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지난주 80대 아버지를 살해한 60대 남성의 이야기를 기사로 썼습니다. 패륜적 살인 같지만 사연이 있었죠. 아버지는 어릴적부터 가족들에게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고, 심지어는 자식들의 어머니인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아들은 30년 동안이나 부양하고 살다가 아버지의 폭언과 폭행에 못이겨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됐습니다.
관련기사 : [단독] '어머니 살해한 아버지' 30년 모시다 살해한 아들 징역 7년
(지난 1일 보도)
결국 존속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아들은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징역 7년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기사가 보도된 뒤 본 댓글 중에는 상당수가 형량이 과도한 게 아니냐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런 사건이야말로 집행유예를 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죠. 마침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한 건 1988년 일이긴 하지만 불과 징역 5년만 살고 나왔기 때문에 ‘아내 죽인 아버지보다 그런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을 더 중하게 처벌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반면 존속살해죄 최저형량이 징역 7년이기 때문에 집행유예는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재판부 입장에서는 최저형량을 줬기 때문에 사정을 최대한 봐준 것이라는 거죠. 이 지적은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틀렸습니다. 집행유예를 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행유예까지 가능했다
현행법상 징역 5년 이상을 정한 일반 살인죄와 달리 부모 등 존속을 살해한 존속살해죄는 징역 7년 이상으로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아들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두 가지 감경 사유를 들어 형량 범위를 낮췄습니다. 하나는 ‘자수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정상참작감경’입니다. 정상참작감경은 과거 ‘작량감경’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각각 감경으로 현행법상 형의 하한을 절반까지 줄일수 있기 때문에 두 차례 감경으로 형량범위는 1/4까지 줄었습니다.
존속살해죄 형량
- 징역 7년 ~ 30년
'자수'·'정상참작' 감경 뒤 형량
- 징역 1년 9개월 ~ 7년 6개월
- 징역 7년 ~ 30년
'자수'·'정상참작' 감경 뒤 형량
- 징역 1년 9개월 ~ 7년 6개월
여기에 양형기준에 따른 살인 유형 중 가장 가벼운 ‘참작 동기 살인’을 골랐고, 감경할 수 있는 조건이 3가지(자수, 형제·친척들의 처벌불원 탄원, 피해자가 범행 유발)나 있었기 때문에 감경이 가능한 양형기준을 적용하면 권고형의 상한도 징역 5년에 그칩니다.
양형기준 적용한 최종 권고형
- 징역 1년 9개월 ~ 징역 5년
- 징역 1년 9개월 ~ 징역 5년
즉, 여러 감경 사유와 양형기준에 따라 집행유예가 가능한 징역 3년 이내 선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오히려 권고형 범위를 벗어난 징역 7년을 선고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존속살해죄의 최저형량이긴 하지만 과정을 보면 양형기준을 넘어선 중형을 선고한 거죠. 재판부는 이렇게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우리 형법이 직계존속에 대한 살인을 가중하여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취지를 고려하면, 피고인이 아버지인 피해자를 살해한 이 사건 범행은 용납될 수 없는 패륜적이고 반사회적 범죄이다. 범행 당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한 폭언이나 폭행 정도가 살인을 유발할 정도로 극심한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 1심 선고
- 1심 선고
여러 감경 사유가 있음에도 결국은 ‘아버지를 살해한 패륜’이라는 점을 고려했다는 겁니다. ‘존속살해’ 치고는 형을 낮게 준 게 아니라 ‘존속살해’기 때문에 더 낮출 수 있었던 형을 올린 셈이죠.
왜 존속살해만 더 엄하게 처벌하나
재판부가 참고한 양형기준에도 형을 가중할 수 있는 요소로 ‘존속인 피해자’가 있습니다. ‘계획살인’, ‘잔혹한 수법’, ‘사체손괴’ 등 범행의 질이 안 좋은 경우 형을 가중할 수 있는데 이와 더불어 피해자가 존속이라는 것만으로도 가중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반면 피해자가 자녀인 경우 가중하는 요소는 따로 없습니다.
유교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 법에서 존속살해죄는 대한민국 형법이 처음 생길 때부터 존재했습니다. 일반 살인죄 형량을 징역 5년 이상으로 정하면서 존속살해죄는 오로지 ‘무기징역 또는 사형’으로 지금보다 훨씬 엄하게 처벌했습니다. 그나마 존속살해만 지나치게 엄하게 처벌한다는 논란이 이어지면서 1995년 지금과 같은 징역 7년 이상으로 개정됐지만 일반 살인죄보다 엄하게 처벌한다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존속살해죄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왔습니다. 자식을 살해한 건 똑같은 일반 살인으로 보면서 부모를 살해한 경우만 엄하게 처벌하는 게 맞느냐는 거죠. 단적인 예로 이따금씩 나오는 ‘간병살인’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한 번씩 간병살인 보도를 접하다 보면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사정이 매우 딱해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인천지법에서는 38년간 돌본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60대 어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고,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형이 그대로 확정된 게 대표적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살해한 경우였기 때문에 일반 살인죄가 적용됐죠.
