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현지(21)는 TS샴푸·푸라닭 히어로즈가 프로당구협회(PBA) 팀리그 전반기 막판 극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데 숨은 공신이다.
지난 시즌 최하위 히어로즈는 이번 시즌 초반에도 부진했지만, 마지막 5경기에서 5연승을 내달리며 12승 9패 공동 1위로 팀리그 전반기를 마쳤다. 상대 전적 열세로 하나카드 원큐페이에 우승을 내주긴 했지만,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미소쟁이' 용현지는 분위기 메이커이자 복식 강자로 TS샴푸·푸라닭의 역전극을 이끌었다. 14일 MK스포츠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5년 안에 당구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남다른 포부를 밝혔다.
- 복식 강자이자 분위기 메이커 용현지는 전반기 준우승의 숨은 공신이다. 이런 평가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 (이미래와 같은 25승으로) 팀 최다승이라는 언론 보도를 봤다. 혼자서 해냈다기보다는 여자복식은 미래 언니, 혼합복식은 (김)종원 삼촌, (김)임권 삼촌, (임)성균 오빠 등 팀원이 같이 해줘서 거둔 승리라고 생각한다. (동료한테) 도움을 받았기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가끔 “현지가 해줘서 TS샴푸·푸라닭이 이렇게 잘 됐다”는 말을 듣기는 한다. 그런데 분위기를 좀 좋게 해준 것뿐이지 ‘내가 잘한 덕분’이라고 생각한 적은 솔직히 없다.
- 전반기 결산 인터뷰에서 김종원 리더가 “성적이 좋아 매우 만족. 점점 나아지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 정말 다행. TS샴푸·푸라닭이 전반기에 낼 수 있는 최고 성적”이라고 말했는데.
▲ 동의한다. 솔직히 (어느 시점까지) 부진했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우리가 이렇게 잘했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떻게 계속 승리했는지 (벌써) 기억이 안 난다.
- 김종원 리더는 “훈련은 물론 식사도 함께하면서 사소한 것부터 소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 “TS샴푸·푸라닭은 눈에 확 띄는 선수가 다른 팀보다 적다 보니 전력이 좀 약하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나한테 직접 (팀 전력을 낮게 평가하는) 말하는 것도 들었다. 매우 속상했다.
그러나 팀리그는 개인전이 아니다. 막 우승하는 선수가 아닌 내가 팀 최다승을 기록한 것만 봐도 (선수 하나하나의 실력이) 당연히 (성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팀워크가 정말 중요하다.
김종원 리더의 설명처럼 식사도 함께했고 티타임도 가졌다. 이번 시즌 TS샴푸·푸라닭에 들어온 김임권 임성균 선수가 어색할 것 같아 경기 전에 2번 정도 만났다. 팀원끼리 연습도 하고,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서로 친해지고 소통이 되어야 당구도 호흡이 잘 맞는다. 케미(Chemistry)라는 것이 정말 있다. ‘사소한 얘기도 공유하자’며 티타임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리더를 팀원들이 같이 잘 따라준 것이 성적을 잘 낸 이유 중 하나다.
경기를 지거나 못 쳤다고 혼을 내거나 무거워지는 분위기가 절대 없다. 물론 지거나 (이겼어도) 플레이가 좋지 못하면 속상하지만 “괜찮아, 잊어버려, 내일 잘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리더나 팀원들이 항상 말해주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 김종원 리더는 2년 연속 주장이다. 지난 시즌 최하위였고 이번 시즌도 초반 부진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이 전반기 결산 인터뷰에서 느껴졌다. 그런데 팀원에게는 티를 안 냈나 보다.
▲ 전혀 그런 티를 안 냈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감사한 리더다. 지난 시즌 후반기 드래프트로 들어와 정말 적응을 못 했다. 성적도 1승밖에 없었을 정도로 매우 나빴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기회를 주고 경험을 쌓게 해줬다. (계속 져도) “괜찮다, 괜찮다”고 말해줬다. (팀 적응 문제와 개인적인 부진이 겹쳐) 좀 많이 무너졌을 때가 있었는데 정말 힘을 많이 실어줬다. (주장이라 팀 성적 때문에) 매우 힘들었을 텐데 그런 내색 하나 없이 팀을 위해 많이 노력해왔다.
- 눈웃음이 정말 상큼하다. '미소쟁이'라는 별명을 짓고 싶은데.
▲ 초등학교 시절엔 웃으면 눈이 사라지는 게 콤플렉스여서 오히려 스스로는 안 좋게 생각했다. 부모님 등 어른들은 “눈웃음이 예쁘다. 매력이고 장점이다. 숨길 필요 없다. 시간이 지나면 말뜻을 알게 될 것”이라고 얘기해줬는데 그때가 지금이지 않을까.
(TS샴푸·푸라닭 남자 동료들인) 삼촌들도 “현지는 (집중해서) 당구 칠 때와 웃을 때가 180도 다르다”고 말해주는데 (그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눈웃음이 예쁘다는 말은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다.
내가 생각하는 매력은 좀 더 넓은 개념의 ‘밝은 성격’이다. 스스로에게는 정말 엄격하지만 남한테는 긍정적이다. 활발하고 항상 싱글벙글해서 그런지 “현지는 참 행복해 보인다”는 얘기를 듣는다. 타인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이 장점이지 않을까.
