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당사자 능력 있더라도 인정받긴 쉽지 않아
사회에 나갈 통로, 중등교육에서부터 늘려야
사회에 나갈 통로, 중등교육에서부터 늘려야
칼럼니스트·중소기업 근무 이력에도 "취업은 늘 걱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장애인 인권에 대한 글을 쓰는 장지용 씨는 대학교 4학년 때 자폐성 장애로 장애 등록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자폐성 장애를 의심하게 된 장 씨는 당시 학교 생활을 기억하며 장애 진단을 미룬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애들이 장애인 등록을 빌미로 오히려 장애로 인한 차별이나 학교 폭력을 합리화 할까봐 그 점이 두려웠습니다."
하루하루 겪은 일을 글로 풀어내기를 좋아하는 장 씨는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장애인이 사회에서 견뎌야 하는 차별을 기고하는 장 씨에게 글쓰기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주요 이력이 됐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코너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장 씨는 다른 매체에서도 종종 기고 제안을 받습니다.
장 씨의 꾸준한 노력은 한 중소기업 사무보조 일자리 취업으로 이어졌습니다. 간단한 번역 작업 등 다양한 업무를 맡아 해온 장 씨는 최근 회사 사정으로 해고돼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게 됐습니다. "앞으로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지금 15개 업체에 지원서를 넣은 상태이고, 회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장지용 칼럼니스트
공공기관의 필기시험에 어렵게 합격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던 기억은 취업에 다시 뛰어든 장 씨를 위축들게 합니다. 장애가 혹시 불합격의 이유가 된 것은 아닐까. 장 씨는 다시 도전해야 할 취업 과정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공공기관 공채도 몇 번 써봤고 필기 시험을 통과했어요. 면접에서 장애 상태를 공개해서 그런지 합격한 사례가 전혀 없었고요."
수많은 취업 문턱에서 좌절했던 장 씨가 쉬지 않고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은 뭘까. 장 씨는 사회가 자폐를 하나의 특성으로 바라 보고 자폐 당사자가 가진 능력을 계속 보여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다양한 특성과 능력을 가진 자폐 당사자들이 사회에 녹아들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사회가 알 수 있도록 자폐 당사자들이 도전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자폐 당사자는 일단 두려워하지 말고 이제 한 걸음 더 먼저 내딛는 시도를 하셔야 합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자폐 당사자 대부분 지적 장애도…"다양한 능력 인정받게 해야"
하지만 자폐 당사자가 도전해야 할 현실은 생각보다 더 열악합니다. 자폐 당사자가 일을 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의사소통 능력입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도 말 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면 일자리를 얻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자폐성 장애는 지적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폐 당사자 가운데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이런 자폐 당사자의 경우 물건포장, 사무보조와 관련된 직업 교육을 받고 실제로 이를 수행하는데 무리가 없더라도 취업까지 이어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송민학교(특수학교)를 찾아 자폐 당사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송민학교 외경
이해영 송민학교 교감은 "특수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학교를 더 다닐 수 있고 취업을 준비할 수 있는 전공과 입학을 선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전공과란 특수교육 대상자에게 고등학교 졸업 후 직업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과정입니다. 전공과에 입학하게 되는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학교에 있을 시간이 늘어나게 되는 겁니다.
취재진은 전공과에 입학하면 취업할 가능성이 높아지는지 이 교감에게 물어봤습니다. 이 교감은 전공과 수업 방식과 일자리 사업간 연계가 핵심이라고 답했습니다. "전공과에서 가르치는 직무 기술과 생활 교육은 장애 일자리 사업과 연계돼 있어서 전공과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졸업 이후 개인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취업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문제는 전공과 티오(TO)가 적어 중증 자폐 학생들은 전공과 입학 문턱을 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 교감은 자폐 학생이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고, 생활하다 돌발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전공과 진학이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다면 업무 능력이 없는 걸까. 이 교감은 그렇지 않다며 한 자폐 학생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자폐학생 중에 급식보조로 취업해서 식기 세척을 담당하는 친구가 있는데, 급식실에서 '이분이 없으면 일을 못 한다' 할 정도로 일을 잘 해요.” 이 교감은 직무 능력이 뛰어난 자폐 학생들이 많지만 의사소통 능력과 사회성이 부족하단 이유로 전공과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능력을 발휘할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전공과에 가고 싶어요"…예산 한계 넘어야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는 문이현 송민학교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송민학교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문이현 학생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기 전, 연필을 깎고 교무실 냉장고 속 물건들을 정리했습니다. 자폐 당사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 설명한 이 교감은 문 군을 이해한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문 군은 15분가량 취재진이 묻는 질문에 집중해서 끝까지 답변을 이어나갔습니다.
“전공과에 가서 더 공부하고 싶어요.”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문 군이 답했습니다. 기능경진대회에 나가 물건을 포장하는, 일종의 사무 보조 역할을 해낸 문 군. 급식실에서 능력을 맘껏 발휘하는 자폐 당사자처럼 문 군도 자신의 능력을 펼칠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요.
문 군과 나란히 앉아 취재진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함께 고민해준 최보미 선생님에게 방법을 물어보았습니다. 최 선생님은 자폐 당사자가 능력을 펼칠 수 있게 전공과 교육 예산을 늘릴 필요성이 있다고 답합니다. “자폐 학생들은 학생마다 뛰어난 능력을 잠재하고 있어도 그 능력을 사회 속에서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있어요. 예산이 조금 더 충족이 된다면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을 저희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
[ 이혁재 기자 yzpotato@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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