반면, 자식이 부모를 간병살인한 경우는 집행유예가 나오는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대표적 예로 지난해 3월 대법원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 아버지를 간병하다가 숨지게 한 30대 남성에게 징역 4년 실형을 확정했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한 만큼 존속살해죄가 적용됐는데 법원이 정상참작감경을 해 법정형보다 낮은 형을 줬음에도 실형이 나올 수밖에 없었죠.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존속살해의 위헌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여론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위헌 심판대 올랐지만…
존속살해죄는 그동안 몇차례 위헌 심판대에 오른 바 있습니다. 지난 2002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위헌 여부를 따졌죠. 결과는 두 번 다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지난 2002년 헌재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존속살해죄가 합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유교 사상은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비속의 직계존속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봉건적 가족제도의 유산이라기 보다는 우리 사회윤리의 본질적 구성부분을 이루고 있는 가치질서로서, 특히 유교적 사상을 기반으로 전통적 문화를 계승․발전시켜 온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그러한 것이 현실인 이상, ‘비속’이라는 지위에 의한 가중처벌의 이유와 그 정도의 타당성 등에 비추어 그 차별적 취급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 2002. 3. 28. 헌재 선고
- 2002. 3. 28. 헌재 선고
약 10년이 지난 뒤에도 헌재는 역시 비슷한 이유로 합헌이라고 봤습니다. 존속살해에 대한 가중처벌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전통이고, 앞서 언급한 1995년 한 차례 개정으로 형평성 논란도 어느 정도 해소됐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조선시대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존속살해죄에 대한 가중처벌은 계속되어 왔고, 그러한 입법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관념 내지 전통사상이 자리 잡고 있는 점, 존속살해는 그 패륜성에 비추어 일반 살인죄에 비하여 고도의 사회적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한 점, 이 사건 법률조항의 법정형이 종래의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서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개정되어 기존에 제기되었던 양형에 있어서의 구체적 불균형의 문제도 해소된 점을 고려할 때 이 사건 법률조항이 형벌체계상 균형을 잃은 자의적 입법으로서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 2013. 7. 25. 헌재 선고
- 2013. 7. 25. 헌재 선고
다만, 두 번째 헌재 판단은 재판관 전원의 일치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재판관 2명은 부모자식이라는 신분관계만으로 가중처벌하는 건 민주적이지 않다며 위헌 여지가 있다고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배우자나 직계비속을 살해하는 경우, 또는 법적인 신분관계는 없으나 가해자와 특별한 은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살해하는 경우 등은 일반 살인죄로 처벌하고, 심지어 직계존속이 치욕 은폐 등의 동기로 영아를 살해하는 경우는 처벌을 감경하는 것과는 달리, 직계존속을 살해하는 경우 양육이나 보호 여부, 애착관계의 형성 등을 묻지 아니하고 그 형식적 신분관계만으로 가중 처벌하는 것이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적인 가족관계와 조화된다고 보기 어렵고, 범행동기 등을 감안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형의 하한을 높여 합리적인 양형을 어렵게 하며, 비교법적으로도 그 예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서 차별의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
- 2013. 7. 25 이진성·서기석 재판관 반대의견
- 2013. 7. 25 이진성·서기석 재판관 반대의견
존속살해죄 합헌의 근거로 헌재가 제시한 건 ‘패륜성’에 대한 가중처벌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패륜성이라는 게 자식이 부모를 향한 범죄에만 적용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게 패륜이라면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것이 패륜일 수 있고, 오히려 자식이 부모를 죽이더라도 패륜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지난 2018년 박남미 경북대학교 법학연구원 연구원은 한국비교형사법학회 비교형사법연구에 게재한 '존속살해죄와 영아살해죄의 위헌겅 검토와 비속살해에 대한 고찰' 논문에서 "직계비속의 패륜성보다는 오히려 직계존속의 패륜성이 원인이 된 사건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10대 자식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을 예로 들었습니다.
박 연구원은 패륜성을 더 엄하게 처벌하기 위해 존재하는 존속살해죄를 적용할 때 패륜성이 약한 살해도 똑같이 처벌하는 건 헌법상 평등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대안으로 '존속살해죄를 폐지하되 패륜성을 별도로 판단하는 조건을 담은 양형기준을 적용'하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든, 자식이 부모를 죽이든 같은 살인죄 선상에 놓되 패륜성이 있느냐를 추가로 판단해 가중처벌을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국회의 비속살해죄 신설안, 답 아니다
존속살해죄 위헌 논란에 대한 대응으로 국회에서는 존속살해죄를 유지하되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 똑같이 가중처벌하는 '비속살해죄'를 신설하자는 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경태·구자근·이태규·정경희 국민의힘 의원 등 여야 모두 비슷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속살해죄 신설안에 대해 관련기관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해당 법안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직계존속이라는 형식적인 신분관계로 인해 별도의 범죄를 구성해 가중 처벌하는 것은 존속살해죄 위헌논쟁이 그대로 재연될 수 있고, 범행 동기나 방법,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가중 처벌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법무부도 "직계혈족에 대한 범죄는 새로운 구성요건을 신설하는 법령 개정이 아니라 죄에 상응하는 형벌이 부과되도록 양형 문제로 접근하는 방향이 타당하고, 직계존속 가중 처벌 규정은 위헌 논란이 있어 비속살해 신설은 위헌 우려가 있으니 해외 입법례 등을 고려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실제 해외 입법례를 보면 존속살해 가중처벌 규정이 있는 주요 국가는 프랑스와 대만 정도고 프랑스는 비속 살해 처벌 규정도 함께 두고 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일본의 경우는 존속살해 가중처벌 규정이 있었지만 위헌 결정 등으로 폐지된 상태입니다. 영국과 미국 같은 영미법계 국가들은 존속이나 비속 관련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규정이 아예 없습니다.
패륜은 잘못된 것이고 패륜 범죄를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겁니다. 논란은 있지만 최근 영아살해죄가 폐지된 것도 패륜에는 부모자식이 따로 없다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보다 자식의 책임만을 더 엄하게 묻는 존속살해죄가 지금 시대의 가치관과 부합하는지는 한 번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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