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헐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
옷차림이 깨끗해야 남에게 대우를 받는다는 뜻이죠. 옷이 날개 라는 속담처럼 옷은 아름다움을 더하기도 하고, 사람의 지위나 개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8일, 민방위복을 청록색으로 통일하라는 규정이 담긴 민방위기본법 시행규칙 을 공포했습니다.
당장 공무원들 사이에선 멀쩡한 옷을 두고 왜 민방위복을 교체하지? 세수가 부족하다고 국가 R&D 예산까지 깎는 정부가 왜 이런데 돈을 쓰지? 라는 물음과 불만이 터져 나왔죠.
통상 공무원들은 춘추복과 하복 등 2벌의 민방위복을 준비하는데, 지난해 국가 지방 공무원 수 117만 명에게 나눠주려면 600억 원 안팎의 예산이 소요되거든요.
정부는 의무가 아니다, 기존 민방위복도 착용이 가능하다, 구매를 강요한 적 없다고 했지만,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공직사회에서 윗사람은 신형 청록색 민방위복을 입고 있는데, 아랫사람은 기존 노란색을 입고 있다면 불편하지 않을까요.
"내가 살 테니까 아무거나 먹고 싶은 거 시켜, 그런데 난 자장."
어디서 많이 듣던 우스갯소리죠.
"안 사도 돼, 강요하는 거 아니다. 그런데 난 입었다."
뭐가 다르죠.
- 영화 상의원 (2014)
"옷에는 예의와 법도 그리고 계급이 있어야 하는 것일세"
조선시대 왕실 의복을 만들던 상의원 얘기를 담은 이 영화는 사람의 옷이 단순한 의상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자존감이자 소통 수단이라는 걸 강조합니다.
신형 민방위복을 선정하려면 먼저 공무원들이 샘플을 입어보게 하고, 색깔이나 디자인이 어떤지 폭넓게 의견을 듣는 게 순리죠.
더구나 노무현 정부 때부터 18년간 입어 온, 긴급상황과 재난구호를 상징하며 눈에 잘 띄는 기존 노란색 대신 보호색인 청록색이라니,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의 등장인물 같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물론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긴급상황 때 입는 옷부터 바꿔 면모를 일신하고픈 취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노란색이든 청록색이든, 위기에 나 몰라라 하지 않고 헌신하는 공직자의 자세가 아닐까요?
아무리 옷이 날개라지만, 사람이 일을 하지, 옷이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옷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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