다.
해먹에 누워 봉숭아꽃으로 물들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진한 행복을 느낀다는 자연인. 낭랑 59세 김연호 씨의 이야기는 2024년 9월 18일 수요일 밤 9시 10분 MBN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