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새 얼굴’이 끊임없이 등장한 넥센 히어로즈. ‘올해의 발견’ 투수편이 신재영이라고 한다면, 타자편은 박정음이 아닐까. 늦깎이 신인이다. 2012년 입단한 무명선수는 오랜 기다림 끝에 1군선수가 됐다.
인터뷰를 시작한지 얼마 안 돼 그를 알아본 한 야구팬이 사인을 요청했다. 사진 촬영도 함께. 야구팬은 “제 아들이 박정음 선수 팬입니다”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다. 인기도도 동반 상승.
박정음이 사랑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근성의 사나이’이기 때문이다. 늘 열심히 하는 게 눈에 쏙 들어온다. 게다가 소금 같은 존재감을 보이니 어찌 사랑 받지 않을 수 있을까.
▲험난한 과거-프로야구선수 되기
박정음은 스스로 ‘노력파’라고 표현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야구 재능을 갖추지 않았다고. 발이 좀 빠른 편이지만, 이마저도 프로 세계에서 ‘1등’은 아니다. 프로에 입문하니 자신보다 발 빠른 선수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야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강철 수석코치는 “참 성실한 선수다. 코칭스태프의 주문대로 노력한다. 그리고 배움의 습득도 빠른 편이다”라고 말했다.
박정음이 27세의 늦은 나이에 1군선수가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참 많았다. 그러나 그는 긍정적인 사고와 성실함으로 난관을 이겨갔다. “출신 학교가 훈련을 많이 시키는 걸로 유명했다. 딱히 특출한 선수가 있지도 않으니 더욱 열심히 해야 했다. 그게 몸에 배였다. 개인적으로 그 성실함과 노력파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묵묵히 땀을 흘리다가 기회를 잡았다 지금은 프로야구선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친 않았다. “어려서부터 뛰는 건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육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1년 뒤 인근 화산초등학교에서 야구부원이 부족해 추천을 받아 전학을 갔다.”
그렇게 야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프로필에 졸업한 학교는 금평초등학교다. “또 전학이었다. 어려서부터 전학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1번씩 야구부가 해체됐다. 야구를 그만둘 뻔도 했다. 어려서 함께 야구를 배웠지만 지금은 그만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날 부러워하는데 난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서 만나도 야구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다.”
친구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다는 박정음은 ‘평범한’ 야구선수였다. 빠른 발 외에 딱히 내세울 게 없었다고. 그런 그에게 고교 졸업 후 프로행은 언감생심. 대학 진학 후 경쟁력을 키워 프로의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자신의 현주소를 누구보다 냉철하게 깨달았다.
“당장 고교 졸업 후 프로에 도전할 실력이 아니었다. 발만 좀 빨랐지, 야구를 잘 하지 못했다. 힘도 없었다. 전주고 시절 성균관대와 연습경기를 많이 가졌는데, 그때 나를 좋게 봤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에서 정말 운동을 많이 했다. 그 효과일까. 대학 3학년 이후 실력이 부쩍 향상됐다. 아마추어 커리어 하이가 대학 졸업 때였다.”
박정음은 2012 신인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40순위로 넥센에 지명됐다. 당시 NC 다이노스가 신인 특별지명을 행사했으니 높은 순번은 아니다. 그래도 박정음은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내심 기대는 컸다. 사실 6라운드 이하로 예상했기 때문에 높은 순번이다. 예상보다 빨리 호명돼 놀랐다.”
계약금 6000만원을 받고 프로의 문을 열었다. 마침내 프로야구선수가 됐다. 미국 전지훈련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았다. 그의 자리는 없었다. 4년간 퓨처스리그(2군)에서 활동해야 했다.
군 전역 이후에는 발등, 손바닥 부상으로 쉬어야 했다. 목표했던 2015년 확대 엔트리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또래나 후배들은 이미 1군에서 뛰었다. 초조함도 없지 않았다. 1군에는 언제 한 번 가볼까 싶었다. 그리고 2016년 마침내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프로 와서 좀 힘들었다. 아프기도 하고. 2군 생활만 4년이었다. 오전 운동과 낮 경기로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TV로 1군 경기를 볼 때 기분이 참 그랬다. 하지만 내 야구인생은 잘 풀렸다. 내가 가고 싶은 대학으로 진학했고 프로의 지명도 받았다. 입단 1년 만에 군 복무도 마쳤다. 나름 잘 풀렸으니 행운아다.”