- 팀리그에서 파이팅이 돋보인다.
▲ 나도 사람이니까 중간에 텐션이 떨어지거나 힘들 때가 분명히 있다. 내 경기도 하면서 (동료들을) 응원하고 등등 이래저래 많이 하니까. 개인전보다 체력 소모는 훨씬 크다. 그럴 땐 ‘단체전이니까 조금 더 힘내자. 내가 지치면 팀 분위기가 처진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서로 “파이팅! 파이팅!”하면 잘하고 아니면 잘못하고. (텐션에 따라 결과가 다른) 경험을 1~2번 해보니까 내가 지치면 안 될 것 같고. 막내이자 분위기 메이커라는 책임이나 부담도 가끔 느낀다.
- 경기가 안 풀리면 표정이 굳어지는 게 보인다. 멘탈을 관리하는 방법이 있다면?
▲ ‘쿠크다스’라는 별명까지 있을 정도로 유리 멘탈이다. 정말 약했다. 잘 치다가도 뭔가 하나 때문에 무너졌다. 나한테 화도 많이 냈다. 한 큐를 못 친 거로 끝내야 하는데 ‘나 왜 이랬지’ 하면서 (부정적인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 몇 이닝을 계속 끌고 가고.
그래서 자신을 돌아보든, 주변의 평가든 기복이 좀 심하다. 한번 치고 나가면 진짜 못 말릴 정도로 치고 나가는 게 장점이라면 단점은 반대로 한번 말리면… 이걸 고치려다가 자책을 너무 많이 했다.
그러다 “당구는 자신감, 당당함이 중요한데 자학은 정말 좋지 않다. 자책하다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충고를 들었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경기를 위해 들어가기 전이나 당구를 치기 전에 거울을 보면서 ‘할 수 있다. 난 용현지다’는 세뇌를 많이 시킨다.
좀 잘 안되면 (물론 겉으로 보이는) 표정은 굳어져도 속으로 ‘나 용현지야. 할 수 있어. 괜찮아. 까짓거 한번 해보자. 못해도 되니까 후회만 하지 말자’ 이런 긍정적인 생각과 혼잣말을 계속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플레이가) 다시 살아나 역전승을 거둘 때가 많아졌다. 팀리그에서도 (이)미래 언니와 여자복식, (임)성균 오빠와 혼합복식이 그랬다. 계속 ‘괜찮아, 현지야 해봐, 할 수 있잖아, 할 수 있는 거 아냐?’ 이렇게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한 덕분이었다.
- 당구선수로서 멘토가 있다면?
▲ (공개 연애 중인) 조명우가 (3살 차이로) 나이는 비슷하지만, 당구에서는 (주니어세계선수권 3회 우승 등) 대선배다. 기술적으로도 많이 배우지만, 경기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등 멘탈이나 마인드에 대한 부분을 정말 많이 얘기해준다. 혼도 많이 났다. 직전 질문에서 답변한 (자책하지 말고 스스로와 자신감을 불어넣는 대화를 많이 하라는) 방식도 조명우가 알려준 방법이다.
(이)미래 언니는 TS샴푸·푸라닭 선배로서 정신적인 지주 같은 느낌이다. (2시즌째 같은 팀이다 보니) 나에 대해 다 꿰뚫었는지 “너 불안해 보여” “지금 (페이스가) 조금 빨라”, 아무 말 안 하고 표정만 굳어져도 (바로 알아채서) “현지 왜 그래? 화났어? 괜찮아” 이런 식으로 팀리그 경기 도중 멘탈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나를 이끌어준다. 경기 중간에도 서로 얘기를 정말 많이 한다.
- 친한 당구선수는?
▲ (올해 9월 세계여자선수권 준우승을 차지한) 한지은이다. 어릴 때부터 같이 당구를 쳤고 제가 PBA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몇 년 동안 함께 연습했다. (이)미래 언니하고는 지난 시즌부터 팀리그를 같이 하면서 더 친해졌다.
- 이번 시즌 팀리그에서 복식경기에만 출전하고 있다. 아쉽지 않은지.
▲ 선수로서는 당연히 단식도 뛰어보고 싶지만, (원래 성격적으로) 현실에 수긍하는 편이다. (이)미래 언니가 더 잘 치고 성적이든 뭐든 나보다 위에 있는 건 맞다. 팀을 위해서라면 받아들이겠다.
지난 시즌에는 출전을 못 하는 날이면 ‘김종원 리더가 기회를 줄 때 잘하자’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지금은 ‘복식을 열심히 하다 보면 나도 (단식) 출전할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한다. 부정적이고 아쉬운 생각은 잘 안 하려고 한다. 일단 (미래) 언니가 정말 잘해요.
- 이번 시즌 복식으로만 팀리그 전반기 여자 전체 최다승(이미래와 공동 1위)이다. 복식에 특별히 강한 이유가 있는가.
▲ 절대 서로를 의심하면 안 된다. 의심하는 순간 끝난다. (혼합) 복식은 호흡을 (팀 연습 때) 맞춰보고 잘 맞는 사람이랑 나간다. 근데 내가 못 쳐도 (남자 선배들이) 그냥 “지금 잘 안되네”가 끝이다.
