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찾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사무소 2층에는 현장지휘본부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 시작된 산불은 인근 동해시까지 번졌고 산불을 피해 사람들이 대피소로 몸을 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었습니다. 하룻밤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늘었을까. 상황판엔 ‘2698’이란 숫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지휘 본부에 아직 진화 작업이 한창인 곳을 알려 달라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달려간 옥계면 남양1리에는 새빨간 화선이 산 곳곳에 있었습니다. 매캐한 연기에 방진 마스크를 쓰고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헬기가 물을 연신 산등성이 위로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올라갈 수 있을 높이엔 소방 대원이 호스를 들고 올라가 물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 화재 진화 중인 헬기
통제된 동해안고속도로를 달려 동해시 심곡동을 찾아 이곳 상황을 살폈습니다. 소방대원들이 한 차례 진화 작업을 마치고 걸어 나온 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미처 끄지 못한 산불이 산 중턱에서 솟아 오르고 있었고 헬기가 두 차례 물을 쏟아 부으면서 불길은 조금 사그라 들었지만 연기는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강한 바람에 산들을 옮겨 다닌 불씨들은 강릉과 동해 산간에서 산발적으로 산불을 일으켰습니다. 소방 헬기가 연신 물을 붓는 상황에서도 얼마나 진화가 이뤄졌는지 알기 어렵다는 답변이 소방 당국에서 돌아왔습니다. 취재진은 산불이 시작된 곳,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 산불이 시작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대피소가 마련된 남양2리 경로당을 찾았습니다.
“동해시에 죄송해요”
“(3년 전에는)바람이 많이 불어 가지고 피해가 많았죠. 지금보다 피해가 많았어요. 가옥 피해가 많았죠 그때 당시에는 거의 90채가 탔고” 김영기 이장에게 남양리에서 3년 전에도 큰 산불이 나 사람들이 많이 대피 했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산불에도 각 반장들에게 노약자들을 빨리 대피시키라고 지시했다는 김 이장은 다시 겪은 산불에 떨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대피소로 온 주민들이 불편할까봐 걱정했다는 김 이장에게 심경이 어떤지 묻자 남양리 주민들을 걱정하면서도 인근 마을로 불이 번져 피해가 커진 점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고 설명했습니다. 바람을 타고 인근 동해시로 번진 산불에 사람들이 대피한 일이 김 이장의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동해시 주민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산불 현장을 설명하는 남양리 주민 윤재구 씨
인근 주민의 도움으로 ‘남양리 토박이’가 살고 있는 파란 기왓집을 찾아 산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윤 씨는 3년 전 산불 당시에는 남양2리보다 남양1리에서 더 큰 피해를 입었다고 알렸습니다. 3년 전 산불보다 지금 산불이 본인에게는 더 무서웠다고 설명한 윤재구 씨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봤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유리창에 불이 확 보이더라고요. 일어나보니까 저 앞 산이 불이 다 붙었어요.” 윤 씨는 새벽 1시쯤, 가족들을 깨워 산불이 났다고 알렸지만 가족들이 처음엔 믿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가족들이 두 눈으로 산불을 확인하고 나서 곧바로 대피소로 피했다는 윤 씨. “엊그저께는 사람 가슴이 쪼이고 형편 없었죠. 지금까지도 아직 많이 떨려요. 그래도 사람이 사는 터전인데 집을 잃어버리면 갈 데가 없잖아요.”
윤 씨의 파란 기왓집의 뒷산에선 하얗고 두꺼운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연기가 나는 곳으로 더 깊이 들어가 만난 한 의용소방대원은 이미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라며 잔뜩 그을린 산을 가리켰습니다. 남은 산마저 태우려는 듯 화마가 닿지 않았던 더 깊은 산 속에서 산불이 이어지고 있었고 소방은 인근 세 가구가 피해를 받지 않도록 저지선을 구축했다고 전했습니다.
취재진은 남양리에서 매봉산 방향으로 차를 타고 올라가 불이 처음 시작된 주택을 찾았습니다. 강릉경찰서에 따르면 60대 남성이 토치로 주택에 불을 질러 산불이 시작됐는데, 이 남성은 다른 집에도 불을 지른 뒤 숨어있다가 검거됐습니다.
강릉 동해 산불이 시작된 남양리의 한 주택
산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지만 불이 시작된 주택은 이미 폭삭 무너져 내렸고 불이 지나간 자리들은 검게 그을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주민은 3년 전처럼 이번에도 동해시로 불길이 가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본인들이 낸 산불은 아니지만 인접한 동해시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남양리 곳곳에서 만난 주민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마음으로 산불 피해를 이겨내는 주민들. 다행히 잦아든 바람에 강릉과 동해에선 주불이 잡혀간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
[ 이혁재 기자 / yzpotato@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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