넥센은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탈바꿈을 해야 했다. 주축 선수의 이탈에다 홈구장도 바뀌었다. 그 가운데 박정음은 2016년 넥센 야구의 구상에 들어있었다. 염경엽 감독은 지난해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서 인상적이었던 박정음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천명했다. 이 코치는 “원래 가질 게 많은 선수였는데 공·수·주 등 기량 발전이 눈에 띄었다. 경기를 치를수록 점점 좋아졌다”라고 했다.
타격이 좋아졌다. 심재학 타격코치는 “인플레이 타구가 많지 않으니 (박)정음이가 찾아와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더라. 일주일간 지켜보니 타격 시 어깨가 좀 빨리 돌더라. 타구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를 바로 잡은 뒤 인플레이 타구가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수비도 좋아졌다. 강병식 타격코치는 “입단했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향상됐다. 수비는 발만 빠르다고 되는 게 아니다. 타구에 외야수가 다 같이 움직여야 한다. 또한, 공격적인 수비를 하고 공 1개마다 간절해야 한다. 포구, 송구, 백업 등을 세세하게 가르쳤다. 타구에 대한 집중력이 좋아졌다”라고 전했다.
그 뒤는 박정음의 몫이었다. 온 기회를 잡아야 했다. 그의 행동은 변함없다. 노력과 연습으로 할 뿐이다. 코칭스태프가 자제를 시킬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시범경기에서 합의 판정 끝에 홈런도 치고 여러 차례 아웃된 끝에 도루도 했다. 조금씩 눈도장을 찍었다. 개막 엔트리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내심 불안했다고.
“개막 엔트리에는 야수를 좀 더 포함시키지 않은가. 선발투수를 순차적으로 등록하는데, 야수가 빠질 수밖에. 때문에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의식이 강했다. 프로 데뷔전이 아직도 생생하다. 1-2로 뒤진 8회 대주자로 나갔는데 도루자로 아웃됐다. 너무 긴장해 다리가 움직이지 않더라.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데 ‘아, 내가 2군에 내려가겠구나’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박정음의 2군행은 없었다. 시즌 개막 이후 박정음은 한 번도 1군 엔트리서 제외된 적이 없다. 걱정이 많았으나 그는 첫 1군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부상 등으로 2군에서도 풀 시즌을 치른 적이 없다. 1군은 경기수도 많은 데다 중요도도 크니까. 그래서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1군 생활을 하니 정말 모든 게 좋다. 2군과 달리 생활의 여유도 생겼다. 외야 수비 범위가 넓은 고척돔도 내게 잘 맞다. 여기에선 열심히 뛰어다닐 수 있다.”
물론, 냉정히 말해 주전이 아니다. 24일 현재 72경기를 뛰었다.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날이 많아졌지만, 교체 출전도 적지 않다. 스스로도 백업 선수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열성적인 플레이는 임팩트가 강했다. 2번의 끝내기 안타로 팀에 승리를 안겼고, 멋진 다이빙 캐치로 팀을 구하기도 했다.
“(임)병욱이가 주전인데 아파서 백업인 내게 기회가 좀 더 주어진 것 같다. 어떤 선수도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같이 하면 좋은 것 같다. 주전이 부족한 부분을 내가 메울 수 있다면 팀은 더욱 원활하게 돌아가니까. 그래도 경기를 많이 뛰어 정말 즐겁다. 집중도 더 많이 한다. 그리고 잘 하고 싶어 안 챙기던 아침밥도 먹고 잠도 푹 잔다.”
아직은 부족하다. 더 커야 한다. 그리고 박정음은 자신을 ‘근성의 사나이’로 칭찬하는 것에 감사해 하면서도 쑥스러워했다.
“열심히 치고 뛰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건 1군에 올라가는 단계다. 1군에선 열심히는 물론 잘 해야 한다. 1군 첫 시즌이지만 어린 나이가 아니다. 젊은 팀 넥센에서 중고참이다. 어버이날(고척 KIA 타이거즈전)에 첫 끝내기 안타를 때렸던 게 가장 기억에도 남지만, 아직 내 성적에 만족할 수 없다.”
박정음은 현재 딱 평균적인 선수라고 했다. 스스로 너무 무난해서 탈이라고 했다. 그게 자신만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서. 그러나 그는 조금씩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늦었고 좀 더디지만, 그가 성장 중이라는 건 분명하다.
“매 타석이 내겐 소중하다. 그래서 늘 좋은 타격을 하고 싶다. 물론, 더 많이 출루하는 게 우선이다. 20도루와 출루율 4할은 이루고 싶은 시즌 목표다. 지금은 백업으로 팀에 도움이 되고 싶지만, 언젠가는 주전을 꿰차서 팀의 기둥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인터뷰를 시작한지 얼마 안 돼 그를 알아본 한 야구팬이 사인을 요청했다. 사진 촬영도 함께. 야구팬은 “제 아들이 박정음 선수 팬입니다”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다. 인기도도 동반 상승.