“너 이거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삼촌 이거 못 칠 것 같은데”라는 의심이 아니라 “칠 수 있다”고 서로 믿어주고, 잘 안되면 “다음 거 잘 치자” “빨리 잊어버려” 이런 식으로 서로 괜찮다고 긍정적으로 말해주고.
특히 이거는 (김)종원 삼촌이 잘한다. 정말 믿음직하고 듬직하다. (혼합복식 경기 도중) 35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공을 가르쳐줄 때 정말 귀에 쏙쏙 들어온다. “너 힘 빠진다” “지금 뭔가 이상하다” 이렇게 내 문제점을 알고 말해주면 딱 된다.
서로 믿어주고 의심하는 것 없이 믿다 보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보다는) ‘삼촌이니까, 현지니까 할 수 있잖아’ 이런 식이 되어서 좋은 결과가 오지 않았을까. (복식 도중 플레이에 대해) 서로 미안하다, 죄송하다 이런 거를 안 하려고 한다.
▲ 팀원끼리 협력하고, 같이 뭔가를 해야 더 돈독해지고 화합이 잘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 세리머니를 구상할 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봤다. (주인공이 절친 동그라미와 하는 독특한 인사법이) 너무 귀엽더라.
처음에는 친구끼리 같이하다가 ‘잠깐, 이거 뭐야. 마지막 제스처가 TS 세리머니잖아’고 깨닫게 됐다. 티타임 때 “저희 해볼까요?”라고 말을 꺼내니 “그거 괜찮다”는 반응이 나왔다. “마지막에 이거 딱 하면 깔끔하겠다. 그 타석에서 이긴 사람이 신호를 주면 마지막에 다 같이 TS 세리머니” 이렇게 구체화했다.
이런 거를 팀원들이 다 좋다, 괜찮다면서 따라 해주고 연습해 보자고 하고.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세리머니할지도 다 연습한다. 누구 하나 하기 싫다거나 부끄러워하거나 민망해하지 않고 다 따라와 줬다.
물론 세리머니를 한다고 무조건 이기진 않는다. 그런데 팀이 더 끈끈해지고 친해지다 보니 전반기 2, 3라운드에 더 잘한 성적과 함께 점점 빛을 발했다.
세리머니도 처음에는 박자도 안 맞았고. 연습한다지만 몇 시간씩 하는 것은 아니고 몇 번 맞춰보는 정도다. 해볼 때 틀리면 팀원끼리 깔깔 웃으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삼촌 그거 아니에요” 이러면서 더 친해지고. 서로 좀 더 허물없는 사이가 되면서 팀 분위기가 좋아지고. 친구, 삼촌, 가족처럼 지내다 보니까 TS샴푸·푸라닭이 공동 1위이자 준우승으로 전반기를 마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 어떤 당구선수가 되고 싶은지. 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꿈은?
▲ 당구를 시작하면서 첫 목표는 세계선수권 출전이었다. 물론 정말 못 쳤지만 (2019년 대회 참가를 통해) 꿈은 이룬 것 같다.
PBA로 넘어오면서 제일 크게 느끼고 있는, 그리고 잡게 된 목표는 성적보다는 일단 좀 즐기자. 경기를 즐기고,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자. 이게 무슨 말이냐면 스스로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경기가 무섭고 두려워진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않고 경기를 즐기다 보면 성적을 알아서 좋게 온다. 져도 되니까 후회만 남기지 말자. 이런 마인드와 목표를 세웠다. (정신·육체·실력 모두 준비된 상태로) 즐긴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
솔직히 모두에게 목표는 우승이고 1위다. 나도 언젠간 할 것이다. 근데 이런 당연하고 뻔한 것보다는 당구를 즐기고 재밌어하는 선수가 제 목표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순간부터는 경기가 기다려질 것이다. ‘언제 또 하지? 나 보여주고 싶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도록 하겠다.
5년? (좀 더 빠르면) 3년이면 되지 않을까? 충분히 할 수 있다. 거만보다는 자신감이다. 자책을 많이 하고 채찍질하는 만큼 당근도 많이 준다. ‘현지, 너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식으로? 자신을 믿어야 노력한 만큼 보여줄 수 있고, 그래야 당구를 즐기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물론 지금보다 열심히 할 필요는 있다. 조금 더 열심히, 좀 더 세세하게 연습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3년에서 5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목표를 잡았다.
- 가족관계는? 당구는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는지.
▲ 언니가 1명 있다. 2013년, 초등학교 6학년 때 맛있는 것을 사준다는 아버지를 따라 당구장에 놀러 간 것이 시작이었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다. 육상도 했었고. 그래서 ‘방학 동안 한 번 해볼게’가 된 것이다. 처음엔 함께였던 언니는 하루 만에 이탈했다.
조그만 애가 밀어 치고 끌어 치고 하는 것에 신기해하면서 주변에서 “천재다” “잘한다” 해주고, 맛있는 것도 갈 때마다 먹으니 재미를 느꼈다. 그렇게 1년 정도 아버지를 따라다니다가 “선수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었다. 지방체육회 동호인 강사 출신 당구장 사장님 의견이었다.
