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가 '인재(人災)'로 잠정 결론났다.
공사기간을 앞당기기 위해 평소 대비 2배의 인력을 투입하면서도 안전관리수칙은 철저히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천정과 벽체 대부분을 덮은 우레탄폼은 불을 빠르게 확산시키며 인명피해를 키웠다.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 사건 수사본부(본부장 반기수, 경기남부경찰청 2부장) 15일 이천경찰서에서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창고 공사 공정 전반에서 안전관리수칙이 준수되지 않아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공사 관계자 24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입건하고, 이중 책임이 큰 발주처 1명, 시공사 3명, 감리단 2명, 협력업체 3명 등 9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화재는 물류창고 지하 2층에 설치된 실내기 7대중 3번째 실내기 주변에서 발화한 것으로 추정됐다.
3번 실내기 아래에 종으로 세워진 고소작업대(바스켓 모양 작업대) 위에서 산소용접때 사용하는 용접토치와 용접자재가 발견됐고, 횡으로 세워진 또 다른 고소작업대에서는 사용된 용접봉들이 발견됐다. 불에 탄 용접토치와 연결된 산소용기, LP가스 용기 밸부는 모두 열린 상태였다.
경찰은 "화재 당일 오전 8시께 A씨(사망)가 지하 2층에서 용접 작업을 하던 중 튄 불티가 가연성 소재인 건물 천장 벽면 우레탄폼에 옮겨붙고, 무염연소 형태로 천장과 벽체의 우레탄 폼을 타고 확산했다"면서 "특히 산소 공급이 원활한 각 구역 출입문 부근에서 빛과 열을 내며 타는 유염연소로 변한 뒤 천장과 벽체에 도포된 우레탄폼을 타고 급속도로 확산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각종 불법과 안전불감증이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시공사측은 공사기간을 줄이기 위해 화재 당일 평소보다 2배 많은 67명의 근로자를 투입해 지하 2층부터 옥상까지 총 10개 공정을 동시에 진행했다.
인력을 2배 이상 투입하면서도 안전관리수칙은 지켜지 않았다. 같은 장소에서 화재 또는 폭발위험이 있는 우레탄 폼 발포 작업과 용접 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다. 용접 불꽃이 다른 곳으로 튀는 것을 막기 위한 비산방지 등의 조치도 없었고, 2인1조가 필수인 화기작업도 1인으로 진행됐다. 화재 감시인이 작업 현장을 벗어난 상태에서 비상유도등·간이 피난 유도선 등 임시 소방시설도 설치되지 않아 지하 1층 이상에서 작업하던 근로자들은 화재를 초기에 인지하지 못했다.
안전을 무시한 설계변경도 확인됐다. 인허가 관청에는 지하 2층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기계실로 통하는 방화문을 거쳐 외부로 대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알렸지만 정작 이 공간에는 벽돌을 쌓아 대피로를 차단했다. 결국 지하2층 근로자 4명은 폐쇄된 방화문 지점을 뚫고 대피를 하려다 실패해 사망했다.
경찰 관계자는 "방화문으로 설계된 지역이 벽돌로 막혀 작업자들이 탈출을 못했다"면서 "당시 작업자들은 밖에 있던 근로자에게 전화해 "벽을 깨달라"고 요청했는데 구조대원들이 지하 1층까지 내려갔다가 화염이 거세 진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지상 1층부터 옥상까지 연결된 옥외 철제 비상계단은 설계와 다르게 외장이 판넬로 마감돼 지하 2층부터 시작된 화염과 연기의 확산 통로가 됐다.
경찰은 공기 단축을 누가 지시했는지에 대해 "수사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화재에 취약한 우레탄 폼도 인명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건물 전반에 도포된 우레탄 폼을 타고 확산한 화염과 유독연기가 엘리베이터 3곳과 계단 4곳을 통해 건물 전체로 번지면서 탈출구를 막았다.
경찰은 "공기단축과 관련해 중요 책임자들을 집중 수사하고, 재하도급·건축자재 부정 거래·형식적 감리제도 등 법·제도 개선 대책 마련을 위한 수사를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지홍구 기자 / 이천 =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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