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2월, 정오가 조금 안 된 시간 경기도 파주시의 보현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높지 않은 곳에서 불이 났고 진화대원들이 신속하게 출동해 진화 작업에 나선 덕분에 큰 피해 없이 불을 끌 수 있었습니다.
불이 사그라든 현장에선 쓰레기 풍선의 잔해가 발견됐습니다. 북한은 8월 10일부터 11일까지 남쪽을 향해 쓰레기 풍선을 날렸습니다. 당시 경기도 곳곳에서 풍선이 보인다는 신고가 접수됐는데, 북한이 보낸 풍선이 산에 떨어져 불을 붙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발열 타이머가 불 붙였나
발열 타이머가 달린 쓰레기 풍선
쓰레기 풍선은 커다란 풍선과 쓰레기가 담긴 봉투 그리고 이 둘을 이어주는 연결부로 이뤄져 있습니다. 풍선에는 무거운 쓰레기를 달고 하늘로 떠오르기 위해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이나 수소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중에서 헬륨보다 저렴한 수소가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쓰레기봉투엔 보통 종이와 옷 등 생활 쓰레기가 들어 있습니다.
산불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곳은 연결부입니다. 이곳에는 발열 타이머가 달려 있습니다. 이 발열 타이머에는 열선이 있는데, 이 열선은 타이머에 맞춘 시간이 되면 뜨거워집니다. 풍선과 쓰레기봉투가 연결된 부위를 태워서 쓰레기가 땅으로 떨어지게 하는 용도로 추측됩니다.
이 발열 타이머가 쓰레기 풍선 화재의 유력한 원인입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열선을 작동시키는 과정에서 불완전 분리 상태에서 낙하하면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쓰레기 풍선과 함께 발열 타이머가 땅으로 떨어지고, 뜨거운 열선이 풍선 속 쓰레기나 추락 지점 주변에 있는 가연물에 불을 붙여 화재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김포시 공장 화재 모습 (경기도소방재난본부)
화력도 가볍게 볼 수준이 아닙니다. 지난 9월 5일 김포시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 풍선이 떨어져 건물 일부분이 불에 타 소실됐습니다. 8일에도 파주시의 공장 지붕을 불에 태워 커다란 재산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위협은 지금부터
2023년 월별 산불 건수 (KOSIS)
북한이 쓰레기 풍선을 처음으로 띄워 보낸 건 5월 28일, 여름이 막 시작될 때였습니다. 그리고 여름을 거쳐 9월 중순까지 풍선이 날아왔습니다. 이 시기에는 비가 자주 내리고 흙과 낙엽이 수분을 잔뜩 머금고 있어 불씨가 떨어진다고 해도 불이 잘 붙지 않습니다. 간혹 붙는다고 해도 커다란 산불로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산불이 난 건수는 14건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건조해지는 가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공기 중 습도가 40% 아래로 떨어지면 낙엽의 수분 함량은 10% 정도로 낮아집니다. 수분 함유량이 15% 이하인 낙엽은 35%인 낙엽과 비교했을 때 발화율이 25배나 높습니다. 발열 타이머에서 나온 열기가 낙엽에 불을 붙이는 확률이 높아지는 겁니다.
바람의 방향도 변수입니다. 겨울에는 북서풍이 강해지기 때문에 북한이 날려 보내는 풍선이 더 멀리 날아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지금은 풍선 대부분이 수도권에 떨어지고 있지만,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강해지면 산지가 많은 강원도나 경상북도까지 날아갈 수 있습니다.
풍선 산불이 무서운 이유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쓰레기 풍선
산불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사람입니다. 10년간 산불 발생 원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입산자의 실화였습니다. 그 이외에도 농산부산물 소각, 쓰레기 소각, 담뱃불 실화 등 산불의 대부분이 사람이 만든 화재였습니다. 낙뢰나 태양열 등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산불을 낸다. 달리 말하면 지금까지 산불은 대부분 사람이 사는 생활 영역 주변에서 시작됐고,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골에서는 불이 잘 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가나 등산로 주변에서 불이 나면 주민과 등산객이 연기를 목격하기 쉽고 신고도 빨리 이뤄질 수 있습니다. 진화대원과 장비가 불이 크게 번지기 전에 화재 현장에 도착해 초기에 불을 잡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반면 하늘을 둥둥 날아다니다 떨어지는 쓰레기 풍선은 깊고 험한 산에 불을 붙일 수 있습니다. 산골짜기에서 곳에서 불이 나면 당연히 발견과 신고가 늦어지고, 불이 난 사실을 알아도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형 산불로 번질 위험이 큽니다.
산불은 경사가 급할수록 빨리 퍼집니다. 30° 정도의 급경사지에서는 평지보다 3~4배 빠르게 산불이 확산할 수 있는데, 만약 풍선이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경사지에 떨어진다면 ‘끄기 어려운 곳에서 난 불이 빨리 번지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쓰레기 풍선은 지금까지 22번에 걸쳐 5,500여 개가 날아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얼마 전에 떨어진 풍선이 마지막 풍선이 되면 좋겠지만, 앞으로 풍선이 몇 차례 더 날아올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습니다. 단 한 개의 풍선이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대비에 소홀해선 안 되겠습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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