(선수 준비를 위해) 당구 아카데미를 가니까 맛있는 건 하나도 없고 똑같은 걸 몇백 번 치라고 하니까 안 한다고 바로 그만두고 나왔다. 갑자기 무거운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한 거다.
그러다 아버지가 개인 레슨을 알아봐 다시 시작한 것이 2015년,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시흥당구연맹을 소개받고, ‘경기를 나가는 것만으로 경험인 시기’라고 권유받아 (당시 최연소로) 선수 등록을 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치게 됐다.
아버지가 당구선수인 딸을 자랑스러워한다. 많이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당구 치는 딸을 보면 기쁘고 좋아했다. 내가 당구를 치면서 아버지가 다시 좋아지기도 했다. 내가 당구선수를 해야 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큰 이유다.
완전 딸바보다. 온 동네에 널리 널리 소문을 내고. “우리 딸 (경기) 좀 보세요”라고.
▲ 이번 시즌 2·3라운드가 9월 16일부터 10월 2일까지 (9월 23~25일만 빼고) 계속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쉬고 싶었는데 (이)미래 언니와 베트남 초청을 받았다. 10월 3일 집에 가서 짐을 풀고 다시 짐을 싸서 베트남에 다녀왔다. (두 선수는 베트남 팬들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한국에 와서 이틀 정도는 당구 생각 없이 편하게, 평범하게 쉬었다. 사랑하는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고, 친구랑 놀고. 그 후에는 10월 25일 시작하는 개인전(LPBA투어 4차전)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
- 평소 하루는 어떻게 보내는지? 당구 말고 취미가 있다면. 좋아하는 음식은?
▲ 경기가 없는 날에도 하루 최소 8시간, 기본적으로 10시간은 당구장에서 보낸다.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진 않다. 머리를 하고 싶다든지 이런 개인적인 뭔가를 할 땐 평소보다 빨리 나오거나, 아니면 연습하러 늦게 가는 식이다. 연습을 생략하는 날은 거의 없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 왜소한 편이고 (신체적으로) 약한 것이 당구선수로서 집중력 저하, 나아가 경기력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 많다. 그래서 기초대사량을 늘리고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헬스와 필라테스를 3년 동안 꾸준히 했다. 당구 연습의 일부라고 생각했으니까.
코로나19가 심했을 때는 홈트레이닝을 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런데 (PBA 진출 후) 너무 바빠지고 (개인전뿐 아니라) 팀리그도 있어서 운동을 쉰 게 6개월이 되니까 (체력적으로) 다시 좀 힘들어졌다. 운동하면서 살도 찌우고 근육으로 체중도 늘렸는데 안 하니까 또 빠진다. 그래서 어떻게든 다시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당구선수들은 체력에 대한 고민을 들으면 “살을 찌우면 된다”고 말해주는데 1㎏ 늘리는 것도 정말 힘들어서. 누군가에게는 내 이런 체질이 행복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어서 주로 (헬스장에서 일하는) 운동 선생님하고 상담한다. 단백질을 많이 먹으라고 한다.
그래서 고기를 계속 먹고. 요즘 좋아하는 음식도 (단백질이 많은) 닭갈비, 샤부샤부, 소 곱창이다. 원래도 피자, 파스타 같은 양식은 안 좋아하고 한식을 정말 좋아한다. 팀 식사 메뉴 고를 때 내가 파스타를 안 먹는다고 하면 (또래 여자들과 다른 식성에) 신기해한다.
당구를 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노래로 푼다. 노래를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부르고 싶어서 노래 연습실을 다니며 배우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키우는 강아지하고는 같이 있기만 해도 좋다.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도 강아지를 보고 나면) ‘내가 왜 화났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승하면 상금으로 뭘 하고 싶냐고 묻는 날에 “먹고 싶은 거 다 사주고 건강검진 시켜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나 명언 같은 게 있는지.
▲ 내가 전에 다니던 당구장에 (1988 서울올림픽 남자유도 –60㎏ 금메달리스트) 김재엽 동서울대학교 경호스포츠과 교수가 손님으로 왔을 때 스포츠선수로서 마음가짐에 대해 말해줬다.
“초심, 열심, 뒷심 3가지 마음(心) 중에서 초심이 가장 중요하다. ‘초심’을 잊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면 ‘뒷심’을 발휘할 거고 그러다 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김재엽 교수의 충고가 계속 기억에 남는다.
전보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예전보다는 훨씬 더. (이런 인기를) 고마워하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많이 거만할 때가 있나 이러면서 자아 성찰을 한다. 내가 어떻게 당구를 시작했는지 초심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까지 온 길만큼이나)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많다. ‘후회를 남기지 않고 앞만 보고 나가다 보면 좋은 결과가 오겠지, 열심히 하다 보면 성적은 당연히 따라오겠지’라는 생각에 절대 욕심내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자고 다짐을 많이 한다.
