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지망생 ‘아미르’에게 첫눈에 반한 성공한 예술가 ‘피터 본 칸트’ 감독의 뜨거운 욕망과 광적인 사랑을 그린 파격 로맨스 영화다. 프랑스 영화 거장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작품으로, 독일 영화의 전설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1972년 영화 ‘페트라 본 칸트의 쓰디쓴 눈물’을 오마주했다.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72년 독일 쾰른, 유명 영화감독 ‘피터 본 칸트’(드니 메노셰)는 그의 약속과 일정을 처리해주는 개인 비서이자, 그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마다하지 않는 어시스턴트 ‘칼’(스테판 크레퐁)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오랫동안 피터의 뮤즈였던 여배우 ‘시도니’(이자벨 아자니)가 찾아와 피터에게 ‘아미르’(칼릴 벤 가르비아)라는 청년을 소개하고, 연인과 이별한 상실감으로 고통스러워하던 피터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아미르에게 첫눈에 반한다. 아미르에게 영화계의 스타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사랑을 고백한 피터. 아미르는 그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톱스타가 되고, 둘은 동거를 시작하지만, 자유로운 관계를 원하는 아미르 때문에 관계에 곧 금이 가기 시작한다.
제72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선정과 제14회 샌디에고 퀴어 영화제에서 2관왕을 수상한 작품으로 ‘8명의 여인들’, ‘스위밍 풀’로 유명한 프랑스 현대 영화 거장 프랑소와 오종이 연출을 맡았다. 젊은 뮤즈를 향한 거장 감독의 사랑과 욕망의 감정을 고통스럽고도 뜨겁게 그려내는 오종은 독일의 거장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에게 영향을 받아 기발한 상상력과 파격적인 성 묘사에 집중했다. 주인공들의 ‘성’도 남성으로 바꿔 재해석했다. 원작에서 유명 디자이너 페트라를 떠나는 젊은 모델 카린 역을 맡았던 한나 쉬굴라가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영화에선 주인공 피터 본 칸트의 어머니 역을 맡았다는 것이 흥미롭다.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 피터 본 칸트 감독의 집 안에서 펼쳐진다. 오종 감독이 오마주한 파스빈더의 영화에서는 극중 주인공이 연인을 떠나 보내고 나서 자신이 원했던 것이 ‘사랑’이 아닌 ‘소유’였다는 것을 깨닫지만, 영화 ‘피터 본 칸트’에서 주인공 피터는 여전히 파괴적인 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자신을 극도로 무시하며 함부로 대하는 피터를 참아내며, 피터를 오랜 기간 사랑해온 듯 보이는 비서 칼은 자신이 사랑해온 모습이 아닌 피터를 견뎌내지 못하며 떠나버린다. 그는 대사 한 마디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속 관찰자 역할을 수행한다. 그가 왜 피터 곁을 떠났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영화의 한 묘가 될 듯. 피터 감독의 영화를 통해 대배우가 된 배우이자 친구 시도니 역은 이자벨 아자니가, 젊은 연인 아미르 역은 신예 ‘칼릴 벤 가르비아’가 맡았다. 상실감과 고통으로 인해 자신의 생일날 찾아온 딸과 시도니, 자신의 엄마에게 피터는 모진 소리를 내뱉고, 시도니가 그에게 절교를 선언하며 부르는 “모든 이가 사랑하는 것을 죽이네~”라며 노래하는 신은 영화 속에서 가장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 장면이다.
영화는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으나 사랑 앞에서는 약자가 되는 감독, 그 약점을 이용하는 뮤즈, 사랑 때문에 망가져가는 영혼 등 여러 가지를 담고 있다. 연인에게 집착하고, 상실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지난한 과정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사랑과 소유의 개념, 상실감이 만들어내는 예술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다. 러닝타임 85분.
[글 최재민 사진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2호(23.3.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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