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냐' 한마디에 살해한 동거남
"층간소음→경제적 곤궁→모욕당했다"
유족 "우발적 범행 판단 이해 안돼"
"층간소음→경제적 곤궁→모욕당했다"
유족 "우발적 범행 판단 이해 안돼"
"'잘못했어요' 그 소리를 기다렸다"
결혼을 약속한 동거남에게 흉기로 200회 가까이 찔려 살해당한 정혜주(사망 당시 24세)씨의 모친 차경미(54)씨는 이같이 말했습니다.
차 씨는 지난달 20일 가해자 류 모(28)씨의 살인사건 항소심 재판이 열리는 춘천지법을 찾았습니다.
차 씨는 혹시나 가해자가 사과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법정을 찾았지만,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혜주 씨는 지난해 7월 24일 낮 12시 47분쯤 강원 영월군 집에서 동거인인 류 씨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류 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이웃과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는 중 혜주 씨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고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6분 만에 류 씨는 혜주씨를 191회 찔렀으며, 범행 직후 자해하고 낮 12시 53분 112에 범행 사실을 알렸습니다.
피해자 정혜주씨(왼쪽부터)와 가해자 류모씨 / 사진=연합뉴스
류 씨가 경찰에 털어놓은 첫 범행 동기는 '층간소음 스트레스'였습니다. 1년 전부터 옆집 아이가 일으키는 소음으로 인해 신고와 고소가 오가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검찰 조사에서 "결혼을 앞두고 빚만 늘어나는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이던 중 문득 혜주 씨를 살해하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순간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에서 "피해자로부터 '정신지체냐'라는 말을 듣고 격분해 범행했다"고 진술을 바꿨습니다.
차 씨 "어떤 이유든 간에 191회나 찔러 죽일만한 이유가 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어 "100번 양보해서 모욕적인 말을 들어서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할지라도, 우발적이라는 게 한두 번 찌르는 게 우발적이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제1형 당뇨병(소아당뇨병)을 안고 태어난 혜주 씨는 주삿바늘을 달고 살다시피 할 정도로 몸이 불편했습니다.
학교 가는 걸 말리는 의사 선생님의 야단에도 혜주씨는 꿋꿋하게 학교와 병원에 오가며 졸업장을 품에 안았습니다.
세 자녀 중 맏딸이었던 혜주 씨는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마트에 가면 사탕 하나, 껌 하나만 들고 올 정도로 속이 깊었습니다.
정혜주씨 생전 모습 / 사진=연합뉴스
그런 혜주 씨가 지인 소개로 2022년 봄에 류 씨를 만났습니다. 그해 3월 추간판탈출증(디스크)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혜주 씨를 류 씨가 자주 병문안 오면서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두 사람은 2024년 3월 16일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공공임대주택에서 2022년 11월부터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혜주 씨는 류 씨 혼자 생활비를 감당하게 하는 것이 미안해 의료수급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만 두 탕을 뛰며 생활비를 보탰습니다.
애초에 예물이나 예단 따위는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2023년 9월 류 씨가 숙소를 제공하는 충남지역 회사로 직장을 옮기기로 했고, 10월엔 웨딩 촬영 계획을 잡는 등 결혼 준비를 두고 말다툼 또한 오가지도 않았습니다.
차 씨는 사위도 자식이라고 여기고 류 씨를 가족처럼 살갑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류 씨의 끔찍한 범행으로 인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후 지난 1월 류 씨는 춘천지법 영월지원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층간소음 문제와 경제적 곤궁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살해했다는 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이례적인 범행동기를 가질 만한 정신질환도 없었던 점을 근거로 피해자로부터 '정신지체냐'라는 말을 듣고 우발적으로 범행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범행 당시 일시적인 정신 마비로 인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는 류 씨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징역 25년을 구형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이 유족에게 지급한 유족구조금을 류 씨 측이 구상금으로 검찰에 지급한 것을 유리한 정상으로 삼아 징역 17년을 내렸습니다.
검찰과 피고인이 모두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이 사건은 오는 17일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차 씨는 "어차피 우리나라는 사형이 폐지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차 씨는 "17년을 받든, 20년을 받든, 30년을 받든, 우리 딸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17년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강혜원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ssugykk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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