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후 9시. 백화점이 문을 닫은 늦은밤 건대입구역 인근 롯데스타시티 지하 1층에 위치한 서점 반디앤루니스의 불은 새벽 2시까지 환하게 켜져있었다.
책 재고라도 찾아 가려는 출판사 관계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A 출판사 직원은 "재고라도 가져가야 그나마 손해를 줄일 수 있다"며 "마치 전쟁통에 마트에서 사재기가 벌어진 것 같았다. 오프라인 서점의 민낯을 본듯해 씁쓸하다"고 말했다.
과거 '핫 플레이스'였던 오프라인 서점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온라인 쏠림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 여파로 주요 상권의 유동인구가 줄어들며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말 반디앤루니스 롯데스타시티점 내부가 비어 있다. [사진 = 신미진 기자]
◆ 서울문고 상당수 어음거래
7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하는 서울문고는 올해 전국 8개 매장 중 4개점 운영을 중단했다.
신세계강남점과 롯데스타시티점, 목동점, 여의도신영증권점 등 주요 상권에 위치한 곳들이다. 온라인 서점 운영도 중지됐다.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 이어 오프라인 서점 매출 3위를 기록하던 서울문고는 지난 6월 최종 부도처리 된 뒤 현재 기업 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업계는 서울문고가 오프라인 매출 비중이 높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서울문고가 출판사에 3000여곳에 지급해야 할 잔액 120~130억원을 포함해 피해 금액이 총 180억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출판사와 서점간 도서공급은 위탁 방식으로 이뤄진다. 서점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책을 판매했을 때만 대금을 지불한다.
출판사는 서울문고 채권단과 협의 하에 도서를 반출하고 있다. 출판사 입장에선 재고를 가져오지 못할 경우 소유권이 채권자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한밤의 전쟁같은 도서 경쟁이 벌어진 이유다.
강남점은 부도 직후인 지난 6월에, 여의도점과 롯데스타시티점은 지난달 23~ 27일 오후 8시부터 새벽 2~3시까지 도서 반출을 진행했다.
박성경 한국출판인회의 유통정보위원장은 "현재까지 10~20억 규모의 재고가 반출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외상 채권까지 포함하면 반출이 모두 이뤄진다고 해도 피해를 구제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했다.
반디앤루니스 영업 종료 안내문. [사진 출처 = 반디앤루니스]
◆ 서점, '대형 광고판' 몰락
올해 초 국내 도서 도매업체 2위 인터파크송인서적에 이어 서울문고마저 문을 닫자 출판계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간한 '2020년 출판시장 통계'에 따르면 국내 1위 교보문고의 지난해 온라인 매출은 전년대비 30.3%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오프라인은 0.7% 늘어나는데 그쳤다. 영업이익은 59억원에서 6억원으로 89.1% 감소했다.
이에 교보생명은 최근 유상증자를 통해 교보문고에 1500억원을 투입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 작가는 "요즘 오프라인 서점은 큰 광고판이라고 보면 된다"며 "매달 대형 서점들이 전화로 광고영업을 한다. 출판사도 온라인 매출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응하지만 100만원어치 광고를 하면 전부 판매가 안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디지털 플랫폼과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량은 6.1권으로 2년 전(2017년)보다 2.2권 감소했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출판사들이 온라인 시장을 공략하고 있지만, 도서 구독 플랫폼 등에서는 여전히 정상적으로 정산을 받기 어려운 구조"라며 "오프라인 서점 활성화 방안과 함께 플랫폼의 투명한 거래 관행도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미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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