박정음이 사랑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근성의 사나이’이기 때문이다. 늘 열심히 하는 게 눈에 쏙 들어온다. 게다가 소금 같은 존재감을 보이니 어찌 사랑 받지 않을 수 있을까.
▲험난한 과거-프로야구선수 되기
박정음은 스스로 ‘노력파’라고 표현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야구 재능을 갖추지 않았다고. 발이 좀 빠른 편이지만, 이마저도 프로 세계에서 ‘1등’은 아니다. 프로에 입문하니 자신보다 발 빠른 선수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야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강철 수석코치는 “참 성실한 선수다. 코칭스태프의 주문대로 노력한다. 그리고 배움의 습득도 빠른 편이다”라고 말했다.
박정음이 27세의 늦은 나이에 1군선수가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참 많았다. 그러나 그는 긍정적인 사고와 성실함으로 난관을 이겨갔다. “출신 학교가 훈련을 많이 시키는 걸로 유명했다. 딱히 특출한 선수가 있지도 않으니 더욱 열심히 해야 했다. 그게 몸에 배였다. 개인적으로 그 성실함과 노력파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묵묵히 땀을 흘리다가 기회를 잡았다 지금은 프로야구선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친 않았다. “어려서부터 뛰는 건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육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1년 뒤 인근 화산초등학교에서 야구부원이 부족해 추천을 받아 전학을 갔다.”
그렇게 야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프로필에 졸업한 학교는 금평초등학교다. “또 전학이었다. 어려서부터 전학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1번씩 야구부가 해체됐다. 야구를 그만둘 뻔도 했다. 어려서 함께 야구를 배웠지만 지금은 그만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날 부러워하는데 난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서 만나도 야구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다.”
친구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다는 박정음은 ‘평범한’ 야구선수였다. 빠른 발 외에 딱히 내세울 게 없었다고. 그런 그에게 고교 졸업 후 프로행은 언감생심. 대학 진학 후 경쟁력을 키워 프로의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자신의 현주소를 누구보다 냉철하게 깨달았다.
“당장 고교 졸업 후 프로에 도전할 실력이 아니었다. 발만 좀 빨랐지, 야구를 잘 하지 못했다. 힘도 없었다. 전주고 시절 성균관대와 연습경기를 많이 가졌는데, 그때 나를 좋게 봤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에서 정말 운동을 많이 했다. 그 효과일까. 대학 3학년 이후 실력이 부쩍 향상됐다. 아마추어 커리어 하이가 대학 졸업 때였다.”
박정음은 2012 신인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40순위로 넥센에 지명됐다. 당시 NC 다이노스가 신인 특별지명을 행사했으니 높은 순번은 아니다. 그래도 박정음은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내심 기대는 컸다. 사실 6라운드 이하로 예상했기 때문에 높은 순번이다. 예상보다 빨리 호명돼 놀랐다.”
계약금 6000만원을 받고 프로의 문을 열었다. 마침내 프로야구선수가 됐다. 미국 전지훈련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았다. 그의 자리는 없었다. 4년간 퓨처스리그(2군)에서 활동해야 했다.
군 전역 이후에는 발등, 손바닥 부상으로 쉬어야 했다. 목표했던 2015년 확대 엔트리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또래나 후배들은 이미 1군에서 뛰었다. 초조함도 없지 않았다. 1군에는 언제 한 번 가볼까 싶었다. 그리고 2016년 마침내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프로 와서 좀 힘들었다. 아프기도 하고. 2군 생활만 4년이었다. 오전 운동과 낮 경기로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TV로 1군 경기를 볼 때 기분이 참 그랬다. 하지만 내 야구인생은 잘 풀렸다. 내가 가고 싶은 대학으로 진학했고 프로의 지명도 받았다. 입단 1년 만에 군 복무도 마쳤다. 나름 잘 풀렸으니 행운아다.”
박정음은 올해 27세의 나이에 1군 무대를 첫 경험했다. 그의 걱정과 달리 그는 1군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주전은 아니지만 팀에 필요한 존재가 됐다. 사진(고척)=김재현 기자
▲꿈꾸는 미래-넥센 주축선수 되기 넥센은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탈바꿈을 해야 했다. 주축 선수의 이탈에다 홈구장도 바뀌었다. 그 가운데 박정음은 2016년 넥센 야구의 구상에 들어있었다. 염경엽 감독은 지난해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서 인상적이었던 박정음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천명했다. 이 코치는 “원래 가질 게 많은 선수였는데 공·수·주 등 기량 발전이 눈에 띄었다. 경기를 치를수록 점점 좋아졌다”라고 했다.
