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한 통이라도 건져야 할 텐데…."
전북 완주 지역 수박 주산지인 삼례읍 해전리입니다.
비닐하우스 15개 동에서 수박을 재배하고 있는 55살 최덕환 씨는 오늘(15일) 언제 비가 내렸는지 모를 정도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푸른 수박빛으로 싱그러워야 할 최씨의 비닐하우스 안은 온통 누런 황톳빛으로 가득했습니다.
지난 주말 사이 하우스 안으로 들이닥친 빗물은 진흙과 뒤엉켜 한창 무르익던 수박을 덮쳤습니다.
진흙 섞인 빗물이 마르면서 먹음직스러운 수박의 초록빛이 누런 분가루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수박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고 물이 채 빠지지 않은 비닐하우스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찢긴 하우스의 비닐은 폭우가 내릴 당시 긴박하게 이뤄진 배수 작업의 흔적이었습니다.
비가 쏟아지던 지난 13일 새벽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을 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쏟아져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고 최씨는 전했습니다.
완주 지역에는 13∼14일 178.7㎜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망연자실한 최씨는 장화를 신고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물길을 내면서 수박을 손으로 어루만졌습니다.
수박을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보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최씨는 "수박을 두드리면 맑은 공명음이 나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며 "수박 안에 물이 들어차서 죄다 버려야 할 지경"이라고 푸념했습니다.
수박을 얼른 밖으로 꺼내 그나마 상품성이 있는 것들을 선별해야 하지만 최씨는 이마저도 포기했습니다.
이미 수박이 빗물을 먹을 대로 먹어 당도가 떨어지고 껍질도 물러졌기 때문입니다.
수확 철에 맞은 수해(水害)여서 피해는 더욱 큽니다.
최씨는 "대략 8천통을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비닐하우스에 물이 차면서 2천700통 정도는 버리게 생겼다"며 "그나마 보험에 가입해서 다행이지만 올해 농사는 이제 다 망쳤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인근의 수박 비닐하우스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농민들은 하우스 안에서 물 먹은 수박을 하나둘 밖으로 꺼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다고 판단해 일손을 도우러 온 외국인 계절 노동자들을 돌려보내기도 했습니다.
농민 49살 김모 씨는 "수박을 밖으로 꺼내서 쪼개 봤는데 전혀 상품성이 없었다"며 "몇 달 동안 애지중지 키웠는데 어떻게 며칠 만에 이렇게 될 수 있는지…"라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피해 현장을 방문한 전북도 농업기술원 관계자도 딱히 손을 쓸 방법이 없어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박정호 농업기술원 농촌지도사는 "수박은 수확 직전에 관수량을 줄여서 농도를 조절한다"며 "그런데 수박이 빗물을 먹어버리면 당도가 낮아져 상품성도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이면 앞으로 있을 수해에 대비하는 방법을 농가에 전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전북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현재 도내 7개 시·군의 1천346개 농가가 침수 피해를 보았으며 그 면적은 840.4㏊에 달했습니다.
작물별로 벼(595㏊)의 피해 면적이 가장 넓었고 논콩(논에 재배한 콩·176㏊), 수박·상추 등 기타작물(68.9㏊)이 뒤를 이었습니다.
지난 13∼14일 시·군별 누적 강수량은 완주 178.7㎜, 익산 154.5㎜, 전주 107.4㎜, 무주 99.5㎜, 김제 98.5㎜ 등으로 집계됐습니다.
전북도 관계자는 "현재 각 시·군에서 추가로 호우 피해를 파악하고 있다"며 "그나마 논에서 신속히 물을 빼 벼의 피해는 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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