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진원지로 박쥐를 먹는 중국인의 식문화가 지목되자 맛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어떤 이는 이를 '중국 혐오'로 규정하고 '총선용 기획'이라는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혐오의 감정을 만들어서 이게 중국인에 대한 혐오감정, 관리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혐오감정으로 같이 연결해서 정치 판도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거다." 사람이 공상 영역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간혹 상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친문 인사'로 통하는 그의 상상력은 그러나 무척 당파적이다. 총선을 앞두고 주한 미국 대사의 콧수염을 트집잡아 "조선 총독같다"고 인종주의적 발언을 쏟아낸 여권 인사들에대해 "미국 혐오의 감정을 만들어서 반미 정치 판도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거다"고 하면 그는 동의했을까. 몇단계 상상의 도약을 거쳐야 하는 '박쥐 총선기획설'보다는 이게 훨씬 개연성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박쥐는 음식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위의 맛 비평가는 우리도 예전에 박쥐를 먹었다며 동의보감까지 인용하고 있다. 약으로 쓰거나 기아 선상에서 박쥐를 잡아먹은 것까지 포함시키면 지구상 모든 인종은 박쥐를 잡아먹은 과거가 있다. 중국을 여행하며 경험삼아 한두번 먹어본 사람들은 더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어떤 한국인도 박쥐 요리를 주기적으로 섭취하거나 별미로 여기지 않는다. 중국인의 식문화를 옹호하기 위해 '우리도 박쥐먹는 민족'이란 주장까지 나가면 곤란하다. 자기비하로 친중사대할 일 이유 있나.
어느 문화를 평가할때 우열론의 관점을 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문화 상대주의다. 이 관점은 정치적으로 늘 올바르다(Political Correctness). 이런 관점을 취하면 지적으로, 개방적으로 보이고 또 겸손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지식세계의 문법이다. 현실에선 문화간 우열이 존재한다.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어디 쓰여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심미관이 미추와 호오를 가른다. 그 심미관의 기준에서 박쥐는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닌 것이다. 물론 지금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심미관은 서구 문화에 영향받은바 크다.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객관적으로 비위생적이고 그래서 보건에 위협이 되는 식문화를 "문화는 상대적인 것이다"며 옹호할수는 없다. 그거야말로 인종주의 아니겠나. 물론 나는 박쥐를 먹는다고 해서 중국인을 혐오하지는 않는다. 다만 박쥐 섭취는 위생측면에서 문제가 있고, 요즘같은 글로벌 시대엔 그게 큰 인류 건강의 위협이 될 수 있으며 고기를 도축·유통하는데는 정해진 절차가 필요하고 그렇게 생산된 고기를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유리하다는 점을 이번 기회에 그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나로 하여금 정말 몸서리치게 중국을 혐오하게 만드는 것, 저들과 가까이 있다는 사실 자체로 위협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박쥐 고기가 아니라 저들의 정부다. 신종 코로나 창궐 위험성을 최초 경고했고 그 자신 감염됐던 중국 의사 리원량이 7일 투병중 사망했다.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 환자 7명이 사스형 증세를 보이자 SNS를 통해 위험성을 경고했던 인물이다. 중국 정부는 "허위 정보를 퍼트려 민심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며 그를 기소했다. 지금 웨이보를 비롯한 중국 SNS에선 두려움과 고통, 절망을 전하는 투병 환자들의 글들이 속속 사라지고 있다. 당국의 검열 때문이다. 중국은 공산독재, 지금은 시진핑 1인 독재 국가다. 저들의 정부는 인민 위에 군림하고 이웃 국가에 대해서는 강포하다. 보편의 기준에서 벗어나 세계에 위협이 되는 것은 중국의 식문화 이전에 정치체제다. 그 두려움이 수백 수천배는 더 크다. 저런 정치체제에 대해서까지 문화 상대주의 어쩌고 하며 쿨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신임장도 제정받지 않은 신임 중국대사가 브리핑을 열어 "중국과 한국은 운명공동체"라며 중국인 입국제한 조치에 은근히 불만을 드러냈을때 섬칫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한국이 중국과 운명공동체로 엮이는 것이 두렵고 싫다. 박쥐고기가 아니라 그들의 억압적 정치체제와 난폭한 외교가 무섭다. 지금 한국에는 이런 중국에 경계도, 줏대도 없이 굽신거리고 운명 공동체론에 황감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세력들이 있다. 나는 그들도 무섭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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