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의 지지세가 심상치 않다.
특히 10대와 20대의 젊은층에서 르펜 지지가 압도적으로 나타나면서 청년층이 진보적 색채가 강하다는 통념이 프랑스에서 깨지고 있다. 살인적인 청년실업으로 인한 세대간 갈등이 악화하고 연이은 테러로 인한 사회불안이 고조됨에 따라 진보를 상징하는 젊은층이 돌아서면서 르펜의 당선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상황이다.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17일 프랑스 서북부 상말로의 거리에 쥐스텡 디우라페(18·여)와 그녀의 친구들이 "청년들은 르펜과"라는 거대한 배너들 펼쳐든 채 환호하며 르펜 지지 캠페인을 펼쳤다. 디우라페는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좌파, 우파 정권을 경험했다. 하지만 현재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전히 실직상태에 있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집도 없는 이 시스템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 르펜의 시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프랑스 대선은 기존 체제에 반란을 예고한 르펜의 선전으로 흥미롭게 흘러가고 있다. 르펜은 디우라페와 같은 젊은이들의 표심이 FN으로 몰리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경제성장 정체로 구직난에 몰린 '앵그리 영맨(성난 젊은이)'들이 르펜의 최대 지지세력인 것이다. 최근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르펜이 결선투표에 진출할 경우 당선 가능성을 40%로 추산했다.
실제로 이는 지난 5~8일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IFOP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났다. FN은 18~24세 젊은층에서 39%의 지지율을 보였다. 중도신당의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장관과 중도보수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의 지지율이 각각 21%, 9%로 그친 것에 비하면 큰 격차를 보였다.
특히 르펜은 불과 2달 전인 1월 중순 18~24세 젊은층 지지율이 21%였던 감안하면 '바람몰이'가 무섭다. 당시 마크롱과 피용의 지지율이 20%, 18%였다. 피용이 각종 비리 스캔들로 흔들리는 사이 기존 정치에 대한 환멸이 심화돼 상당수 젊은층이 르펜 지지로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FT는 "프랑스 젊은층의 FN 지지는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현상과는 매우 다르다"며"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에서 영국의 젊은층은 브렉시트 반대표를 던졌고, 미국에서도 반(反)이민과 반세계화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젊은 층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FT는 프랑스 유권자들이 구직난에 몰린 청년층과 현상유지를 원하는 중장년층으로 갈려있는 '세대간 갈등' 양상으로 분석했다. 젊은층은 EU 탈퇴, 이민자 80% 감축 등 극우정책을 내놓은 르펜을 지지한 반면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갖춘 중장년층은 현재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피용을 밀고 있다. 피용은 각종 스캔들로 전체 지지율이 10%대로 낮지만 65세 이상에선 40%에 가까운 지지율을 얻고 있다.
가장 극명하게 달리는 것은 역시 일자리다. 실업률이 독일은 현재 4%인데 비해 프랑스는 10%나 된다. 특히 프랑스의 25세 미만 실업률은 25%에 달한다. FT는 "젊은층이 진보적이라는 통설을 깨고 극우파를 선택하는 것은 '프랑스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르펜 이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젊은이들의 18%만 FN을 지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르펜 대표의 지지는 이들 세대에서 '대세론'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인다.
대도시와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간 지역별 편차도 뚜렷하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2015년 프랑스 지방선거 정당별 득표율을 분석한 결과 르펜은 일자리가 줄어든 노후 산업지대에서 지지가 높았다. 대도시에선 좌파 정당이나 녹색당, 중도우파 정당이 잘 나갔고 마크롱이 강세다. 프랑스 정치과학자 조엘 곰빈은 "시골 지역 경기침체를 겪은 젊은이들과 교육수준이 낮은 젊은층 사이에서 FN에 대한 지지가 특히 높다"며 "교육 수준이 낮은 프랑스 젊은이들이 험난한 경제 상황을 맞이할 것은 확실하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2015년 파리 연쇄테러 등 프랑스가 '테러의 온상'으로 지목되며 사회불안이 극심해지는 것도 르펜 지지의 큰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당시 록콘서트가 열렸던 바타클랑 극쟝 등 테러가 발생한 곳이 젊은이들이 밀집한 지역에서 발생한 점을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 남부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고,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벌어진 총기탈취 사건 등 일련의 테러는 르펜에게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르펜은 최근 유세에서 "나는 범죄와 테러리즘과 같은 난제들에 맞서겠다고 맹세한 유일한 후보"라며 "국가의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젊은층의 투표율이 낮다는 점이 르펜에게는 최대 과제로 꼽힌다. 지난 대선에서 18~24세 유권자의 28%가 결선투표에서 기권한 바 있기 때문이다.
[장원주 기자 / 박의명 기자 / 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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