[강대호 MK스포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시즌 최하위 히어로즈는 이번 시즌 초반에도 부진했지만, 마지막 5경기에서 5연승을 내달리며 12승 9패 공동 1위로 팀리그 전반기를 마쳤다. 상대 전적 열세로 하나카드 원큐페이에 우승을 내주긴 했지만,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미소쟁이' 용현지는 분위기 메이커이자 복식 강자로 TS샴푸·푸라닭의 역전극을 이끌었다. 14일 MK스포츠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5년 안에 당구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남다른 포부를 밝혔다.
- 복식 강자이자 분위기 메이커 용현지는 전반기 준우승의 숨은 공신이다. 이런 평가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 (이미래와 같은 25승으로) 팀 최다승이라는 언론 보도를 봤다. 혼자서 해냈다기보다는 여자복식은 미래 언니, 혼합복식은 (김)종원 삼촌, (김)임권 삼촌, (임)성균 오빠 등 팀원이 같이 해줘서 거둔 승리라고 생각한다. (동료한테) 도움을 받았기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가끔 “현지가 해줘서 TS샴푸·푸라닭이 이렇게 잘 됐다”는 말을 듣기는 한다. 그런데 분위기를 좀 좋게 해준 것뿐이지 ‘내가 잘한 덕분’이라고 생각한 적은 솔직히 없다.
- 전반기 결산 인터뷰에서 김종원 리더가 “성적이 좋아 매우 만족. 점점 나아지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 정말 다행. TS샴푸·푸라닭이 전반기에 낼 수 있는 최고 성적”이라고 말했는데.
▲ 동의한다. 솔직히 (어느 시점까지) 부진했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우리가 이렇게 잘했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떻게 계속 승리했는지 (벌써) 기억이 안 난다.
- 김종원 리더는 “훈련은 물론 식사도 함께하면서 사소한 것부터 소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 “TS샴푸·푸라닭은 눈에 확 띄는 선수가 다른 팀보다 적다 보니 전력이 좀 약하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나한테 직접 (팀 전력을 낮게 평가하는) 말하는 것도 들었다. 매우 속상했다.
그러나 팀리그는 개인전이 아니다. 막 우승하는 선수가 아닌 내가 팀 최다승을 기록한 것만 봐도 (선수 하나하나의 실력이) 당연히 (성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팀워크가 정말 중요하다.
김종원 리더의 설명처럼 식사도 함께했고 티타임도 가졌다. 이번 시즌 TS샴푸·푸라닭에 들어온 김임권 임성균 선수가 어색할 것 같아 경기 전에 2번 정도 만났다. 팀원끼리 연습도 하고,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서로 친해지고 소통이 되어야 당구도 호흡이 잘 맞는다. 케미(Chemistry)라는 것이 정말 있다. ‘사소한 얘기도 공유하자’며 티타임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리더를 팀원들이 같이 잘 따라준 것이 성적을 잘 낸 이유 중 하나다.
경기를 지거나 못 쳤다고 혼을 내거나 무거워지는 분위기가 절대 없다. 물론 지거나 (이겼어도) 플레이가 좋지 못하면 속상하지만 “괜찮아, 잊어버려, 내일 잘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리더나 팀원들이 항상 말해주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 김종원 리더는 2년 연속 주장이다. 지난 시즌 최하위였고 이번 시즌도 초반 부진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이 전반기 결산 인터뷰에서 느껴졌다. 그런데 팀원에게는 티를 안 냈나 보다.
▲ 전혀 그런 티를 안 냈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감사한 리더다. 지난 시즌 후반기 드래프트로 들어와 정말 적응을 못 했다. 성적도 1승밖에 없었을 정도로 매우 나빴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기회를 주고 경험을 쌓게 해줬다. (계속 져도) “괜찮다, 괜찮다”고 말해줬다. (팀 적응 문제와 개인적인 부진이 겹쳐) 좀 많이 무너졌을 때가 있었는데 정말 힘을 많이 실어줬다. (주장이라 팀 성적 때문에) 매우 힘들었을 텐데 그런 내색 하나 없이 팀을 위해 많이 노력해왔다.
- 눈웃음이 정말 상큼하다. '미소쟁이'라는 별명을 짓고 싶은데.
▲ 초등학교 시절엔 웃으면 눈이 사라지는 게 콤플렉스여서 오히려 스스로는 안 좋게 생각했다. 부모님 등 어른들은 “눈웃음이 예쁘다. 매력이고 장점이다. 숨길 필요 없다. 시간이 지나면 말뜻을 알게 될 것”이라고 얘기해줬는데 그때가 지금이지 않을까.
(TS샴푸·푸라닭 남자 동료들인) 삼촌들도 “현지는 (집중해서) 당구 칠 때와 웃을 때가 180도 다르다”고 말해주는데 (그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눈웃음이 예쁘다는 말은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다.
내가 생각하는 매력은 좀 더 넓은 개념의 ‘밝은 성격’이다. 스스로에게는 정말 엄격하지만 남한테는 긍정적이다. 활발하고 항상 싱글벙글해서 그런지 “현지는 참 행복해 보인다”는 얘기를 듣는다. 타인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이 장점이지 않을까.
- 팀리그에서 파이팅이 돋보인다.
