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병한 뒤 오늘(27일)까지 연천, 파주, 김포, 강화 등 4개 시·군에서 9건이 확진 판정을 받는 등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파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10년 7∼8월 연천과 강화도에서 발생한 북한 유실 목함지뢰 사고가 새삼 주목됩니다.
당시의 상황이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추이와 유사성이 많아 전파 경로를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고 차단 방역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지난 17일 파주 연다산동에서 처음 발생한 뒤 18일 임진강 지류인 연천 사미천 인근 백학면에서 추가 발병했습니다.
사미천은 북한에서 흘러들어오는 하천으로 철책으로 가로막혀 있으나 폭우 때는 수문을 열어 부유물이나 유실물이 떠내려올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이어 23일 임진강 하류 한강과 10㎞가량 떨어진 김포에서 3차 발생을 했으며, 같은 날 연천 백학면 발생 농장에서 7㎞가량 떨어진 파주 적성면 농장에서 4차 발병했습니다.
4차 발생농장은 분뇨 차량이 다녀가는 등 1차 발생농장과 역학관계에 있습니다.
이후 24∼27일 강화도에서만 모두 5건의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추가 발생했습니다.
이 중 1건은 강화도 본섬이 아닌 석모도에서, 그것도 운영을 중단한 농장에서 발병한 것입니다.
이런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발병 추이는 2010년 북한의 목함지뢰 유실 사고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에서만 사용하는 목함지뢰는 나무상자 모양으로, 연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농장 인근 사미천에서 2010년 8월 1일 주민 2명이 낚시 중 1발을 주워 열었다가 폭발, 2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알려졌습니다.
이 사고 뒤 군부대가 대대적인 수색을 벌인 결과 한 달 만에 모두 178발을 수거했습니다.
102발은 강화도와 인근 도서에서, 74발은 사미천 일대에서 발견됐습니다.
연천 폭발사고 며칠 전 북한과 수도권에 집중호우가 내린 바 있어 당시 군 당국은 집중호우에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가 떠내려온 것으로 봤습니다.
강화도는 임진강과 한강에서 떠내려온 온갖 부유물이 바닷물과 만나 쌓이는 지역입니다.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파주와 연천에서 발생하기 10일 전에 태풍 '링링'이 지나갔으며, 이후 북한과 수도권에 며칠 동안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목함지뢰 유실 사고와 비교해 보면 아프리카돼지열병에 오염된 분뇨 등 부유물이 사미천을 통해 떠내려와 연천, 파주, 김포, 강화 등지로 바이러스를 옮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미천 상류 임진강이나 한탄강 유역에서 아직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지 않은 것도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사미천을 통해 유입돼 기존 발생지역만 오염시켰다면 차단 방역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것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다행히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감염된 가축이나 분비물(침, 분뇨) 등을 직접 접촉하지 않으면 옮지 않고 전파 속도도 느립니다.
김포와 파주 등 혈청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음에도 며칠 뒤 정밀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돼지들은 임신 중이어서 다른 돈사에서 관리하고 혈청검사를 하지 않았다가 며칠 뒤 유산했기 때문에 정밀검사가 이뤄진 것입니다.
선우선영 건국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비가 많이 내려 하천 주변이 오염된 뒤 2차 매개체에 의해 바이러스가 농장에 전파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방역대를 넓게 설정하고 이동제한과 이동중지명령 등 방역 당국이 과할 정도로 진행하는 조치는 다른 지역이 오염됐는지를 확인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3주가 지나도 다른 지역에서 발생이 없다면 일단 안심은 할 수 있다"며 "그러나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 국내 유입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는 만큼 국경검역을 철저히 해야 하고 중점관리지역 내 소독시설이나 초소 운영도 타이트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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