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례준칙, 과소비 막으려 결혼·제사 등 진행방식 규정
'절사(차례)는 제주(祭主·제례의 의식 절차를 주관하는 사람)의 집에서 지낸다. 제주는 종손(맏손자)이 되며 제사를 주재한다.'(1969년 제정 '가정의례준칙' 중)
한참 전에 폐지돼 역사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법령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법령은 이름과 처벌 규정만 몇 차례 바뀌어 '건전가정의례준칙'이라는 이름으로 여성가족부 소관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아래 준칙으로 남아있습니다.
1969년 대통령 고시로 제정된 가정의례준칙 / 사진=연합뉴스
1969년 대통령 고시로 제정된 가정의례준칙 중 절사에 관한 규정 / 사진=연합뉴스
현 가정의례준칙 제5장 '제례' 부분을 보면 여전히 '차례는 매년 명절 아침에 맏손자의 가정에서 지낸다.'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오늘(28일)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설명을 보면 가정의례준칙이 처음 제정되던 1969년 당시에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만연한 과시소비적 의례 문화의 확산을 막고 건전한 가정의례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이에 권고적·훈시적 규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가정의례준칙을 대통령 고시로 최초로 제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준수율이 낮자 1973년 개정된 법률에서는 각종 의례에서 '부고장 등 인쇄물에 의한 개별 고지, 화환 등 장식물 진열, 답례품 증여, 경조기간 중 주류와 음식물 접대'를 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위반하면 5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이 금액은 1981년 200만 원으로 올랐습니다.
가구마다 생활 방식이 다양해지고 허례허식 철폐 필요성이 낮아지자 1999년 개정 법률에서는 가정의례 관련 법적 규제가 폐지됐고, 의례 절차에 대한 규정은 권고적·훈시적 법령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차례는 맏손자의 집에서 지낸다는 내용이 담겨 있고, 결혼식도 신랑이 먼저 입장한 뒤 신부가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참여와 대우를 받고 모든 영역에서 평등한 책임과 권리를 공유한다'는 양성평등기본법의 취지와 불협화음을 낸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재 가정의례준칙 / 사진=연합뉴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여성학 박사)은 "가정의례준칙에 처벌 규정이 없어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해도, 성차별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만큼 국가가 지향해야 할 법령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아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습니다.
유교 전통문화를 보존해온 성균관도 해당 준칙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은 "가정의례준칙이 처음 제정된 1969년과 달리 이제는 국가가 가정의례의 중심이 될 수 없다"며 "성균관은 유교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되,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바꾸자는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맏손자의 가정에서 차례를 지내야 한다'는 규정에 대해서도 "딸만 있는 가정이 얼마나 많느냐"고 반문하며 "마땅히 딸도 제사권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다진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azeen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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