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가리지 않고 선거철만 되면 여기 저기서 공항을 짓겠다고 난리다.
올해 치른 대선, 6·1지방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세월 거명된 부산 가덕도신공항은 대선·지선 여야 후보 가리지 않고 만장 일치 공약이 됐다.
한때 부산과 동남권신공항 유치 경쟁을 벌였던 TK(대구·경북)에서는 홍준표 대구시장 후보가 맞불이라도 놓듯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공약했다.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도 같은 공약으로 힘을 실어줬다.
우리나라 대표 하늘길 관문인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국제공항이 있는 수도권에서도 마찬가지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기남부국제공항을 공약했다. 성남 서울공항 기능을 김포공항으로 이전하고 경기 남부에 국제공항을 새로 만들자는 것이다. 지난 3일 경기도는 민관협치위원회를 열어 수원군공항 이전에 대한 공론화 실시를 의결했다. 후보지는 특정하지 않았으나 화성 안팎에서는 수원군공항을 화성시로 이전하는데 대한 화성시민의 반발이 크니 국제공항 모자를 씌워 협의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국제공항을 포함해 총 15개 공항이 운영되고 있다.
지금까지 거론된 9개 공항이 실제로 건설된다면 한국에는 총 24개 공항이 거미줄 처럼 뻗게 된다. 물론 이중 일부는 신공항으로 통폐합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재도 대부분의 지방공항이 적자 투성이인 상황에서 경쟁적으로 더 많은 공항을 짓겠다고 하니 일각에서는 '하늘에 지하철을 건설하려고 하느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울릉·흑산·새만금공항 제외 나머지 사업은 기본계획 고시 전
정치권 등에서 군불을 땐 '공항 짓기 바람'은 수도권, 비수도권을 가리지 않고 불고 있다.
현재 추진 또는 검토되고 있는 신공항 사업은 가덕도신공항, 제주 제2공항, 울릉공항, 흑산공항, 새만금신공항,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백령공항, 서산공항, 경기남부국제공항 등 9개 사업에 이른다. 추정된 예산만 21조원(경기남부국제공항 제외 8개 공항)에 이른다.
신공항이 건설되려면 사전 타당성 조사, 예비 타당성 조사를 거쳐 기본계획 고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기본계획이 고시되면 국토부가 정식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뜻이다.
9개 신공항 사업 중 기본계획 고시를 통과한 사업은 울릉공항과 흑산공항, 새만금공항 등 3곳 뿐이다. 경기남부국제공항을 제외한 나머지 5개 사업은 지난해 9월 국토부가 고시한 제6차 공항개발종합계획에 들어가 있다. 아직 기본계획 고시 전이지만 절반 이상은 사업 추진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지난해 특별법 제정으로 가속도가 붙은 부산 가덕신공항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 받아 내년쯤 기본계획 고시가 유력한 것으로 관측된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은 이미 경북 군위·의성군으로 후보지가 결정됐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가덕신공항의 경우처럼 특별법 제정으로 속도를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제주 제2공항은 예비 타당성조사까지 마쳤지만 환경부가 기본계획 고시 전 시행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반려하면서 아직까지 기본계획 고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서산공항과 백령공항은 기획재정부와 KDI가 예비 타당성 조사중인데 연내 결과가 나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들 사업은 예타에 결과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6·1지방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경기남부국제공항은 국토부 공항개발종합계획에 조차 반영되지 않아 속도 측면에서는 제일 늦다. 아직은 '경기도 뇌피셜'에 가깝다.
경기남부국제공항 후보지로 거론되는 경기도 화성시 화옹지구 전경. [사진 제공 = 화성시]
우리나라 국제공항 접근성, 세계 평균 보다 높아
현재 운영중인 15개 공항과 새롭게 거론된 9개 신공항 사업을 지도 위에 매칭하면 대권역별 공항간 거리가 촘촘해 진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좁은 국토에 이렇게 따닥 따닥 붙은 공항이 제 역할을 수행하면서 수익까지 낼수 있겠느냐"면서 '하늘길용 KTX를 만드냐'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신공항 사업이 함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예비 타당성 조사 등 안전장치를 통해 경제성을 따진 뒤 사업 여부를 결정하지만 경제성 분석이 어긋난 경우가 많고, 경제성이 부족하더라도 정치·정책적 판단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아 뒷감당이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일각에서는 지금의 공항 인프라스트럭처도 접근성 측면에서 부족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항공분야 국제 표준을 선도하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국제공항간 적정 거리 기준을 두지 않고 있다. 다만 거주인구의 공항 접근 거리와 관련한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거리, 시설, 품질, 이용성, 비용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개념을 '접근성'으로 정의하는데 이 중 거리에 대해 서는 '국제공항 반경 100km 이내 거주 인구'를 중요한 접근성의 지표로 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제공항의 접근성은 세계 평균보다 우수한 편이다. 세계 국제공항의 100km이내 거주 인구는 51.25%, 연결편을 고려한 포괄적 거주인구(국제공항 반경 100km 밖에 거주하나 국내선 정기 연결편으로 국제공항 이용이 가능한 인구)는 74.41%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제공항 100km 이내 거주인구가 96.83%에 달하고, 연결편을 고려하면 99.8%로 여느 나라 공항 보다 공항 접근성이 우수하다.
