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유럽 선수들 '무지개 완장' 착용 못해
'무지개색 티셔츠' 입은 미국 기자, 경기장 입장 불허도
'무지개색 티셔츠' 입은 미국 기자, 경기장 입장 불허도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의미를 지닌 '무지개 완장'이 2022 카타르 월드컵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무지개 완장'에는 숫자 '1'이 적힌 무지개 색 하트와 원 러브(One Love)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무지개 완장'을 착용할 경우 '옐로카드'를 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기존 전망되던 '벌금'이 아닌 경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옐로카드'를 무지개 완장 착용에 대한 징계로 꺼내든 겁니다.
앞서 잉글랜드,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웨일스, 스위스, 덴마크 등 유럽 7개 국가 주장들은 '무지개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서기로 뜻을 모은 바 있습니다. 대회를 앞두고 각종 인권 논란을 부른 월드컵 개최국 카타르에 대한 항의의 표시이자 네덜란드가 차별에 반대하고 다양성과 포용을 촉진한다는 뜻으로 시작한 '원 러브' 캠페인의 일환입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자국의 경기 성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옐로카드'가 징계로 거론되자 현지 시간 21일 공동성명을 내고 '무지개 완장'을 차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유럽 7개 축구대표팀은 "복장·장비 규정 위반에 적용되는 벌금을 낼 준비가 돼 있었지만 선수들이 옐로카드를 받거나 경기장을 강제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할 수는 없었다"고 결정의 이유를 밝히면서 "FIFA의 전례 없는 결정에 매우 실망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방식으로 포용의 뜻을 보여주겠단 약속도 덧붙였습니다.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해리 케인 / AP=연합뉴스
'차별 반대'라고 적힌 FIFA 자체 완장 /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한국 시간으로 전날(21일) 밤 10시에 있었던 잉글랜드와 이란의 B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무지개 완장'을 차겠다고 공언했던 잉글랜드 주장 해리 케인은 결국 '무지개 완장'을 착용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케인은 '차별 반대'라고 적힌 FIFA 자체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으며 카타르 인권 탄압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잉글랜드 대표팀 모두가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란과의 경기 전 무릎을 꿇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FIFA는 무지개 완장' 착용 금지에 대한 근거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스포츠 선수들이 사용하는 장비에 정치적, 종교적 의미를 담은 문구나 이미지 사용을 금지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으로 해석됩니다.
FIFA의 완장 착용 금지를 두고 동성애를 처벌하는 카타르 정부를 의식했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카타르에서 동성애는 불법이며 남성 간 동성애는 최고 징역 7년에 처해지는 중죄로 여겨집니다. 카타르 월드컵 대사는 경기 개막을 앞두고 "동성애는 정신적 손상"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낳기도 했습니다.
미국 기자, '무지개색' 티셔츠 이유로 입장 못해
선수들의 '무지개 완장' 착용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무지개색 티셔츠를 입은 미국 기자가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미국 CBS 방송 등에서 활동하는 축구 전문 기자 그랜트 윌은 자신의 SNS를 통해 "안전 요원이 나를 경기장에 입장시켜주지 않았고, 25분 동안 내 발을 묶어뒀다"며 "안전 요원이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무지개색 티셔츠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이어 "내가 급하게 SNS에 글을 올리니, 내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앗아갔다"며 "30분 가량이 지나니까 한 요원이 와서는 내 옷이 '정치적'이라며 입고 입장할 수 없다고 했다"고도 했습니다.
이후 안전 관리자가 온 후에야 풀려난 뒤 사과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윌은 "요원 중 1명이 내부에서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사태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며 "그러나 이번 소동을 계기로 '지금처럼 세계의 이목이 쏠리지 않을 때 일반 카타르 시민이 무지개 티셔츠를 입었으면 과연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SNS 게시글을 통해서는 "FIFA와 미국 축구대표팀 모두 공개적으로 나에게 무지개색 셔츠와 깃발이 이번 대회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며 "진짜 문제는 이번 월드컵에서 이 두 기관이 전혀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영국 중계 해설자, '무지개 완장' 착용…전직 축구선수
영국 공영방송 BBC 중계 해설을 맡은 앨릭스 스콧은 '무지개 완장'을 착용하고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FIFA가 사실상 무지개 완장 착용을 금지한 이후라 스콧에게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잉글랜드 축구 선수 출신인 스콧은 "경기 당일 오전에 이런 식으로 금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해리 케인이 이 밴드를 착용하고 나왔더라면 더 강력한 메시지가 됐을 것"이라고 영국 매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습니다.
[윤혜주 디지털뉴스 기자 heyjude@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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