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갑출님(이하 박회장)은 1956년 전라남도 완도군 생일면 태생으로서 슬하에 3남을 두고 있다.
중고교 과정을 모두 검정고시로 마치고 신구대학교 조경학, 서울농업대학 경영학,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조선대학교 정책대학원, 칭화대학 건설CEO 과정을 골고루 수료하며 농업학과 경영학을 두루 공부한 조경분야의 전문가다.
박회장은 주활동 무대인 광주·전남 그리고 서울을 중심으로 각종 친선단체와 봉사단체의 장으로서 선행에 앞장선 것은 물론 금곡장학회를 설립하여 인재육성에도 도움을 준 바 있다.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보호수보존연구회 회장 및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중앙상임위원소속으로 활동중이며, 2005년 대통령 표창과 행정자치부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2006년부터 (주)청원조경의 대표이사로서 조경사업을 운영해오고 있으며, 재경 생일향우회장으로 고향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박회장은 나무수집 전문가로서 평소 꿈꾸었던 ‘한반도 향기정원’을 만들어 국민건강 증진과 경제문화관광 발전에 이바지할 원대한 꿈을 가지고 정부에 제안서 제출을 검토하고 있다.
“저는 주어진 일에 열심히 하면서 정치색과 관계없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지지합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묵묵히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그걸 알아주는 듯해 뿌듯합니다. 나무하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봉사하며 살아온 삶이 결국은 저 자신을 위한 옳은 길이었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런 삶이 오히려 저를 윤택해지게 했음을….”
세 살 때 호박 모종을 심었다는 박회장은 “어릴 적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제가 세 살 무렵 밖에서 호박 모종을 갖고 들어와 뜰 앞에 심었다고 합니다. 너무 어려 그런 일을 기억할 턱이 없지만 알고 보면 나무는 저에게 운명이었나 봅니다.”
어려서부터 ‘나무신동’이란 얘기를 들은 박회장은 60대 후반인 현재까지 50여년 동안 나무와 동고동락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사업도 부침(浮沈)이 컸다. 한동안 잘나갈 때는 많은 돈을 고향 사랑에 쏟아부었으나 IMF로 인해 난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려울 때마다 고목이 숱한 세월을 버텨내는 인고의 철학을 발판으로 꿋꿋이 견뎌내고 일어났다.
그의 말속에는 나무에 대한 심오한 철학이 진하게 숨겨져 있다.
박회장은 “이제 얼마 남았겠는가. 일할 나이는 건강했을 때의 특권이다. 오늘밖에 없다는 신조로 일한다.”며 “국가에 사명감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런 여건에 맞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고 밝혔다.
박회장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보호수를 찾아가 막걸리 한잔을 권하거나 주변을 청소하고 진심으로 기도했다.”며 “그런 고난과 고비를 거치면서 살아난 것도 결국 보호수님이 도와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고마워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집무실 분재 선물
(사)한국보호수보존연구회는 그동안 보존 가치가 있는 고목‧거목‧희귀목 등을 발굴해 보호수 관리‧지정 확대를 위해 교육‧홍보 활동을 해왔다. 또한 푸른숲 가꾸기, 국토사랑 식목, 환경 친화 캠페인, 하천‧시민공원‧등산로 쓰레기줍기 행사는 물론 보호수 주변 정비사업, 콘크리트 구조물, 병충해 예방, 축대벽 공사, 표지판 설치 등의 공공의 사업 실적을 올렸다.
그뿐만 아니라 보호수에 대한 보존과 각종 연구 사업 등으로 우리나라의 산림문화 자원 및 우량산림 유전자원의 보존을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보호수보존연구회는 그동안 복지시설 방문, 의료‧미용 봉사, 장학금 전달, 교도소 위문 등 이웃사랑 실천을 병행해 왔다.
그동안 이런 (사)한국보호수보존연구회의 실적을 인정받아 박회장은 2005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청와대 집무실의 소나무 분재는 박회장이 보냈던 작품이다. 박회장은 16대 노무현 대통령 후보시절 이미 보호수 보존의 필요성에 대한 정책을 건의한 바 있다.
