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의회가 오는 23일 영국에서 실시되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투표후 ‘탈퇴’ 결론시에 대비한 플랜B수립에 착수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EU가 준비하는 플랜B가 영국민 마음을 바꾸기 위한 ‘설득’이 아니라 철저한 ‘응징’이라는 점이다. 브렉시트 결정에 따른 다른 회원국들의 추가이탈을 막기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게 EU의 입장이다. 마치 작년 그리스의 ‘그렉시트’ 투표 결정 후 다른 채무국들의 추가 행동을 막기위해 그리스를 채무협상 벼랑 끝으로 몰고가 ‘백기투항’을 받아냈을 때와 마찬가지 전략이다.
1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 도널드 터스크 EU 상임의장,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을 중심으로 주요 관계자들이 최근 ‘브렉시트’ 발생에 대비한 대책 수립을 위해 수주간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브렉시트 발생시 발표할 성명을 준비 중인데 핵심 골자엔 “영국이 EU를 떠나게 돼 유감이지만 우리는 영국 없이도 얼마든 잘 꾸려나갈 수 있다”라는 내용이 포함될 전망이다. 프랑스 소속의 한 EU의회 멤버는 “영국 일각에선 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승리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것은 뒹케르크 철수작전이 아니라 나폴레옹의 러시아 철군 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뒹케르크 철수작전은 지난 1939년 2차 세계대전 발발 때 히틀러에 몰려 고립됐던 영·프연합군이 뒹케르크 해안을 통해 천운으로 철수 후 반격을 도모해 승리를 거둔 일전을 말한다. EU의회의 의도는 브렉시트가 이런 천운의 EU이탈이 되는 사태를 막는 동시에 러시아 원정에서 패한 후 몰락의 길을 걸었던 나폴레옹 만큼 처절한 EU탈퇴 댓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브렉시트 투표에서 EU탈퇴 결론과 동시에 EU의회는 모든 EU내 의사결정과정에서 바로 영국을 제외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당장 투표 닷새 후 예정된 EU정상회의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캐머런 총리는 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통보받고 별도로 EU탈퇴 협상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EU에서의 위상 자체가 미가입국가 수준으로 추락되는 셈이다. 이 같은 유럽의회 조치는 핀란드에선 유로존 탈퇴 여론이, 네덜란드도 EU탈퇴 국민투표 여론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미노 탈퇴’ 여론 확산차단을 위해 강경조치 초안을 수립했지만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당장 이런 조치와 관련해 영국의 누구와 얘기를 나눌지 조차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결론시 보수당내에서 캐머런 총리에게 퇴진압박을 가해질 게 뻔하고 이럴 경우 브렉시트 진영의 선두주자인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이 협상 당사자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 협상 대상이 달라지면서 EU의회의 대응 전략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브렉시트 국민 투표 결과와 관계없이 EU자체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로화 통합 체계는 여전히 불안하고 독일이 주도하는 경제 정책은 그리스 등 남부 유럽의 부채 삭감에 10년을 소비하는 등 진통이 크기 때문이다. EU의 정책 실패가 EU 이탈의 명분을 주고 있는 만큼 내부 수술이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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