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 여행 못 가는 '형편 어려운' 아이 취급
'일부 학교 이야기가 확대됐다'는 지적도
신종 혐오표현 교내에서 번지고 있는 건 사실
'일부 학교 이야기가 확대됐다'는 지적도
신종 혐오표현 교내에서 번지고 있는 건 사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이모 씨는 최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한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습니다.
성실하게 학교를 빠지지 않고 등교한 아이에게 일부 반 친구들이 '개근거지'라며 놀렸다는 겁니다.
최근 맘카페에서는 '개근거지'라는 말로 떠들썩합니다.
'개근거지'란, 학기 중 교외 체험 학습으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 하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여행을 갈 형편이 안 되니 학교를 꼬박 나왔다고 비아냥거리는 표현인 겁니다.
지난 2019년 처음 등장했다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 해외여행이 제한되면서 자취를 감추는 듯 싶었는데, 올해 초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재개되자 다시 등장했습니다.
중학생 아이를 둔 한 맘카페 회원은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떄 '나 빼고 반 아이들은 해외여행을 다 가는데, 왜 우리는 안 가냐'고 투정 부려서 마음이 아팠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다른 회원은 "학부모가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어린이날 연휴에 다들 해외 어디 안 가세요?'라는 질문을 보고 부랴부랴 비행기표를 예매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40대 워킹맘 회원은 "아이가 '해외여행 안 가고 학교만 다니는 사람은 우리 반에 나밖에 없다'며 우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요즘 애들은 꼬박꼬박 학교에 가는 것을 창피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성실함의 증표'라는 평을 받았던 개근이 이제는 아이들을 비꼬는 혐오 표현으로 악용되고 있는 겁니다.
'엘사', '휴거', '빌거'…유행처럼 번지는 혐오표현
물론 '일부 학교 이야기인데 확대된 느낌이 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 어른들이 만들어 낸 신조어 같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하지만 혐오 표현이 계속해서 생겨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한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휴거'는 '휴먼시아 거지', '엘사'는 '엘에이치에 사는 거지'를 뜻합니다.
살고 있는 주택의 형태나 가격에 따라 '○○거지'라고 부르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기 시작한 겁니다.
'휴거'와 '엘사' 외에도 주공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가리키는 '주거(주공아파트 거지)', 전세에 사는 아이들을 놀리는 '전거(전세사는 거지)', 빌라에 사는 아이를 지칭한 '빌거(빌라사는 거지)' 등 유행처럼 번지는 혐오 표현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회 현상에 한목소리로 우려감을 표하며, 아이들이 장난처럼 쓰는 혐오 표현이 어른들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희정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는 '학교 공간의 혐오·차별 현상 연구(A Study on the Phenomenon of Hate and Discrimination in Korean Schools)'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학교에서 벌어지는 정서적·제도적 차별과 혐오의 말은 학교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학교 공간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 펼쳐지고 있을 뿐"이라고 적었습니다.
[최유나 디지털뉴스 기자 chldbskcjstk@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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