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아이돌 그룹의 팬인 직장인 정세은 씨(35)는 최근 콘서트장에 갔다가 새로운 팬덤 문화를 경험했다. 팬들이 들고 있는 손배너가 디자인은 물론, 적혀 있는 문구 하나하나까지 다양했던 것. 10대 시절 콘서트장에 모여 있는 팬들 손에 같은 색의 풍선이 들려 있었던 것만 기억하던 정 씨에겐 놀라운 광경이었다. 정 씨는 "콘서트를 처음 갔을 땐 입덕한 지 며칠 되지 않았던 터라 비공식 굿즈가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소속사에서 제작하는 굿즈가 전부였던 때가 있었는데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웃었다.
팬덤 문화가 성장하며 굿즈 시장도 함께 커져가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홈마(홈페이지 마스터)가 제작하는 비공식 굿즈. 홈마는 연예인의 사진과 동영상을 고퀄리티로 찍어 개인 홈페이지 혹은 SNS 계정에 올리는 팬을 말한다. 유명 홈마의 경우 SNS 팔로워만 수만 명에 이를 정도다. 소속사에서 촬영하는 사진들보다 화질이 좋은 것은 물론 다양한 각도, 쉽게 볼 수 없는 표정까지 포착해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 특히 각 멤버의 순간순간을 잘 포착해내거나 홈마 중에서도 사진을 수준급으로 찍는 탑클래스 명단이 온라인상에 게재돼 있기도 하다.
몇몇 홈마들은 본인이 찍은 사진들을 가공해 굿즈를 제작하고, 온라인으로 판매한다. 판매하는 굿즈는 팬덤, 홈마마다 다르지만 포토북, DVD, 달력, 인형, 슬로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 비공식 굿즈들의 퀄리티는 소속사가 내놓는 공식 굿즈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팬들의 평가다. 홈마 경력이 오래돼 결과물이 많이 쌓이면 직접 찍은 사진을 모아 유료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이렇게 비공식 굿즈를 판매하고 사진전을 주최하는 홈마들의 수입은 규모와 활동 시기에 따라 수천만 원에 이르기도 한다는 게 업계의 추측이다. 규모가 큰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유명 홈마가 판매하는 포토북은 수백권에서 많게는 1000여 권까지 판매된다. 이때 포토북의 가격을 5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제작비용과 배송비 등을 제하더라도 수백에서 수천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드물게는 연간 억대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비공식 굿즈가 온라인을 통해 개인 간 계좌이체 방식으로 거래되고,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는 홈마가 대부분인 탓에 '세금을 제대로 낼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 암묵적으로 홈마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연예인 서포트(조공), 촬영 장비 구입, 콘서트 티켓값 등으로 사용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부적인 수입 내역과 지출 내역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보니 팬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한다. 한 아이돌 그룹의 팬인 대학생 박 모씨(22)는 "정상급 홈마들은 굿즈를 판매해서 수천만 원까지 벌기도 하는데 세금을 내지 않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송재용 세무사는 "관련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행위가 일시적이고 단발성에 그치면 납세 의무가 없으나 계속적·반복적으로 이뤄지고 그 금액이 많으면 부가가치세, 소득세 납부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현행 소득세법이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소득은 원천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과세소득에서 제외한다'는 이른바 소득원천설을 따르기 때문. 이어 송 세무사는 "홈마가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더라도 과세관청의 의지만 있다면 세금 부과가 가능하지만 소득이 어느 정도이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오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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