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부결된 표면적 이유는 민주노총 강경파들의 극단성 때문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노동법 체계와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 컨베이어벨트 노동에 맞춰진 노동법이 대규모 공장 노조에 힘을 실어주고, 정치파업을 묵인하는 관행이 민주노총의 존재감을 키워, 전체 노동자의 5~6%에 불과한 이들이 노동계 대표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여기에 1980년대 운동권적 사고방식이 결합돼 막강한 권한을 정파 투쟁에만 '올인'하는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단협과 임금투쟁에 '올인'
현행 근로기준법은 공장 노동자를 중심에 두고 있다. 작업방식의 표준화와 분업화, 그리고 근로조건 통일을 위한 단체협약제도가 근로기준법의 핵심이다. 하루에 몇 시간 일하고, 휴식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가 골자인데 그야말로 공장 노동이 아니면 적용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근로기준법은 노동운동을 단협과 임금투쟁 등 공장 노동자의 처우를 다투는 데만 쏠리도록 만들고 있다.
노동문화의 획일화를 조장한 것도 바로 법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통일적·획일적 근로조건이 적용돼야 (조합원들이) 뭉칠수 있다. 성과주의가 나오는 순간 근로조건의 동질성이 깨지고 단체협약이란 틀 속에 담기 어려워진다"며 "전통적인 노조 리더들은 성과주의를 주장하는 근로자들을 회색분자로 경원시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유연 근무는 노조에서 금기시 된다. 노동자가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선택근무제는 화이트칼라에게 적합한 제도지만 블루칼라가 헤게모니를 쥔 대부분의 노조에선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정규직과 동일한 근로조건을 맞춰줄 수 없는 하청이나 비정규직은 노조에 가입하기도 힘들다. 플랫폼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다.
◆정치파업에 속수무책
사측에 대항할 수단을 제공하기 위한 수단(노동3권)을 규정한 노동조합법도 강성노조의 자양분이 됐다. 노조에 기울어진 법 체계이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현행 노조법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규정하지만 노조의 부당행위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교섭대상도 아닌 해고자 복직으로 단협을 지연시키거나 장기파업을 해도 아무런 제재수단이 없다는 얘기다.
특히 강성노조는 파업시 대체근로가 불가능한 점과 사법부가 쟁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해주는 점을 악용해 정치파업을 일삼아 왔다. 박 원장은 "사법부는 여러 목적의 쟁의행위 중 일부가 불법적이더라도 나머지가 합법적이라면 (파업을) 합법으로 인정해왔다"며 "노조는 이같은 상황을 이용해 임금인상과 해고된 전임 위원장의 복직을 동시에 요구하는 식으로 행동했다"고 설명했다.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련한 파업만 합법인데, 임금인상에 다른 불법적인 요구조건을 더하는 정도는 사법부가 용인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경영에 간섭하는 파업도 빈번하다.
뿐만 아니라 '선명성'을 강조한 민주노총은 주요 정치적 사안마다 파업을 벌였다. 그래서 정치적 영향력도 키웠다.
◆86 운동권 정파성 더해져
'X86' 운동권 문화가 노동운동에 더해지며 정파 간 투쟁이 고착화했다.
민주노총은 크게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의 3개 정파가 있다.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두고 1980년대 진보 진영에서 벌였던 '사회구성체 논쟁'에 뿌리를 둔다. 국민파는 민족민주(NL) 계열, 중앙파와 현장파는 민중민주(PD) 계열로 분류된다. 김명환 위원장이 속한 국민파는 사회적 대화의 책무가 있다고 인식한다. 반면 현장파는 강경투쟁을 통해 '노동해방'을 이루는 데 목적을 둔다. 민노총의 정파는 결국 노동자의 이익이 아닌 정치이념에 따라 만들어진 셈이다.
민주노총을 탈퇴한 한 노동운동가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더이상 시대가 이런 걸 요청하지 않는데 자기들만에 세계에 갖혀있다"며 "가장 나쁜 건 정파 조직이 조합원이 선출한 위원장을 지도하려 하는 문화가 있다. 정파 수뇌부 입장에 따라 활동가들이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을 왜곡한다"고 말했다.
[김태준 기자 /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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