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들이 앞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할 경우 까다로운 심사를 받게된다.
중국 당국이 자국 기업들의 해외증시 상장에 제동을 건 상황에서 미국 당국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이렇게 나선 것이다. 이에따라 중국기업의 뉴욕증시 상장은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기업 상장에 대한 미국 당국의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뉴욕증시 상장을 검토해온 한국 기업들에게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지분을 매각하는 중국 기업들에 대해 잠재적 위험성과 관련한 공시의무를 강화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중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려면 중국 당국으로부터 허가 취소를 받을 위험성 등을 공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SEC는 최근 '디디추싱' 상장 등을 둘러싼 중국 당국의 조치가 투자자를 큰 리스크에 빠트렸다고 판단하고 일련의 규제를 신설하겠다고 나섰다.
겐슬러 위원장은 특히 중국 기업들이 해외증시 상장시 주로 사용해온 VIE(Variable Interest Entities: 변동지분실체) 관련 우려를 표시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일반 투자자들이 중국에 본부를 두고 운영되는 회사가 아니라 페이퍼컴퍼니 주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간 중국 기업들은 VIE 형식의 별도 법인을 만들고, 이를 해외에 설립한 지주회사가 지배하는 방식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해왔다. 알리바바, 디디추싱 등 주요 중국 기업은 이런 형식으로 지배구조를 만들어 상장했다. '조세 피난처'인 케이먼제도에 법인을 만든 사례가 많았다.
이는 중국 당국의 승인을 피할 수 있고, 뉴욕증시에서는 법적으로 중국 외 기업으로 인식되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중국 증권감독위원회가 이런 우회 상장을 사실상 차단한 가운데, 미 SEC 역시 이 부분에 대한 까다로운 심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지난달 인터넷안보심사방법(규정) 개정안을 통해 회원 100만명 이상인 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해외 상장시 반드시 당국으로부터 사이버 안보 심사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SEC는 앞으로 VIE와 모기업간 지분관계 등에 대해서 상세한 내용을 공시하도록 할 예정이다.
SEC는 기업공개 과정은 물론 기존 상장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더 촘촘하게 만들 예정이다.
앞으로 뉴욕증시에 상장하려는 중국 기업은 과거 중국 당국으로부터 해외증시에서 기업공개에 대해서 승인을 거절 당했는지 여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회계감독 규정도 까다로워진다. 미국 규정들에 따른 회계 감사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들은 상장이 취소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약 20여년간 400여개 중국 기업이 뉴욕증시에 상장됐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은 약 2조달러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동성이 풍부해지며 미 IPO 시장이 활황을 보이자, 중국 기업들은 올해 들어서만 157억달러를 뉴욕증시에서 조달했다.
블룸버그는 "현재 약 70개 중국 기업이 미국 상장을 추진 중이였다"며 "다오지아(쇼핑대행 플랫폼) 등이 상장 계획을 중단하거나 미국이 아닌 지역에서 상장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자전거 공유업체 '헬로', 의료정보업체 '링크닥'이 최근 미국 증시 상장 계획을 철회한 것이 대표적이다.
뉴욕증시 상장을 계획해 온 한국 기업들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뉴욕증시 상장을 추진해온 마켓컬리는 최근 코스피에 상장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뉴욕 = 박용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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