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를 유치하기 위한 아시아 도시간 전쟁이 치열하다. ‘인구절벽’, ‘노령화’, ‘저성장’이라는 삼각파도를 마주하고 있는 도시들에게 글로벌 기업의 지역본부는 세 마리 토끼를 한 꺼번에 잡을 수 있는 기회다. 기업이 들어 오면서 생산·소비력이 왕성한 전문인력과 미래 성장동력이 동시에 제공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도시들도 미래 글로벌 도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최근 포춘500에 오른 상위 100대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아시아 헤드쿼터 입지를 분석했다. 서울에 본부를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은 현대자동차 1곳 뿐이었다. 수원에 본사를 둔 삼성전자를 포함해도 싱가포르(32개), 홍콩(11개), 베이징(10개) 등 다른 아시아 주요 도시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입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로 우수한 인재를 뽑을 수 있는 풍부한 노동시장이 꼽힌다. 우수한 노동력 확보가 기업성장을 위한 필수요소여서다. 황점상 쿠시먼 앤드 웨이크필드 코리아 대표는 “영어가 유창한 노동력을 상대적으로 쉽게 확보할 수 있고 지리적으로 아시아 중간에 있는 싱가포르가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 유치에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삶의 질’등이 포함된 도시 경쟁력 지표에도 서울은 아시아 주요 경쟁도시에 뒤쳐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업체 세빌스가 모리지수, EIU지수, 커니지수 등을 종합한 세계 주요도시 경쟁력 지표를 보면 런던, 뉴욕, 파리가 각각 1,2,3위를 차지했다. 이어 도쿄(4위), 홍콩(5위), 싱가포르(6위), 베이징(8위), 상하이(11위)가 차지해 다른 아시아 도시들의 경쟁력이 서울(12위)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변미리 서울연구원 미래연구센터 센터장은 “도시경쟁력 지표는 서울시의 글로벌 인지도와 연관이 있어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도 글로벌기업의 지역본부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자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헤드쿼터 인정제도를 도입하고 외국인 임직원과 기술자에 대한 소득세를 감면하는 등 맞춤형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외국인 임직원에 대해 소득에 상관없이 17%의 동일세율을 적용하던 특례조치가 2014년 종료됐지만 헤드쿼터에 근무하는 외국인 임직원에 대해서는 이를 지속적으로 적용키로 한 것이 한 예다.
그러나 지난해 있었던 램리서치의 물류창고 이전은 이런 노력을 무색케 한다. 지난해 6월 세계2위 반도체 정비업체인 램리서치는 인천에 물류창고를 건설하려다 대만으로 방향을 틀었다. 램리서치는 아시아 시장확대를 노리고 인천을 입지로 고려했지만 외국업체라는 이유로 부가가치세를 물어야 하는 점을 문제삼았다. 한국 업체들은 물류창고에 국내 물품을 반입했을 때 ‘영(zero)세율’을 적용받는데 외국기업이라고 차별을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도시 대전은 국가대표 도시들 간의 경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국가 내에서도 경쟁은 치열하다. 지난 13일 코네티컷주 페어필드에 위치한 GE는 2018년 까지 본사를 250km 떨어진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으로 이전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지난해 코네티컷 주의회가 주 법인세를 기존 7.5%에서 9%로 대폭 인상하자 40년 넘게 자리잡은 둥지를 이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반면 높은 세율로 택사추세츠(Taxachusetts)로 불렸던 메사추세츠는 2008년 9.5%에 이르던 법인세율을 8%로 낮추며 기업유치에 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법인세율 인하나 인센티브 제공, 면세 등 전통적으로 중요시되던 비용요소(Cost Factor)를 넘어 삶의 질, 주거환경과 같은 비용외 요소(Non-Cost Factor)에 대한 고려가 글로벌 기업의 헤드쿼터를 유치하기 위해 함께 중요시되는 추세다.
과거에는 글로벌 기업들이 임대료가 비싼 도심을 떠나 외곽으로 사무실과 공장을 대거 이동시켰다. 그러나 이제는 높은 부가가치와 생산성을 요구받는 지식기반 산업의 발달과 함께 업무공간의 질적 환경이 중시되고 있다. 기업전략도 비용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상쇄할 만한 인재를 확보하는데 맞춰지고 있다. 도시의 입장에서는 글로벌기업 유치를 통해 도시성장->도시 삶의 질적 향상->풍부한 노동시장 형성->우수 입지조건 확보-> 글로벌 기업 유입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지적한‘여의도 미스터리’에는 인프라 투자에도 불구하고 외국 기업이 오지 않는 이유가 잘 설명돼있다. 여의도 IFC(국제금융센터)복합단지 건설 등 대규모 인프라 구축에 발맞춰 서울시와 정부는 2009년 여의도를 아시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해외 금융기관의 지역본부를 여의도에 유치하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대신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JP모간 등 외국 금융사의 서울지점은 광화문에 몰렸다. 대신증권, 미래에셋, 유안타 증권, 메리츠 자산운용 등 국내 증권사의 여의도 이탈도 이어졌다. 전문직 외국인 끌어 모으려면 그들이 중요시하는 직주근접과 같은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고려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게 모 교수의 설명이다.
결국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들이 ‘글로벌 인구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아스팔트나 콘크리트와 같은 물리적 환경에 대한 개선과 함께 다양한 음식, 뮤지컬, 쇼 등 도시 문화콘텐츠를 통해 사람을 끌어 모을수 있는 매력요소들이 있어야 한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의 이승재 책임연구원은 “국가 간 경쟁에서 도시 간의 경쟁으로 경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면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도시는 빠르게 성장하는 글로벌 도시 경쟁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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