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4일(현지시간) 상원의원 수를 줄이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패배한 것을 시인하고 사퇴를 선언했다.
이날 이탈리아 주요 언론에 따르면 렌치 총리의 개헌안 좌절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 이은 포퓰리즘의 승리 사례로 평가된다.
이번 국민투표의 부결로 상·하원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한 이탈리아 양원제는 그대로 유지된다. 렌치 총리는 취임 2년 9개월만에 자리를 내놓게 됐다.
렌치 총리는 2007년을 정점으로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이탈리아의 경제 침체가 정치 불안정과 관료제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어렵다고 보고 개헌안을 마련해 작년 말과 올해 초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통과시켰으나 최종 국민투표 관문을 넘지 못했다.
렌치 정부가 제시한 개헌안은 상원의원을 현행 315명에서 100명으로 줄이고, 입법권과 정부 불신임권 등 핵심 권한을 없애는 등 상원의 대폭 축소와 함께 중앙 정부 권한 강화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양원제를 채택한 나라로는 유일하게 상원과 하원이 입법 거부권과 정부 불신임권 등 동등한 권한을 지닌 이탈리아의 정치 체계는 양원이 정부의 입법안을 주고 받으며 입법을 지연하거나 차단해온 탓에 정치 불안의 주요 원인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개헌 반대론자들은 상원의 축소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손상시켜 민주주의를 훼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총리에게 너무 큰 권력이 주어져 이탈리아 파시즘의 베니토 무솔리니와 같은 독재자를 출현시킬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특히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을 필두로 한 야당들은 렌치 총리가 투표 결과를 자신의 거취와 연결짓자 이번 투표를 더딘 경제 회복, 고착화된 실업난, 난민 대량 유입 등 렌치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는 투표로 몰았다. 이에 국민투표의 실익에 대한 국민적 논의는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렸다는 평가가 많다.
현지 언론들은 렌치 총리가 즉각 사퇴하면 이탈리아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고 존립을 위협받고 있는 취약한 이탈리아 은행에 직격탄으로 작용할 것이라고도 전망한다. 실제 이탈리아의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서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많을 것이라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유로화 가치는 전일 대비 1.4% 하락해 1년 9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탈리아 현행 선거법 상으로는 내년에 치러질 조기 선거를 통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회의적인 오성운동이 집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오성운동은 이탈리아가 유로존을 떠나는 이탈렉시트(Italexit)를 주장하고 있다. 유로존 3위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의 유로존 이탈이 현실화되면 EU의 근간이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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