▲ 나도 사람이니까 중간에 텐션이 떨어지거나 힘들 때가 분명히 있다. 내 경기도 하면서 (동료들을) 응원하고 등등 이래저래 많이 하니까. 개인전보다 체력 소모는 훨씬 크다. 그럴 땐 ‘단체전이니까 조금 더 힘내자. 내가 지치면 팀 분위기가 처진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서로 “파이팅! 파이팅!”하면 잘하고 아니면 잘못하고. (텐션에 따라 결과가 다른) 경험을 1~2번 해보니까 내가 지치면 안 될 것 같고. 막내이자 분위기 메이커라는 책임이나 부담도 가끔 느낀다.
- 경기가 안 풀리면 표정이 굳어지는 게 보인다. 멘탈을 관리하는 방법이 있다면?
▲ ‘쿠크다스’라는 별명까지 있을 정도로 유리 멘탈이다. 정말 약했다. 잘 치다가도 뭔가 하나 때문에 무너졌다. 나한테 화도 많이 냈다. 한 큐를 못 친 거로 끝내야 하는데 ‘나 왜 이랬지’ 하면서 (부정적인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 몇 이닝을 계속 끌고 가고.
그래서 자신을 돌아보든, 주변의 평가든 기복이 좀 심하다. 한번 치고 나가면 진짜 못 말릴 정도로 치고 나가는 게 장점이라면 단점은 반대로 한번 말리면… 이걸 고치려다가 자책을 너무 많이 했다.
그러다 “당구는 자신감, 당당함이 중요한데 자학은 정말 좋지 않다. 자책하다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충고를 들었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경기를 위해 들어가기 전이나 당구를 치기 전에 거울을 보면서 ‘할 수 있다. 난 용현지다’는 세뇌를 많이 시킨다.
좀 잘 안되면 (물론 겉으로 보이는) 표정은 굳어져도 속으로 ‘나 용현지야. 할 수 있어. 괜찮아. 까짓거 한번 해보자. 못해도 되니까 후회만 하지 말자’ 이런 긍정적인 생각과 혼잣말을 계속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플레이가) 다시 살아나 역전승을 거둘 때가 많아졌다. 팀리그에서도 (이)미래 언니와 여자복식, (임)성균 오빠와 혼합복식이 그랬다. 계속 ‘괜찮아, 현지야 해봐, 할 수 있잖아, 할 수 있는 거 아냐?’ 이렇게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한 덕분이었다.
- 당구선수로서 멘토가 있다면?
▲ (공개 연애 중인) 조명우가 (3살 차이로) 나이는 비슷하지만, 당구에서는 (주니어세계선수권 3회 우승 등) 대선배다. 기술적으로도 많이 배우지만, 경기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등 멘탈이나 마인드에 대한 부분을 정말 많이 얘기해준다. 혼도 많이 났다. 직전 질문에서 답변한 (자책하지 말고 스스로와 자신감을 불어넣는 대화를 많이 하라는) 방식도 조명우가 알려준 방법이다.
(이)미래 언니는 TS샴푸·푸라닭 선배로서 정신적인 지주 같은 느낌이다. (2시즌째 같은 팀이다 보니) 나에 대해 다 꿰뚫었는지 “너 불안해 보여” “지금 (페이스가) 조금 빨라”, 아무 말 안 하고 표정만 굳어져도 (바로 알아채서) “현지 왜 그래? 화났어? 괜찮아” 이런 식으로 팀리그 경기 도중 멘탈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나를 이끌어준다. 경기 중간에도 서로 얘기를 정말 많이 한다.
- 친한 당구선수는?
▲ (올해 9월 세계여자선수권 준우승을 차지한) 한지은이다. 어릴 때부터 같이 당구를 쳤고 제가 PBA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몇 년 동안 함께 연습했다. (이)미래 언니하고는 지난 시즌부터 팀리그를 같이 하면서 더 친해졌다.
- 이번 시즌 팀리그에서 복식경기에만 출전하고 있다. 아쉽지 않은지.
▲ 선수로서는 당연히 단식도 뛰어보고 싶지만, (원래 성격적으로) 현실에 수긍하는 편이다. (이)미래 언니가 더 잘 치고 성적이든 뭐든 나보다 위에 있는 건 맞다. 팀을 위해서라면 받아들이겠다.
지난 시즌에는 출전을 못 하는 날이면 ‘김종원 리더가 기회를 줄 때 잘하자’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지금은 ‘복식을 열심히 하다 보면 나도 (단식) 출전할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한다. 부정적이고 아쉬운 생각은 잘 안 하려고 한다. 일단 (미래) 언니가 정말 잘해요.
- 이번 시즌 복식으로만 팀리그 전반기 여자 전체 최다승(이미래와 공동 1위)이다. 복식에 특별히 강한 이유가 있는가.
▲ 절대 서로를 의심하면 안 된다. 의심하는 순간 끝난다. (혼합) 복식은 호흡을 (팀 연습 때) 맞춰보고 잘 맞는 사람이랑 나간다. 근데 내가 못 쳐도 (남자 선배들이) 그냥 “지금 잘 안되네”가 끝이다.
“너 이거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삼촌 이거 못 칠 것 같은데”라는 의심이 아니라 “칠 수 있다”고 서로 믿어주고, 잘 안되면 “다음 거 잘 치자” “빨리 잊어버려” 이런 식으로 서로 괜찮다고 긍정적으로 말해주고.
