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힐러리 클린턴이 승복 연설로 진한 여운을 남겼다.
클린턴은 9일(현지시간) 뉴욕의 윈드햄 뉴오커 호텔 3층에서 13분 동안의 승복 연설에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 연단에 나란히 서 있던 팀 케인 부통령 후보와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로비 무크 선대본부장 등 선거 캠프 관계자들은 눈물을 훔쳤다.
클린턴은 이날 검은 바탕에 원색의 보라색 상의를 입었다. 뒤에 선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보라색 넥타이를 맸다. 보라색은 일반적으로 슬픔을 상징한다.
이에 대해 CNN은 “클린턴 부부의 패배의 충격이 얼마나 큰 지 색깔로 알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반면 LA타임스는 “검은색은 애도를 상징하며, 보라색은 ‘빨간 주(공화당 색깔)’와 ‘파란 주(민주당 색깔)’을 하나로 섞은 정치적 통합을 뜻한다”고 풀이했다.
클린턴은 1년 반 동안 유세에서 자신감으로 가득찼던 모습과 달리 패배를 받아들이기 힘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클린턴은 “우리가 간절히 원했고, 또 이루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그런 결과가 아니었다. 여러분이 느끼는 절망감을 나도 느낀다. 고통스럽다”고 운을 뗐다.
그는 “우리는 아직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유리천장을 깰 것이다. 희망컨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를 수 있다”며 여성 대통령의 벽이 높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래의 여성 대통령 등장에 대해 “선거기간 중 나에게 신념을 불어넣어준 젊은 여성들이여. 난 당신들의 ‘챔피언’이었다는 사실보다 더 자랑스러운 것이 없다”며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모든 소녀들이여. 그대들은 꿈을 쫓고 이루기 위해 모든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소중하고 힘있는 존재임을 결코 잊지 말아달라”고 힘주어 말했다.
클린턴이 이 대목을 말할 때는 실내를 가득 메운 지지자들 대부분이 울음을 터뜨렸고, 남편 빌도 눈물을 훔쳤다.
이어 클린턴은 차기 대통령이 된 트럼프에 대한 예의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트럼프에게 열린 마음으로 임하고, 그에게 나라를 이끌 기회를 줘야 한다”며 “다만 우리 민주주의는 법 앞에 평등하고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며, 그것을 반드시 지켜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날 클린턴의 승복 연설은 ‘반 힐러리’ 운동을 이끈 보수 언론들도 찬사를 보내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위클리 스탠더드는 “선거기간 동안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었다”고 했고, NBC방송 ‘모닝 조’ 진행자인 조 스캐보로는 “그녀는 정권을 차지하지 않아도 내 딸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디지털뉴스국 한인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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