또 다른 우려도 있다. 현재 운영중인 전국 15개 공항은 접근 반경 50km내에서 서로 중첩된다. 만약 현재 거론되는 신공항사업이 건설된다면 총 공항수는 20여개로 늘어나 상호 중첩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차로 한시간여 거리에 공항 3개? ...중복 투자·예산 낭비 우려 여전
신공항 사업이 주민 항공 서비스를 높이고, 수익까지 가져다 준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이전의 사례를 보면 중복투자, 예산 낭비, 밑빠진 독에 물붓기 현상이 적지 않아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공항 인프라 확장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2500만명의 인구를 배후에 둔 수도권에는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이 일부 국제선 기능을 분담하며 복수 공항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두 공항은 코로나19 발생 전 연간 1억명을 처리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남부국제공항 사업이 뜬금 없이 등장했다. 기존 인천·김포공항과 서비스 영역이 겹칠 수 밖에 없다. 항공사는 취항 공항을 선택할 수 밖에 없고, 인위적 노선 분리가 불가피한데 항공사들이 이미 익숙하고 잘 개발해 놓은 기존 노선을 포기하면서 까지 경기남부국제공항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 특히 수도권 3개 공항이 모두 국제공항을 지향하는 상황에서 인위적 노선 분리는 여객 환승, 접근 편리성, 항공사간 전략적 제휴, 지상 조업, 정비시설 배치 등에 비효율을 야기할 수 있다.
2019년 경기도와 충북도 등 6개 지방자치단체는 경기 화성시 동탄~충북 청주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수도권 내륙 철도 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경기 남부지역 주민의 청주공항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는데 이 약속 또한 뒤집어 지게 된다.
호남도 예외는 아니다. 전북 군산에 새만금국제공항이 들어서면 호남에만 무안국제공항, 광주공항 등 3개 공항이 존재하게 된다. 이들 공항은 차로 1시간여 거리에 있다.
호남지역 인구는 500만명 정도다. 여기에 충남이 환황해 경제권 중추 관문이자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서산공항을 건설하겠다고 나섰다. 이미 운영중인 청주공항과 새만금 공항은 항공수요 선점을 놓고 경쟁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중복 투자, 예산 낭비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수익성...전문가 "수요 없으면 자제해야"
일본에는 97개 공항이 있다. 정치권과 관료들이 선심성 정책으로 지방공항을 대거 건설했다. 하지만 이들중 민간이 운영하는 4~5개 국제공항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적자다.
일본에 취항하는 국제노선중 75%가 나리타·하네다·주부·간사이 등 4개 공항에 집중돼 있고, 나머지 93곳의 비중은 25%에 불과하다. 지자체 마다 공항을 지어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1현 1공항 정책'은 결과적으로 국가부채 증가의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적자 누적으로 수십년간 5000억엔 이상의 자금이 투입됐다.
일본도 애초 적자를 예상한 것은 아니다. 개항후 실적이 좋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2010년 일본 국토교통성 자료에 따르면 실적이 수요 예측을 상회한 공항은 8개에 불과했다. 당시 아에하라 세이지 국토교통성 장관은 "지방공항이 국고 의존 없이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사업 재편이 필요하다"면서 "이러한 것이 없으면 지방공항은 생존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항공 수요 경쟁과 무관하게 모든 공항의 수익성이 담보된다면 문제는 없다. 우리나라 공항은 국토부 산하 공기업인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가 나눠 운영하는 구조다. 지방공항 14곳은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하고 있는데 코로나19 전 흑자를 낸 곳은 김포·제주·김해·대구공항 뿐이다. 이 4개 공항에서 번 돈으로 나머지 10개 공항의 적자를 메우고 있다. 이들 적자 공항의 상당수는 정치적 논리에 의해 탄생했다. 무안·양양공항은 한때 이용 여객이 없어 고추 말리기 좋다는 오명을 썼고, 지금도 수요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울진공항은 울진비행훈련원으로 용도를 전환해 공항 명단에도 끼지 못하고 있다. 공사와 국민이 피해를 떠안을 뿐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무리한 공항 확장의 결론은 자명하다. 캐나다 앨버타주 애드먼턴 공항은 1970년 확장 이후 1995년까지 20여년간 지속적으로 여객이 감소해 대규모 시설 유휴화가 발생했다. 1995년 신공항으로 노선을 통합하는 주민투표로 기존 에드먼턴 시티공항이 폐쇄된 이후에서야 공항이 활성화 됐다. 미국 워싱턴 덜레스 공항은 정부의 강력한 노선 배분 정책에도 불구하고 기존 공항의 활용 편리성으로 인해 1970년대 이후부터 1995년까지 20여년간 여객이 적어 시설 과투자에 따른 유휴화가 발생했다.
김병종 한국항공대 항공교통물류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책 결정만 되면 중앙 정부가 공항 건설비, 운영비의 적자를 감당하는 구조여서 신공항 건설을 위한 지방·정치권에서의 요구가 높다"면서 "울릉·흑산·백령공항은 오지 교통 수단 제공 측면에서 다르게 봐야 하고 이외 신공항 사업에 대해서는 수요가 있으면 적절한 규모로 짓고, 수요가 없으면 자제하는게 맞다"고 말했다.
[지홍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