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 아내 95억 보험금' 어떻게 가능했나…뒤늦은 업계 개선

'만삭 아내 보험금 95억원 사망 사건'이 파기환송심에서 살인죄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반인이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은 어떻게 피보험자인 외국 출신 전업주부 명의로 그처럼 거액의 보험을 가입할 수 있었는지입니다.

이에 대해 여론은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능숙하지 않은 10대 후반∼20대 초반 외국인 아내 명의로 과도한 보험을 들게 한 것 자체가 무책임한 영업행태라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오늘(1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피고인 남편 50세 이모씨는 2008년 결혼 후부터 2014년 6월까지 캄보디아 출신 아내 이모씨(2014년 사망 당시 24세)를 피보험자로, 자신과 상속인을 수익자로 하는 11개 보험사의 보험 25건에 가입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액수가 큰 상품은 남편이 낸 사고로 아내가 숨지기 2개월 전에 가입한 A사의 변액유니버설종신보험으로, 보험금이 30억9천만 원입니다.

보험사는 가입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인수심사를 거칩니다. 계약자의 나이, 혼인·가족관계, 직업, 소득, 타사 보험 가입 현황 등을 따져 보험료를 제대로 납입할 수 있는지, 보험을 악용할 의도는 아닌지 등을 파악하는 절차입니다.

심사를 통해 각 보험사는 계약자와 피보험자의 신상과 소득 등에 따라 계약 여부와 계약 보험금의 상한선을 달리 설정합니다.

예를 들어 월소득이 파악되지 않는 무직자에게 월 납입액이 100만원이 넘는 고액 상품은 팔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단기간에 지나치게 많은 보험을 들려는 경우에도 거절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벌어지기 전 각 보험사는 이씨 부부에 대해서도 이러한 심사 절차를 거쳤지만 허점이 있었습니다.

A사가 2014년 생명보험협회를 통해 피보험자 이씨의 계약 정보를 조회했을 당시에는 기존 계약 보험금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각 회사가 생보협회 정보조회시스템에 입력하는 기준이 달랐던 탓에 이씨가 가입한 보험 중 '소득보장형 분할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은 수령 가능한 보험금이 정보조회시스템에 전액 반영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소득보장형 분할 사망보험금이란 피보험자가 은퇴 연령보다 일찍 사망하면 수익자에게 일시금에 더해 매달 일정한 액수를 예정된 은퇴 연령까지 지급하는 보험금 형태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상품은 피보험자가 일찍 사망할수록 수익자에게 지급되는 보험금이 많아지는 구조입니다.

만약 아내 이씨가 나이 들어 사망했다면 보험금은 31억 원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가 됩니다.

당시 일부 보험사는 이씨의 계약 금액을 생보협회 계약정보조회 시스템에 입력할 때 소득보장형 부분을 제외했기 때문에 계약 규모가 수십 억대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A사의 설명입니다.

2016년 말부터 신용정보원을 통해 계약정보를 조회하게 되면서 기존 가입 내역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됐습니다.


A사는 이씨 사건 등을 계기로 소득보장형 분할 사망보험금 상품 판매를 아예 중단했습니다.

A사 관계자는 "피보험자가 불의의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을 때 유족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장한다는 좋은 취지의 상품이지만 자살·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크고, 보험사에 재정적으로도 부담이 되는 상품이어서 판매를 중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씨가 거액의 계약을 체결한 B사의 관계자는 "보험사기 우려가 커지면서 보험사의 계약 인수 심사도 갈수록 치밀해지고 있다"며 "빅데이터 기술을 바탕으로 계약 인수 여부나 상한 금액을 설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B사 관계자는 "인수 심사를 강화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보험 가입 문턱을 높이게 되므로 무작정 강화하는 것이 좋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변사자의 보험 가입 현황을 실시간으로 조회하는 시스템도 구축됐습니다.

사고 직후 경찰은 범죄 혐의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다가 이씨와 유족을 접촉한 보험설계사의 제보로 보험사가 수사를 의뢰한 후에야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피해자의 시신이 화장돼 체내 수면유도제 농도, 사망 원인·시점 등 결정적 증거를 제시할 수도 있는 부검 기회는 사라진 후였습니다.

김기용 손해보험협회 보험사기조사팀장은 "만약 사고 직후 경찰이 피해자의 보험 가입 여부를 조회할 수 있었다면 신속하게 범죄 수사로 전환해 더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사망사건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떠나 보험업계가 시스템을 점검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