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미국 내 병원들이 또 다른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면했다. 코로나19 응급환자를 상대로 '심폐소생거부(DNR Do Not Resuscitate)' 방침을 결정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에 빠진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팬데믹 최전선에 있는 일부 병원들이 전에 없는 뜨거운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병원 내 의료진이 심폐소생술 같은 코로나19 응급환자 대응에 투입될 경우 이들 또한 감염에 노출 될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른 환자들을 치료해야 하는 의료진이 코로나19에 걸릴 경우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심정지 등 '코드' 상황이 찾아와 죽어가는 환자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의견과 마스크·의료장비가 떨어져가는 와중에 의료진들을 더 큰 감염 위험에 밀어 넣을 수 없다는 의견이 저울질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그러면서 "결국 '1 대 다수' 중 어느 쪽의 생명을 우선시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라고 덧붙였다. '코드'는 병원 내 발생 가능한 여러 비상상황을 구분해놓은 용어다. '코드 블루'가 발생할 경우 적게는 10명 이내, 많게는 30여명의 의료진이 투입돼 심정지가 찾아온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한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이 급증하는 주에서는 병원들이 이른바 '심폐소생금지'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위치한 노스웨스턴메모리얼병원도 그 중 하나다. 이 병원의 집중치료실 책임자인 리처드 원더링크 호흡기내과 전문의는 병원 운영진이 J.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에게 법률자문을 구해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환자의) 가족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그들도 상황의 심각함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지침이 시행될 경우 환자 가족의 의사결정보다 병원의 권고가 우선시된다.
한편 워싱턴DC의 조지워싱턴대학병원 관계자들은 "환자 위에 플라스틱 시트를 씌워서라도 심폐소생술을 지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워싱턴주 시애틀 소재 워싱턴대메디컬센터(UWMC)는 심정지 환자에 대응하는 의료진을 소수인원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의료진들마저 바이러스에 감염돼 환자들을 돌볼 수 없다면 정말 손을 쓸 수 없게 된다"는 입장이다. 루이스 캐플란 미국중환자의학회 회장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투자하는 방향은 지금으로선 해결책이 아니다"라면서 "지금 보유한 인적·물적 의료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대한 어려운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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