이때 박 회장은 “모든 사람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데 소중한 우리의 자산인 보호수 한 그루를 만들려면 100년에서 몇백년 걸린다.”며 “보호수를 보존 연구하여 우리 후손에게 소중히 물려줄 수 있도록 중앙정부에서 각별한 대책 마련에 적극적인 협조와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어 박회장은 “그래도 제 나무가 청와대까지 들어갔다는 것 역시 운명이 아닐까 싶다.”며 “ 항상 나무를 사랑하는 대통령이 되어 달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분재를 선물했다.”고 회고했다.
박 회장의 청와대 분재 나무에 대한 얽힌 일화는 자못 흥미롭다.
한번은 안기부에서 찾아와 청와대에 분재를 보낸 이유에 대해 캐물었다.
이에 박회장이 “한국보호수보존연구회 회원들의 마음을 담아 대통령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분재를 보면서 위안받아 나무를 더 사랑해 우리나라가 더 맑고 깨끗한 환경을 조성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답하자 도리어 존경한다고 화답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박회장이 봉화마을에 찾아가자 권양숙 여사가“이 나무는 청와대 역사를 다 알고 있소. 왜 이제 왔냐”며 눈물을 감추었다고 술회했다.
박회장은 이미 1995년 고향에 금곡리조트를 건립해 당시 지역발전연구원장으로 낙후된 섬을 개발해 지역주민들이 잘살 수 있도록 관광지로 활성화하는 데 일조했다.
그 무렵 매년 노인 초청 경로잔치를 열고, 생일중학교 학생들에게 금곡장학회 이름으로 장학금을 주었다. 또한 조선대학교 치대와 동신대학교 한방병원의 무료진료 봉사, 광주 Y미용전문학원의 이·미용 봉사를 이끌어 주민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이런 공로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1999년 제임스 L 헤이시 국제로터리 회장 RI 초아의 봉사상을 수상했다.
▶ 350년 된 동백나무 목신(木神)의 후원과 사명감
우리 정원에는 350년 넘은 동백나무 할머니 목신(木神)이 계십니다. 오늘 집을 나올 때 ‘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드리고, 집에 도착하면 ‘잘 다녀왔습니다’ 하고 나무와 대화합니다”
박회장은 ’배고픈 자에게 밥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심신이 지친 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정원을 2022년 완성 여생을 봉사할 계획이다’라며 나주에 터를 잡은 사람이다. 또한 ‘어떤 사명감’이 없으면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라고 말한다. 박 회장은 모친의 ‘세 살 때 호박 모종을 심은 특별한 아이’라는 전언과 함께 50년 동안 나무에 묻혀 산 ‘나무신동’임을 자부하기도 한다.
한때 많은 돈을 고향 사랑에 쏟아부었으나 IMF로 인해 난관을 겪기도 했지만 어려울 때마다 함께해준 목신(木神)께 감사를 드리기도 한다.
‘건강. 화목. 성실’이 인생 철학이자 좌우명으로 삼고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남을 도우며 성실하게 살아도 지난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박 회장은 오늘도 조그만 돈이라도 모아지면 어김없이 희귀한 수목 구매에 투자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어떤 이웃은 ‘나무에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하지만,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다. 수백 년 넘은 갖가지 나무들을 소유하고 있는 박 회장은 모두가 ‘사회의 공동 자원이고 봉사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멋들어진 나무쟁이다. 감히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고생하며 자수성가한 박 회장이지만 단, 한순간 변치 않고 다정한 대화로 난관 극복에 도움을 준 나무 형제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잊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보호수에 대한 보존과 각종 연구 사업 등으로 우리나라의 산림문화 자원 및 우량산림 유전자원의 보존을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보호수보존연구회는 그동안 복지시설 방문, 의료‧미용 봉사, 장학금 전달, 교도소 위문 등 이웃사랑 실천을 병행해 왔다.
▶마치며
그의 넓은 가슴속에는 항상 나무사랑이 담겨 있었고 ‘한반도 향기정원’ 조성의 꿈을 이상으로 머리에 담그며 하나둘 실천으로 이어갔다.
‘한반도 향기정원’은 박회장이 나무 전문가로서 국가에 어떤 좋은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숙명같은 사업아이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