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멘트 】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에 앞장선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오늘 새벽 세상을 떠났습니다.
암 투병 사실을 알리며 "살 만큼 살았고, 이룰 만큼 이루었다"는 소회를 남긴 지 불과 2달 만입니다.
영원한 재야 로 알려진 재야운동가 장기표가 이루고 남긴 것들이 무엇인지, 백길종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 기자 】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오늘 새벽 1시 35분, 담낭암 투병 끝에 숨을 거뒀습니다.
1945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 뒤 줄곧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습니다.
7080년대 9년의 수감 생활과 12년의 수배 생활을 한 고인은 재야 운동권의 대부 로 꼽힙니다.
빈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옛 동지를 비롯한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 인터뷰 : 김문수 / 고용노동부 장관
- "저는 그때 1학년이라서 전태일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그 의미를 몰랐는데 장기표 선배는 장례를 서울법대 학생장으로 하겠다 해서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인은 7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3번의 대선에서 낙선하며 영원한 재야 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조문객들은 "고인의 목표는 금뱃지가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 인터뷰 : 이부영 / 전 국회의원
- "모든 정치세력이 장기표의 비판의 표적이 됐다고 보면 됩니다. 어느 정치에도 착근을 하지 못하고 역시 장기표는 장기표주의 였다."
▶ 인터뷰 : 박계동 / 전 국회의원
- "그때 (통합)했으면 14대 때 아주 편안하게 (국회에) 들어갈 수 있었죠. 그 정도로 정말 명분주의자이기도 하고."
정치권에서도 애도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민주화운동으로 시대를 지킨 귀감이었다"고 추모의 뜻을 밝혔습니다.
국민의힘은 "노동·시민 운동에 몸 바치고도 일체의 보상을 마다했다"고 평가했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김근태 선생과 함께 존경했던 대선배"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6일입니다.
MBN뉴스 백길종입니다. [100road@mbn.co.kr]
영상취재 : 김민호 기자
영상편집 :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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