특히 이거는 (김)종원 삼촌이 잘한다. 정말 믿음직하고 듬직하다. (혼합복식 경기 도중) 35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공을 가르쳐줄 때 정말 귀에 쏙쏙 들어온다. “너 힘 빠진다” “지금 뭔가 이상하다” 이렇게 내 문제점을 알고 말해주면 딱 된다.
서로 믿어주고 의심하는 것 없이 믿다 보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보다는) ‘삼촌이니까, 현지니까 할 수 있잖아’ 이런 식이 되어서 좋은 결과가 오지 않았을까. (복식 도중 플레이에 대해) 서로 미안하다, 죄송하다 이런 거를 안 하려고 한다.
TS샴푸·푸라닭 히어로즈 선수단이 2022-23 PBA 팀리그 전반기 경기 승리 후 시그니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용현지(앞줄 오른쪽)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만든 세리머니라고 밝혔다. 사진=프로당구협회 제공
- TS샴푸·푸라닭 승리 세리머니가 앙증맞다는 평가다. 특별한 의미가 담긴 건지?▲ 팀원끼리 협력하고, 같이 뭔가를 해야 더 돈독해지고 화합이 잘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 세리머니를 구상할 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봤다. (주인공이 절친 동그라미와 하는 독특한 인사법이) 너무 귀엽더라.
처음에는 친구끼리 같이하다가 ‘잠깐, 이거 뭐야. 마지막 제스처가 TS 세리머니잖아’고 깨닫게 됐다. 티타임 때 “저희 해볼까요?”라고 말을 꺼내니 “그거 괜찮다”는 반응이 나왔다. “마지막에 이거 딱 하면 깔끔하겠다. 그 타석에서 이긴 사람이 신호를 주면 마지막에 다 같이 TS 세리머니” 이렇게 구체화했다.
이런 거를 팀원들이 다 좋다, 괜찮다면서 따라 해주고 연습해 보자고 하고.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세리머니할지도 다 연습한다. 누구 하나 하기 싫다거나 부끄러워하거나 민망해하지 않고 다 따라와 줬다.
물론 세리머니를 한다고 무조건 이기진 않는다. 그런데 팀이 더 끈끈해지고 친해지다 보니 전반기 2, 3라운드에 더 잘한 성적과 함께 점점 빛을 발했다.
세리머니도 처음에는 박자도 안 맞았고. 연습한다지만 몇 시간씩 하는 것은 아니고 몇 번 맞춰보는 정도다. 해볼 때 틀리면 팀원끼리 깔깔 웃으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삼촌 그거 아니에요” 이러면서 더 친해지고. 서로 좀 더 허물없는 사이가 되면서 팀 분위기가 좋아지고. 친구, 삼촌, 가족처럼 지내다 보니까 TS샴푸·푸라닭이 공동 1위이자 준우승으로 전반기를 마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 어떤 당구선수가 되고 싶은지. 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꿈은?
▲ 당구를 시작하면서 첫 목표는 세계선수권 출전이었다. 물론 정말 못 쳤지만 (2019년 대회 참가를 통해) 꿈은 이룬 것 같다.
PBA로 넘어오면서 제일 크게 느끼고 있는, 그리고 잡게 된 목표는 성적보다는 일단 좀 즐기자. 경기를 즐기고,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자. 이게 무슨 말이냐면 스스로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경기가 무섭고 두려워진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않고 경기를 즐기다 보면 성적을 알아서 좋게 온다. 져도 되니까 후회만 남기지 말자. 이런 마인드와 목표를 세웠다. (정신·육체·실력 모두 준비된 상태로) 즐긴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
솔직히 모두에게 목표는 우승이고 1위다. 나도 언젠간 할 것이다. 근데 이런 당연하고 뻔한 것보다는 당구를 즐기고 재밌어하는 선수가 제 목표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순간부터는 경기가 기다려질 것이다. ‘언제 또 하지? 나 보여주고 싶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도록 하겠다.
5년? (좀 더 빠르면) 3년이면 되지 않을까? 충분히 할 수 있다. 거만보다는 자신감이다. 자책을 많이 하고 채찍질하는 만큼 당근도 많이 준다. ‘현지, 너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식으로? 자신을 믿어야 노력한 만큼 보여줄 수 있고, 그래야 당구를 즐기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물론 지금보다 열심히 할 필요는 있다. 조금 더 열심히, 좀 더 세세하게 연습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3년에서 5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목표를 잡았다.
- 가족관계는? 당구는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는지.
▲ 언니가 1명 있다. 2013년, 초등학교 6학년 때 맛있는 것을 사준다는 아버지를 따라 당구장에 놀러 간 것이 시작이었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다. 육상도 했었고. 그래서 ‘방학 동안 한 번 해볼게’가 된 것이다. 처음엔 함께였던 언니는 하루 만에 이탈했다.
조그만 애가 밀어 치고 끌어 치고 하는 것에 신기해하면서 주변에서 “천재다” “잘한다” 해주고, 맛있는 것도 갈 때마다 먹으니 재미를 느꼈다. 그렇게 1년 정도 아버지를 따라다니다가 “선수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었다. 지방체육회 동호인 강사 출신 당구장 사장님 의견이었다.