타격이 좋아졌다. 심재학 타격코치는 “인플레이 타구가 많지 않으니 (박)정음이가 찾아와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더라. 일주일간 지켜보니 타격 시 어깨가 좀 빨리 돌더라. 타구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를 바로 잡은 뒤 인플레이 타구가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수비도 좋아졌다. 강병식 타격코치는 “입단했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향상됐다. 수비는 발만 빠르다고 되는 게 아니다. 타구에 외야수가 다 같이 움직여야 한다. 또한, 공격적인 수비를 하고 공 1개마다 간절해야 한다. 포구, 송구, 백업 등을 세세하게 가르쳤다. 타구에 대한 집중력이 좋아졌다”라고 전했다.
그 뒤는 박정음의 몫이었다. 온 기회를 잡아야 했다. 그의 행동은 변함없다. 노력과 연습으로 할 뿐이다. 코칭스태프가 자제를 시킬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시범경기에서 합의 판정 끝에 홈런도 치고 여러 차례 아웃된 끝에 도루도 했다. 조금씩 눈도장을 찍었다. 개막 엔트리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내심 불안했다고.
“개막 엔트리에는 야수를 좀 더 포함시키지 않은가. 선발투수를 순차적으로 등록하는데, 야수가 빠질 수밖에. 때문에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의식이 강했다. 프로 데뷔전이 아직도 생생하다. 1-2로 뒤진 8회 대주자로 나갔는데 도루자로 아웃됐다. 너무 긴장해 다리가 움직이지 않더라.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데 ‘아, 내가 2군에 내려가겠구나’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박정음의 2군행은 없었다. 시즌 개막 이후 박정음은 한 번도 1군 엔트리서 제외된 적이 없다. 걱정이 많았으나 그는 첫 1군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부상 등으로 2군에서도 풀 시즌을 치른 적이 없다. 1군은 경기수도 많은 데다 중요도도 크니까. 그래서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1군 생활을 하니 정말 모든 게 좋다. 2군과 달리 생활의 여유도 생겼다. 외야 수비 범위가 넓은 고척돔도 내게 잘 맞다. 여기에선 열심히 뛰어다닐 수 있다.”
물론, 냉정히 말해 주전이 아니다. 24일 현재 72경기를 뛰었다.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날이 많아졌지만, 교체 출전도 적지 않다. 스스로도 백업 선수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열성적인 플레이는 임팩트가 강했다. 2번의 끝내기 안타로 팀에 승리를 안겼고, 멋진 다이빙 캐치로 팀을 구하기도 했다.
“(임)병욱이가 주전인데 아파서 백업인 내게 기회가 좀 더 주어진 것 같다. 어떤 선수도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같이 하면 좋은 것 같다. 주전이 부족한 부분을 내가 메울 수 있다면 팀은 더욱 원활하게 돌아가니까. 그래도 경기를 많이 뛰어 정말 즐겁다. 집중도 더 많이 한다. 그리고 잘 하고 싶어 안 챙기던 아침밥도 먹고 잠도 푹 잔다.”
아직은 부족하다. 더 커야 한다. 그리고 박정음은 자신을 ‘근성의 사나이’로 칭찬하는 것에 감사해 하면서도 쑥스러워했다.
“열심히 치고 뛰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건 1군에 올라가는 단계다. 1군에선 열심히는 물론 잘 해야 한다. 1군 첫 시즌이지만 어린 나이가 아니다. 젊은 팀 넥센에서 중고참이다. 어버이날(고척 KIA 타이거즈전)에 첫 끝내기 안타를 때렸던 게 가장 기억에도 남지만, 아직 내 성적에 만족할 수 없다.”
박정음은 현재 딱 평균적인 선수라고 했다. 스스로 너무 무난해서 탈이라고 했다. 그게 자신만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서. 그러나 그는 조금씩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늦었고 좀 더디지만, 그가 성장 중이라는 건 분명하다.
“매 타석이 내겐 소중하다. 그래서 늘 좋은 타격을 하고 싶다. 물론, 더 많이 출루하는 게 우선이다. 20도루와 출루율 4할은 이루고 싶은 시즌 목표다. 지금은 백업으로 팀에 도움이 되고 싶지만, 언젠가는 주전을 꿰차서 팀의 기둥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박정음은 올해 27세의 나이에 1군 무대를 첫 경험했다. 그의 걱정과 달리 그는 1군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주전은 아니지만 팀에 필요한 존재가 됐다. 사진(고척)=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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