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서울 퀴어문화축제'에서 만난 사람들
어제(1일) 체감 온도 35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날씨에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서도 ‘2023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3만 명이 넘는 인파가 을지로 일대에 모였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행사인데요, 이 자리에서 MBN 취재진과 만난 드랙 아티스트 썸머(36)는 인터뷰 도중 눈물을 글썽이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숨는다고 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오늘 같은 날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숨어 사는 이들을 위해 제가 조금이나마 목소리를 내 봅니다.”
올해로 24회를 맞은 이번 행사에서 주최 측은 '피어나라, 퀴어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서울퀴어문화축제 양선우 조직위원장은 “우리는 성소수자가 사람답게, 인간답게, 내가 나인 채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그런 세상을 꿈꾸기 때문에 이렇게 슬로건을 지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시가 조직위원회를 상대로 내린 서울광장 사용 불허 결정에 따라 이날 축제와 행진은 을지로~삼일대로~종각역을 거쳐 이뤄졌습니다.
현장에선 약 50개 이상의 시민사회단체, 각국 대사관, 기업 등이 참여해 부스를 운영했고, 무대에선 여러 공연과 연대 발언도 진행됐습니다.
다양한 체험 활동이 마련된 부스 내부에는 무지갯빛 깃발들이 펄럭였고, 개성 넘치는 옷차림을 한 시민들의 모습이 가득했는데, MBN은 행사 곳곳을 찾아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무지갯빛 치마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드랙 아티스트 지반(30)과 보리(30). /사진=MBN 오서연 인턴기자
“혐오 세력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들은 ‘숨어 살아라’, ‘보이지 말아라’라고 얘기하는데, 이렇게 오늘 같은 날 모두 다 같이 나와 드러낼 수 있는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날 화려한 옷차림으로 등장한 30세 드랙(Drag) 아티스트 지반과 보리는 ‘드랙’을 통해 사회적으로 고정된 성별에서 벗어나 메이크업, 의상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 활동을 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축제를 통해 함께 연대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 앞으로 대한민국이 조금 더 포용적인 사회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올해 서울 퀴어문화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MBN 오서연 인턴기자
“한국과 미국의 퀴어축제는 비슷한 점이 매우 많아요. 다만, 한 가지 다른 건 축제 참여자가 직접 반대 시위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선 퀴어 반대 측이 현장 시위를 활발하게 한다거나 바로 앞에서 ‘너희 지옥갈 거야’라고 소리를 막 지르지는 않아요.”
"제가 살고 있는 도시, 호주 멜버른은 세계적으로 가장 LGBTQI+(성소수자) 친화적인 곳 중 하나에요. 이곳은 퀴어 축제를 엄청 큰 파티로 생각하고,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인 것 같아요.”
미국인 타일러 놀(Tyler Noll·29)과 호주에서 거주 중인 앨리슨 마틴(Alison Martin·29)은 한국의 퀴어 축제는 미국·호주와 이같이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들은 “다만 한국의 퀴어 축제에서 ‘모두 하나가 된다'는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다는 건 분명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많은 인파가 모인 2023 서울퀴어문화축제 현장. /사진=MBN 이승지 인턴기자
“제가 믿는 하나님은 오히려 퀴어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반대하실 것 같아요. 하나님은 성경에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좋다’고 하셨어요. 왜 태어났냐고 묻지 않으셨죠. 좋다는 건 ‘최고의 아름다움’, ‘충만하다’라는 표현이에요. 어떻게 감히 누가 누군가를 단죄합니까?”
4년째 퀴어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영원한도움의성모 수녀회 이수진(46) 수녀는 “아름다운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고 축제 참가 이유를 밝혔습니다.
“반대 집회 사람들이 느끼는 예수님의 사랑과 저희가 느끼는 사랑이 좀 다른가 봐요. 아쉽고, 안쓰러워요.”
가톨릭 성소수자 모임 ‘안개마을' 소속 김승용(44) 씨는 축제 맞은 편에서 벌어지는 퀴어 반대 축제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습니다. 김 씨는 “가톨릭 성소수자 모임 ‘안개마을'은 가톨릭 신자 중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23년간 이어져 왔다”며 “상처받거나 숨어 계신 성소수자 신앙인들이 많이 오셨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미국인 던캔 솔라이어(Duncan solaire)와 그의 친구가 서울 퀴어문화축제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MBN 이승지 인턴기자
“저희 아이가 트렌스젠더인데, 아이가 사회에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우리 세대엔 낯설 수 있지만, 눈을 조금만 더 크게 뜨고 보면 주변에 충분히 있을 수 있어요.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서 활동하며 트렌스젠더 자녀를 두고 있는 A 씨는 “가족 중 한 명이 성소수자일 수도 있다”라며 “이런 행사를 통해 주의 깊게 보다 보면 이들을 이해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1일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방문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사진=MBN 이승지 인턴기자
이날 이정미 정의당 대표 역시 서울 퀴어문화축제 현장을 찾았습니다.
이 대표는 올해 퀴어축제가 예년과 달리 서울광장이 아닌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것에 대해 “한 번 열린 광장을 다시 닫는 모습을 보이며 서울시가 ‘닫힌 행정’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고 생각한다”면서 “서울시청이 앞으로 광장을 꽁꽁 닫아둘 것이 아니라면 이번 일에 대한 정확한 지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 집회 현장을 방문한 이유에 대해선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 저지 시위에 있다가 소수자들과 함께 연대하는 마음도 전하고 싶어 이곳을 방문하게 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을지로 일대에 휘날리는 무지갯빛 깃발. /사진=MBN 이승지 인턴기자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온라인으로 행사를 진행했던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2015년부터 매년 서울광장에서 열렸지만, 올해는 기독교단체의 행사에 서울광장 사용 허가가 나면서 축제 장소가 을지로 일대로 변경됐습니다.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가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1일까지 서울광장 사용을 신청한 ‘2023 서울 퀴어문화축제’와 기독교단체 CTS 문화재단의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 2건을 심의해 CTS 문화재단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1일 퀴어축제 반대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이날 행사장 인근과 서울시 의회 앞 등지에선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집회도 열렸습니다.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는 서울시 의회 앞에서 ‘2023 통합국민대회 거룩한방파제’를 열어 특별기도회와 국민대회, 퍼레이드 등을 진행했습니다. 아울러, 퀴어축제 현장 인근에서 기독교 단체가 스피커로 찬송가를 틀며 동성애 반대 집회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날 퀴어축제 현장에 3만 명의 인파가 몰린 데 이어, 이들을 비판하는 시민들도 1만 명가량이 모이면서 을지로 일대가 하루 종일 큰 혼잡을 빚었습니다.
경찰은 50대가 넘는 부대를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지만 참가자 간 큰 충돌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인기척은 MBN '인'턴 '기'자들이 '척'하니 알려드리는 체험형 기사입니다.
[오서연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kitty2525my@naver.com]
[이승지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seungjilee@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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