(선수 준비를 위해) 당구 아카데미를 가니까 맛있는 건 하나도 없고 똑같은 걸 몇백 번 치라고 하니까 안 한다고 바로 그만두고 나왔다. 갑자기 무거운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한 거다.
그러다 아버지가 개인 레슨을 알아봐 다시 시작한 것이 2015년,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시흥당구연맹을 소개받고, ‘경기를 나가는 것만으로 경험인 시기’라고 권유받아 (당시 최연소로) 선수 등록을 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치게 됐다.
아버지가 당구선수인 딸을 자랑스러워한다. 많이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당구 치는 딸을 보면 기쁘고 좋아했다. 내가 당구를 치면서 아버지가 다시 좋아지기도 했다. 내가 당구선수를 해야 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큰 이유다.
완전 딸바보다. 온 동네에 널리 널리 소문을 내고. “우리 딸 (경기) 좀 보세요”라고.
용현지는 MK스포츠와 인터뷰에서 하루 8~10시간을 연습에 투자해야 하는 프로당구선수로서 일상을 얘기했다. 사진=강대호 기자
- 팀리그 전반기가 끝나고 어떻게 지냈는지.▲ 이번 시즌 2·3라운드가 9월 16일부터 10월 2일까지 (9월 23~25일만 빼고) 계속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쉬고 싶었는데 (이)미래 언니와 베트남 초청을 받았다. 10월 3일 집에 가서 짐을 풀고 다시 짐을 싸서 베트남에 다녀왔다. (두 선수는 베트남 팬들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한국에 와서 이틀 정도는 당구 생각 없이 편하게, 평범하게 쉬었다. 사랑하는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고, 친구랑 놀고. 그 후에는 10월 25일 시작하는 개인전(LPBA투어 4차전)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
- 평소 하루는 어떻게 보내는지? 당구 말고 취미가 있다면. 좋아하는 음식은?
▲ 경기가 없는 날에도 하루 최소 8시간, 기본적으로 10시간은 당구장에서 보낸다.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진 않다. 머리를 하고 싶다든지 이런 개인적인 뭔가를 할 땐 평소보다 빨리 나오거나, 아니면 연습하러 늦게 가는 식이다. 연습을 생략하는 날은 거의 없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 왜소한 편이고 (신체적으로) 약한 것이 당구선수로서 집중력 저하, 나아가 경기력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 많다. 그래서 기초대사량을 늘리고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헬스와 필라테스를 3년 동안 꾸준히 했다. 당구 연습의 일부라고 생각했으니까.
코로나19가 심했을 때는 홈트레이닝을 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런데 (PBA 진출 후) 너무 바빠지고 (개인전뿐 아니라) 팀리그도 있어서 운동을 쉰 게 6개월이 되니까 (체력적으로) 다시 좀 힘들어졌다. 운동하면서 살도 찌우고 근육으로 체중도 늘렸는데 안 하니까 또 빠진다. 그래서 어떻게든 다시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당구선수들은 체력에 대한 고민을 들으면 “살을 찌우면 된다”고 말해주는데 1㎏ 늘리는 것도 정말 힘들어서. 누군가에게는 내 이런 체질이 행복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어서 주로 (헬스장에서 일하는) 운동 선생님하고 상담한다. 단백질을 많이 먹으라고 한다.
그래서 고기를 계속 먹고. 요즘 좋아하는 음식도 (단백질이 많은) 닭갈비, 샤부샤부, 소 곱창이다. 원래도 피자, 파스타 같은 양식은 안 좋아하고 한식을 정말 좋아한다. 팀 식사 메뉴 고를 때 내가 파스타를 안 먹는다고 하면 (또래 여자들과 다른 식성에) 신기해한다.
당구를 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노래로 푼다. 노래를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부르고 싶어서 노래 연습실을 다니며 배우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키우는 강아지하고는 같이 있기만 해도 좋다.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도 강아지를 보고 나면) ‘내가 왜 화났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승하면 상금으로 뭘 하고 싶냐고 묻는 날에 “먹고 싶은 거 다 사주고 건강검진 시켜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나 명언 같은 게 있는지.
▲ 내가 전에 다니던 당구장에 (1988 서울올림픽 남자유도 –60㎏ 금메달리스트) 김재엽 동서울대학교 경호스포츠과 교수가 손님으로 왔을 때 스포츠선수로서 마음가짐에 대해 말해줬다.
“초심, 열심, 뒷심 3가지 마음(心) 중에서 초심이 가장 중요하다. ‘초심’을 잊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면 ‘뒷심’을 발휘할 거고 그러다 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김재엽 교수의 충고가 계속 기억에 남는다.
전보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예전보다는 훨씬 더. (이런 인기를) 고마워하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많이 거만할 때가 있나 이러면서 자아 성찰을 한다. 내가 어떻게 당구를 시작했는지 초심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까지 온 길만큼이나)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많다. ‘후회를 남기지 않고 앞만 보고 나가다 보면 좋은 결과가 오겠지, 열심히 하다 보면 성적은 당연히 따라오겠지’라는 생각에 절대 욕심내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자고 다짐을 많이 한다.
[강대호 MK스포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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