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자연인이다 > 2023. 2. 11.
나는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의 팬이다. 본방송을 기다려서 보고 재방송은 몇 번이라도 다시 본다. 하루 저녁 내내 혹은 하루 종일 채널을 바꿔가며 재방송들을 연이어 보기도 하고 동시에 두세 편, 서너 편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보기도 한다.
나 같은 이가 우리나라에 꽤 많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방송을 보고 용기를 얻어서 자연 속으로 들어간 이들도 꽤 있는가 보다. “나는 자연인이다” 주인공들 중에는 이 방송을 보고 산속으로 들어왔다고 하는 이들도 몇몇이 있었다. 그리고 방송을 보면서 이런 저런 자료도 얻고 요령도 얻었다는 말들을 자주 한다. 내가 생각해봐도,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살려고 작심을 했다면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들을 공부 삼아서 볼 필요가 있겠다.
간혹은 방송국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를 찾아보기도 하는데, 메뉴에 떠 있는 그 수많은 주인공들의 얼굴이 이젠 익숙한 느낌도 든다. 그 가운데는 정말 안타까운 인생사를 가진 분들이 많다. 1순위는 같은 날 두 아들을 잃은 엄마 이야기다. 그 외에도 아들을 산에 묻고 그 산을 늘 바라보며 사는 늙은 아버지와 장애를 가진 아들이 살 곳을 만들다가 아들 먼저 스스로 세상 떠나고 그 곳에서 여생을 보내는 아버지도 있었다. 이 외에도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를 안고 산으로 자연으로 들어온 분들이 많았다.
주인공들 중에는 산이든 섬이든 자연 속에서 살기 위해 몇 년을 두고 여유 있게 준비하고 온 이들도 있지만, 세상사에 지쳐 쫓기듯 들어온 이들이 훨씬 많다. 불치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기 위해 들어왔다가 몇 년, 몇 십 년을 살아 있는 주인공들도 있다. 어릴 적 고향으로 온 이들도 있지만, 아무 연고 없이 정착한 이들도 있다.
3일 전 방송에서도 큰돈을 사기 당하고 세상 싫고 사람이 싫어 산으로 들어온 주인공 황OO씨가 등장했다. 주인공이 사는 곳은 큰 호수와 산들이 즐비한 곳이고 배가 아니면 드나들 수도 없는 곳이었다. “나는 자연인”을 보다 보면 이렇듯 좋은 풍경들을 정말 자주 본다. ‘저 곳이라면 나도 가서 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드는 곳도 참 많다. 하여간 이 곳의 경치도 참 좋다. 그리고 어딘지 눈에 익기도 하다.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런데 주인공 황씨가 MC 이승윤에게 뜻밖의 말을 한다.
“내가 여기 온 지 8년째이고, 1년 전에 이 집으로 이사했어요. 7-8년 전에 처음 들어올 때, 이승윤 씨가 나온 방송을 보고 수소문해서 이 곳을 찾아서 그 때 주인공 전OO씨를 찾아가서 이야기 듣고 그 옆에 살게 되었어요.”
MC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들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계기에 ‘내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들까. 나도 살면서 몇 번씩이나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내 속에서는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대단한 것이지만, 이럴 줄 몰랐는데 이렇게 된 것이니 나는 별 것 아닙니다.’라는 마음만 든다.
여기서는 택배 물건을 전달하는 집배원도 배를 타고 온다. 일반 택배는 배달하지 않는 곳이라면서 집배원은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우체국이잖아.”라고 말을 한다. 드문드문 있는 집들을 찾아서 배를 타고 택배와 우편물을 배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 겨울에는 물이 얼어서 그것도 어려운가 보다. 주인공에게는 엄청난 양의 화장지를 딸이 보냈다.
방송을 다 보고는, 오늘의 주인공이 말한 ‘전OO 자연인’이 나온 방송을 찾아봤다. 이번 주가 540회였는데, 그 분은 108회, 2014년 10월 1일 방송에 나온 분이었다. 방송 화면을 잠시 보니 기억도 난다.
방송에서는 섬에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깊은 산을 찾아다니는데, 우리나라가 아무리 산악국가라 하더라도 방송 소재가 이렇게 무한히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간혹은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 ‘이렇게 방송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이번 주인공 옆 산에 지난 번 주인공이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번 방송이 마침 그런 모양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자연인 출연자 옆에 살던 주인공이라니.
‘전OO’ 자연인이 누군가를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려다 유튜브를 보니 ‘자연인 집과 땅을 판다’는 동영상이 떠있다. 그래서 무심코 클릭을 해보니, 지난해 8월에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했던 안OO씨의 집과 땅이었다. ‘경북 OO이었구나. 이 주인공은 어디로 가려고 집과 땅을 내놓았을까? 명상을 위해 산속으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더 깊은 산으로 가려는 것일까?’
그리고는 연관되어 뜨는 동영상들을 봤다. 그러다 놀랐다.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봤던 그 경치, 그리고 배 타고 우편물 배달하는 집배원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2017년 겨울에 찍어서 방송했던 모양이다. 잠시 더 보다가 처음보다 더 놀랐다. 방금 전에 “나는 자연인이다”에 주인공으로 나왔던 황OO씨가 자연인 생활 6개월 만에 첫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이 나온 것이었다. 여기에서도 사기 당하고 들어왔다는 나레이션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 동네가 강원도 OO의 OO마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OO마을’로 검색을 해보았다. 그러다 또 놀랐다. 2014년에 방송된 어떤 프로그램에서 OO마을 사람들 사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전에 “나는 자연인이다”에 주인공으로 나왔던 분의 모습이 보였다. 다시 홈페이지를 검색하니 2017년 3월 22일 방송에 나왔던 김OO씨다. 이 분도 참 힘겹게 삶을 살아오셨고, 두 분의 부인을 먼저 보냈는데도 항상 웃으면서 참 선하게 사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조OO’씨라고 자막이 나온다. 제작진의 실수인 듯하다.
결국 같은 마을에서 세 분의 자연인 주인공이 나온 셈이다. 말이 같은 마을이지,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한 집 있는 동네이니 같은 동네라고 하기도 어렵다.
경치 좋은 화면과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보다가 줄줄이 검색에 뜨는 동영상을 통해 한 동안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나도 이렇게 반가운데, 주인공의 가족들이 이런 동영상들을 보면 얼마나 반가울까.
겨울만 되면 호수 물이 얼어붙어서 외부와 단절되는 곳이었는데, 재작년에 면장의 노력으로 포장 임도 공사를 시작했고 올해 봄이면 길이 뚫리는 모양이다. 땅 주인들이 사유지를 내놓았을 것이다. 이 길이 완공되면, 바다의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섬의 의미를 잃듯 ‘육지 속의 섬’이라는 이 마을도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하지만 혹여 괜한 관광객들이 들어가서 소란을 피우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